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대구문학의 르네상스 일군 문화공간 ‘시인다방’ 이야기(1)

시인다방은 커피를 마시면서 문학이야기를 나누고, 시낭송회와 연극공연, 미술, 음악 이벤트를 수시로 기획하여 꽤나 매력 있는 문화공간이었다. 오는쪽 문 앞에 시인다방 터줏대감 장정일 시인이 보인다. / ⓒ 박상봉
시인다방은 커피를 마시면서 문학이야기를 나누고, 시낭송회와 연극공연, 미술, 음악 이벤트를 수시로 기획하여 꽤나 매력 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오는쪽 문 앞에 그 당시 시인다방 터줏대감 장정일 시인이 보인다. / ⓒ 박상봉

겨울그저녁의찻집에

서우린그만헤어져그

랬다당신은마시고남

은빗차잔처럼차가웠

다음악이어깨너머가

득히무너져내리고무

수히빈의자들이어둠

한켠에서몰려와부서

진다무서웠다나는한

숟갈의설탕이녹을때

까지만그의곁이었을

뿐머리의끝이까맣게

타서죽어있는성냥개

비처럼허리가똑똑부

러진채양철재떨이에

한없이떨어져쌓인다

- 필자의 시집 『카페 물땡땡』중에서 ‘겨울그저녁의찻집’ 전문

나는 커피를 무척 좋아한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 그런지 커피를 마시면 잠이 잘 오지 않아 자제하는 편이지만, 20~30대 시절에는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다보니 다방 출입도 잦았다. 언젠가 유럽여행을 갔을 때는 눈에 띄는 커피숍마다 들어가서 진한 에스프레소를 주문해 원액으로 마셨다.

한때는 진공 여과식 커피 추출기구인 ‘사이폰(syphon)’을 사서 커피를 내려먹은 적도 있다.

사이폰이란 본래 액체를 높은 곳으로 올렸다 낮은 곳으로 옮기기 위한 기구로 1840년 스코틀랜드 로버트 네이피어에 의해 진공 여과식 용기가 만들어졌다.

이후 1842년 배쉬 부인에 의해 상하를 연결해 사용하는 방식이 고안되어 지금의 형태인 사이폰이 탄생하게 됐다. 이것이 일본의 고노 업체에서 사이폰을 상품화 하면서 지금과 같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커피가 너무 좋아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대구 시내에서 조그만 카페를 열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마땅히 취직을 해서 상당 기간 사회경험을 쌓은 다음에 사업을 해도 쉽지가 않았을 터인데 스물일곱 살의 젊은 나이에 사업을 한답시고 험한 저자거리에 겁도 없이 전을 펼쳤다.

지금 생각하면 용기가 넘쳐 그리 하였다기 보다는 세상 물정에 대해 너무 몰랐기 때문에 무모한 시도를 감행할 수 있었을 터이다.

앞서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그 해 가을에 코스모스 졸업을 했다.

원통한 것은 졸업 이수 학점에서 딱 1학점이 모자라는 바람에 제 때에 졸업장을 받지 못해 한 학기를 더 다니게 됐다.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1학년 때 따 놓은 필수교양 한 과목을 어찌하다가 졸업 때까지 수강신청을 하지 않아서 그리된 것이다. 

수강신청만 하면 학점은 그대로 나오게 되어 있었다. 강의를 들을 필요도 없고 학교에 갈 일도 없이 1학점만 신청하고 수업료 3만원 내고 한 학기를 더 다닌 대학생은 아마도 우리나라 대학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졸업장 없이는 취직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학교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아무 하는 일 없이 집에서 빈둥거리자니 날이 갈수록 식구들의 눈총이 따갑게 느껴졌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졸업생들 틈에 섞여 대학도서관에서 취업시험 준비라도 하면서 유예된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원인이야 어찌 됐든 제 때 졸업 못한 것이 그저 남부끄러워서 학교에는 발길도 들여놓지 않았다.

그래서 조그만 사무실을 빌려 집에 있는 책들을 갖다놓고 독서도 하고 글도 쓰고, 문우(文友)들과 커피를 마시며 문학이야기로 하루를 소일하는 귀족백수 노릇을 남몰래 궁리하게 됐다.

나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커피를 마시면서 시를 이야기하고, 책도 보고 문학강연이나 문화행사를 펼칠 수 있는 분위기 있는 공간으로 꾸민다면 썩 괜찮은 문화사업이 될 것 같았다. 또 대학 4학년 때 우연히 읽게 된 야우스의 ‘수용미학’이라는 문학논문에 영향을 받은 탓으로 문화 수용자와 생산자 사이의 가교역할을 해보겠다는 치기도 다소 작용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업에 필요한 목돈을 구하는 방법이 부모님한테 손을 벌릴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 좋은 사업 아이디어가 있는데 돈이 좀 필요하다고 어머니에게 손을 벌렸다.

“1년 뒤에 돈 벌어서 꼭 갚겠다. 평생 집에 손 벌리는 일은 더 이상 없도록 하겠다” 등등 온갖 감언이설로 500만원을 빌리는 데 성공하여 대구학원 건너편 봉산동 동아양봉원 옆에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5만원 하는 가게 자리를 하나 얻었다.

당시로서는 꽤나 비싼 편이었지만 건축사무실을 하던 곳이라 실내 인테리어가 잘 되어 있고 한쪽 구석에 붙박이 책꽂이가 있는 것이 마음에 들어 앞 뒤 생각도 재어보지 않고 선뜻 계약을 해버렸다. 

이사하면서 버리고 간 건축사무소 간판에 검정 페인트로 덧칠을 하고 노란색 스프레이 물감으로 ‘시인’ 이라고만 써서 입구에 걸어 놓았다.

동생한테 신용카드를 빌려 대구백화점 가구코너에 가서 월부로 식탁 몇 조를 구입하고 헌 나무를 얻어 와서 어설픈 솜씨로 톱질하고 망치질을 하여 주방을 꾸미고 탁자와 의자를 만들어 공간을 채웠다.

‘시인다방’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커피를 마시면서 문학이야기를 나누고, 시낭송회와 연극공연, 미술, 음악 이벤트를 수시로 기획하여 꽤나 매력 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아갔다. ‘다방’이라기엔 여러모로 어설픈 장소였지만 1980년대 대구문학의 르네상스를 일군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만큼은 톡톡히 해내었다고 생각된다.

‘시인다방’은 1980년대 대구문학의 르네상스를 일군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사진은 무대 위에서 종이를 주제로 한 이강일의 모노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시인다방’은 1980년대 대구문학의 르네상스를 일군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사진은 무대 위에서 연극인 이강일 씨가 종이를 주제로 한 모노드라마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 ⓒ 박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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