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제70회

방문

돌아가는 발걸음 속에서도 애춘은 머릿속에 지선의 그 활기찬 대화가 떠나지 않았다. 그 안정되며 흔들림 없는 어떤 확고하고 견고한 내부의 집이 존재하고 있었다. 애춘은 약간 흥분되고 긴장된 마음을 진정시키며 평창동으로 향했다. 극도의 우울감에 빠져 있다가도 지선과의 만남은 삶에 의욕을 불어넣고 생기를 주었다.

‘남편은 자신을 찾아올 것인가! 아냐, 그는 나를 아주 떠났어!’

애춘은 머리가 복잡하고 산란스러워 생각을 접어버렸다.

어느 덧 집 앞의 현관에 도착했다. 아니, 자신이 왜 아파트로 가지 않고 평창동 집으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평창동으로 온 것이다. 지선의 집처럼 그런 분위기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 그런 것 같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현관에 낯익은 채성의 갈색구두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아니?

거실에는 작은 조명만을 켜 놓아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애춘이 살그머니 방문을 열었다. 그는 한 손을 턱에 괴고 눈을 감고 있었다. 집안은 파출부의 깔끔한 청소로 쾌적하였으나, 늘 변함없는 커다란 석조궁궐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접하는 두 사람의 만남은 매우 낯설고 어색했다. 방안의 공기와 사물들도 움츠리며 낯선 방문객을 대하는 듯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채성은 애춘의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아, 아니 당신이 웬일이오!”

“……….”

“거기 앉아요.”

모처럼 듣는 채성의 목소리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예전과 다른 다정함이 어린 훈기가 도는 듯했다.

“무슨 일이죠?”

애춘은 단도직입적으로 약간 저항하듯 물었다. 그리고 의자에 몸을 내던지며 냉담하게 대했다.

“우리…,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요?”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잖아요.”

여전히 테이블의 꽃병을 쳐다보며 애춘은 냉담한 표정이었다. 채성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채성은 그녀의 반응에 약간 주춤했으나 동요 없이 침착한 태도로 말했다.

“왜 여태껏 나에게 이혼신청을 하지 않지? 그 잘난 자존심 때문인가?”

애춘은 대답이 없었다.

“이혼녀라고 낙인찍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그런가? 당신은 수치심도 없이 사람들 앞에서 자기가 하고픈 대로 행동하는 여자 아니오? 체면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왜 보류하고 있는지 알 수 없소?”

애춘은 의외의 물음에 생각에 잠겼다.

“새삼스럽게 웬일이죠?”

채성은 약간 들뜬 기분으로 그녀를 다소곳이 바라보며 설득하듯 말했다.

“나, 처음 결혼할 때, 당신의 그 모습을 보고 싶소. 지금 당신의 모습은 완전히 딴사람으로 변했소.”

“뭐, 뭐라고요? 당신이 나한테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나에게도 책임이 있긴 하지. 그렇지만 난 당신이 혜란과 자신을 비교하며 외모에 도착하는 모습이 더 진절머리가 나. 왜 자신감 없이 비교하고 자신을 지워버리는데 열을 올리느냔 말이오? 나에게 맞지 않은 여자라고 냉담했던 나에게도 불찰은 있지만 제발 그 성형만은 그만 둬요! 내가 원한 것은 외모가 아니란 말이오. 나를 더 이상 역겹게 하지 말아 줘!”

“새삼스런 말만 지껄이고 있군요. 내가 성형한 것은 당신 때문이 아니에요. 착각하지 말아요. 당신의 사랑 따위나 구걸하는 내가 아니란 말이에요. 혜란 씨가 당신의 여자인가요? 그녀와 결혼하면 당신에겐 더 없는 행운이겠네요?”

채성은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그래요, 맞아요. 당신의 냉담함에 지쳐 그 잘난 사랑을 구하려고 성형을 했어요. 그러나 당신은 거들떠보지도 않더군요. 저는 그런 당신에게 발악하듯 아니, 자포자기해서 수술대에 몸을 던졌어요. 그것은 사랑 받지 못하는 여인을 지워버리고 사랑받는 여인으로 다시 태어나고픈 마지막 나의 몸부림이었으니까요”

“무모한 짓이오!”

“왜요? 그게 뭣이 역겹죠? 현대 의술의 뛰어난 혜택을 받아 좀 더 멋진 모습, 완전한 모습이 되어서 뭇사람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게 뭐가 잘못 되었나요?”

“그럼 그런 방법으로 얻어진 게 무엇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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