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物論(23) 인지상정을 버리는 자를 경계하라!

인지상정을 어기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비도덕적인 행위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인격을 가늠할 때는 인지상정에 대한 그의 태도를 살피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오기(吳起)는 노(魯)나라 군주의 신임을 얻기 위해 제(齊)나라 사람인 자신의 처를 살해했다. 그러나 그는 노나라 사람들의 신임을 얻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질책을 받았다.

낙양자(樂羊子)가 위나라 장군이 되어 중산국(中山國)을 토벌할 때, 그는 위나라 문후(文侯)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중산국 사신 앞에서 중산국 관리로 있던 자기 아들의 살을 씹어 먹었다. 문후는 그의 공로를 칭찬하기는 했지만, 이때부터 그를 믿지 않았고 결국 그를 파면했다.

명나라 천순(天順) 시기에 도지휘(都指揮) 마량(馬良)은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마량의 처가 죽자 황제가 그를 위로하러 갔다. 그런데 마량은 벌써 몇 날 며칠을 외부 출입을 하지 않고 있었다. 황제가 그 이유를 묻자 측근이 대답했다.

“마량은 지금 혼사를 치르고 있습니다. 새로 아내를 들이는 것이지요.”

황제는 매우 언짢아했다.

“제 처한테도 박정한데 어찌 내게 충성할 수 있겠는가?”

황제는 마량을 불러 곤장을 쳤고, 이때부터 그를 멀리했다.

명나라 선덕(宣德) 시기에 금오위(金吾衛) 지사(指使)였던 부광(傅廣)은 스스로 거세를 한 뒤, 환관이 되기를 청했다. 황제가 이 말을 듣고 이상히 여겨 물었다.

“부광은 이미 3품의 고관이거늘 무얼 더 바라는 게냐? 자기 몸을 해치면서 또, 승진하겠다는 게냐?”

황제는 명을 내려 그의 죄를 다스리게 했다.

이처럼 사람을 알아보는 현명한 군주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해 화를 자초한 이도 있었다. 제나라 환공은 몇몇 간신들을 피하라는 관중의 말을 듣지 않아서 그만 그들의 손에 죽고 말았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환공은 관중의 보좌를 받아 중원의 패자가 되었다. 그래서 환공은 관중에게 매우 극진했다. 나중에 관중이 병석에 누웠을 때, 환공이 그를 위문하러 가서 물었다.

“이렇게 병이 위중한데 혹시 내게 당부할 말이 없으시오?”

자신이 얼마 더 살지 못하리라 느낀 관중이 간곡하게 말했다.

“부디 역아(易牙), 수조(竪刁), 상지무(常之巫), 위공자(衛公子)를 멀리하시길 바랍니다.”

환공은 관중의 유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역아는 자기 아들의 고기를 삶아 날 봉양한 사람이오, 이는 아들에 대한 사랑보다 나에 대한 사랑이 더 크다는 게 아니겠소?”

“세상에 자기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 아비는 없습니다. 아들에게 그토록 잔인한 사람이 어떻게 군주에게 잘하겠습니까?”
환공이 다시 물었다.

“수조는 스스로 거세하여 날 시중든 사람이오. 이는 자기 몸보다 더 나를 아낀다는 것인데 어떻게 그를 의심할 수 있겠소?”

“세상에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독하게 자기 몸을 훼손하는 자가 어떻게 군주에게 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상지무는 어떻소? 그는 사람이 죽을 때를 예언하고 나의 지병까지 치료해줬는데 그조차 믿지 못한단 말이오?”

“태어나고 죽는 건 운명에 달렸으며 지병은 본디 신체의 약점입니다. 자기 수명도 모르고 근본을 지키지 않으면서 오직 상지무에게 기대 건강을 유지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위공자 계방(啓方)은 날 시중든 지 15년이 되었소. 그는 부친이 죽었을 때도 날 위하여 고향에 가지 않았소. 이는 자기 부모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는 증거인데 이런 사람도 믿지 못한단 말이오?”

“세상천지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곧 부모입니다. 부모에게도 그렇게 무정한데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겠습니까?”

환공은 관중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관중이 죽은 뒤 환공은 그들을 조정에서 쫓아냈다. 하지만 그 뒤부터 환공은 통 밥맛이 없고 잠도 이루지 못했다. 조정의 일을 돌볼 마음도 생기지 않았으며 병까지 도져 궁궐이 어수선해졌다. 그렇게 3년이 흐른 후 환공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관중의 말은 너무 지나쳤다! 그 네 사람은 이 나라에 필요한 이들이지 결코 해를 끼칠 이들이 아니다!”

환공은 즉시 그들을 다시 조정으로 불러들였다.

다음해 환공이 병이 나자 상지무는 무술(巫術)을 이용하여 ‘환공은 모년 모월 모일에 죽을 것이다’ 라는 헛소문을 지어 퍼뜨렸다. 이어서 역아, 수조, 상지무는 서로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환공이 머무는 궁궐문을 막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또한 궁궐 밖에 3장 높이의 담을 쌓고 음식물을 일절 들여보내지 않았다. 환공을 굶겨 죽일 작정이었다.

환공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며 후회했다.

인지상정을 통해 한 사람의 인격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문제는 어떤 경우에는 인지상정을 어기는 행위가 설득력을 얻었다는 점이다. 아들이 부친을 고발하고 아내가 남편을 배신하는 행위가 ‘충성’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된 것이다. 그리하여 호전적이지만 인격이 모자란 이들이 배출되었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인지상정을 중시하는 것과 대의를 위해 천륜을 저버리는 것이 서로 모순되지 않을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대의를 위해 천륜을 외면함으로써 인지상정을 고도로 승화시킬 수도 있다. 이것은 곧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국가, 민족, 진리의 경지로 승화시키는 경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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