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의 [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典疏通] 人物論(25) 度量이 있어야 大人이 된다.

춘추전국시대의 이른바 전국 사공자(四公子)라 하면 제나라의 맹상군(孟嘗君), 조나라의 평원군(平原君), 위나라의 신릉군(信陵君), 초나라의 춘신군(春申君)을 가리킨다. 기록에 따르면 이 사공자의 식객이 한때 3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 누구든지 한 가지 장기만 있으면 그들의 문하에 들 수 있었으며, 식객들은 신분의 귀천과 관계없이 똑같은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사공자는 선비를 양성하는 것으로 유명해지기도 했지만, 또한 선비를 양성함으로써 일정 정도 국가의 보전에 기여했다.

그런데 송나라의 대문호이자 정치가였던 왕안석 같은 사람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왕안석은 「맹상군전을 읽고 讀孟嘗君傳」라는 짧은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다 맹상군이 현명하고 능력 있는 선비를 초빙하길 잘했고 선비들도 그에게 줄줄이 귀순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가 선비들의 꾀를 빌려 호랑이 같은 진(秦)나라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 맹상군은 그저 어중이떠중이들의 수령이었을 뿐인데 어찌 현명한 선비들을 잘 초빙한 이라고 부른단 말인가? 만약 정말로 그랬다면 제나라처럼 강대한 국가를 갖고서 진정으로 현명한 선비 한 사람을 얻어 진나라를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중이떠중이들의 무리가 무슨 필요가 있었단 말인가? 오히려 그들 무리가 맹상군의 문하를 드나들었기 때문에 진정한 선비가 찾아오지 않았다!”

왕안석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상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는 인물이다. 그의 말은 핵심을 정확히 파고들기 때문에 역사의 정설을 뒤집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렇게 일률적으로 논하는 것은 조금 곤란하다.

전국사공자, 그중에서도 특히 맹상군은 칭찬할 만한 점이 많은 인물이었다. 사람을, 그리고 재능을 포용하는 그의 도량은 일반인들이 감히 본받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한 예로 맹상군의 어느 식객이 그의 부인과 정을 통한 적이 있었다. 누군가 그것을 두고 볼 수 없어 맹상군에게 사실을 고했다.

“측근으로서 감히 공자의 부인과 정을 통하다니, 이는 너무도 의리를 저버리는 짓입니다. 당장 그를 죽여버리십시오.”

맹상군의 대답은 너무나 의외였다.

“아름다운 사람을 보고 서로 좋아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이 일은 한쪽으로 미뤄두고 더 이야기하지 맙시다.”

1년이 지나서 맹상군은 자신의 부인과 정을 통했다는 바로 그 식객을 불러 말했다.

“당신은 이곳에서 꽤 오래 머물렀습니다. 큰 벼슬은 기회가 없었고, 또 작은 벼슬은 당신이 원하지 않았지요. 위나라의 군주가 저와 좋은 친구인데, 수레와 가죽옷, 비단을 준비해줄 테니 그 예물들을 갖고 위나라에 가서 그곳 군주와 사귀어 보길 바랍니다.”

결국 그 식객은 위나라로 가서 중용되었다.

나중에 제나라와 위나라는 서로 관계가 악화, 되었다. 위나라 군주는 천하의 제후들과 연합하여 제나라를 침공하고자 했다. 그때 맹상군의 부인과 정을 통했던 그 사람이 군주에게 말했다.

“맹상군은 제가 보잘 것, 없는 사람인데도 주군께 저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안젠가 제나라, 위나라 양국의 선왕들께서 말과 양을 잡아, 맹세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제, 위 양국의 후계자들은 절대로 서로를 침공해서는 안 되며, 혹 침공한 자는 죽인 말과 양의 운명이 될 거라고 말입니다. 지금 위가 제후들과 연합하여 제나라를 공격한다면 곧 선왕의 맹세를 어기는 꼴이 됩니다. 게다가 맹상군을 기만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군께서 제 충고를 들어주신다면 그만이지만, 만약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이 보잘 것 없는 자는 뜨거운 피로 주군의 옷깃을 적실 것입니다.”

위나라 군주는 그의 설득과 위협 때문에 결국 제나라를 공격하지 않았다.

제나라 사람들은 나중에 이 일을 전해 듣고 “맹상군은 일을 잘 처리하여 화를 복으로 바꾸는 인물이다.”라고 말했다.

초나라 장왕(莊王)도 도량이 큰 인물이었다. 언젠가 그는 영윤(令尹) 약오씨(若敖氏)의 반란을 진압한 뒤에 기쁜 마음으로 신하들과 함께 잔치를 벌인 적이 있었다. 많은 문신들과 무신들이 질탕하게 술을 들이켰으며 장왕은 가장 총애하는 왕비 허희(許姬)를 시켜 그들에게 술을 따르게 했다. 그런데 막 주흥이 무르익고, 있던 중에 돌연 바람이 불어와 실내의 촛불을 꺼뜨렸다. 이때 누군가 어둠을 틈타 허희의 손을 잡고 그녀를 희롱했다. 그 순간 허희는 꾀를 내 그 사람의 쓴 모자의 술을 떼어 장왕에게 넘기며 사실을 고해바쳤다. 장왕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촛불은 천천히 켜도록 하고, 다들 많이 취했으니 의관을 다 갖출 필요가 없을 것이오. 모두 모자의 술을 떼도록 하시오!”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제각기 술을 떼어냈다.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장왕은 물론이고 허희도 누가 무례를 저지른 인물인지 알지 못했다. 장왕이 허희에게 말했다.

“무신들은 원래 거친 사람들이오. 취기가 오른 데다 당신 같은 미인이 눈에 보이니 누가 마음이 동하지 않겠소. 만약 그를 색출하여 죄를 물었다면 분위기가 다 망쳤을 거요.”

그날 허희를 희롱했던 사람은 나중에 전쟁터에서 장왕의 목숨을 구했다.

그런데 위의 두 사례는 서로 다른 점이 있다. 맹상군의 행동은 장왕처럼 신하를 존중하고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철저한 실용주의적 입장에 서 취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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