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규 경기도총괄취재본부장.

"의학자(醫學者) 허준(許浚)을 아는가? 지금의 의학자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대들 중 허준의 후예는 있는가?" 지금 묻고 싶은 말이다. 현 시점 그들도 한번쯤 자신들에게 되물었을 질문이다.

"우리는 인간생명의 존엄과 건강한 삶의 가치를 존중하는 전문인으로서 지식과 양심에 따라 국민건강의 수호와 질병치료에 최선을 다한다" 이 것은 또 무슨 말인가? 대한의사협회가 미션(Mission)으로 남긴 말이다.

의료계 파업이 8일째를 맞았다. 사그러들 줄 알았던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전국적으로 또다시 확산되고 있고, 국민들의 감염 불안감은 종전과 다르게 더 증폭되고 있는 분위기다. 아마도 자신들의 곁을 지금껏 지켜주고 감염병과 사투를 벌여준 고마운 의인(義人)들에게 거는 희망이 한순간 사라질 수도 있다는 또다른 불안감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들의 고단함 속 미소에 감사했던 마음은 집단 이기적 행동에 자취를 감추고 있고, 그동안 고귀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흘렸던 의인들의 땀방울 역시 최근 태풍에 말라버렸다. 

<우려가 현실로>

"기가 찰 일입니다. 병원에 의사가 없다니..이 정도 일줄 몰랐어요" 

경기 의정부시 한 시민의 말이다. 이런 기가 찰 일은 28일 새벽 5시 30분이 조금 안된 시각에 벌어졌다. 의정부 한 대형병원에는 다급한 전화벨이 울렸다. 심정지 환자를 이송하는 119구급대원은 "응급처치(CPR) 환자를 이송 중인데 환자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받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결국 이 심정지 환자는 양주 한 병원에서 사망 확정을 받고 말았다.

심정지 환자의 경우 응급의학과 의사 세 명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게 병원 측의 말이다. 그런데 당시 이 환자를 살려야 할 의사는 결론적으로 한명도 없었다는 얘기다. 세 명의 의사 중 한명의 의사는 27일 오후 코로나 의심환자를 진료하던 중 환자가 확진되면서 이 의사도 함께 격리 조치됐고, 나머지 의사 두명, 인턴과 레지던트는 전공의 파업으로 자리를 이탈하면서 끝내 숨진 환자는 한마디로 손도 써보지 못한 채, 그렇게 숨지고 말았다.

부산에서도 음독한 40대 응급환자가 병원을 찾지 못하고 결국 3시간 만에 사망했다. 부산과 경남 지역 내 대학병원 6곳과 2차 진료병원 7곳에 치료 가능 여부를 타진했지만 사실상 자리에 있어야 할 의사들이 없다는 대답 속에 그렇게 가족의 곁을 떠났다. 너무도 소중한 생명이 마땅히 받아야 할 기본적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말이다.

<미국에 허준이 있었다>

미국에서 죽다 살아온 어릴적 선배를 만났다. 선배는 지금도 정확한 당시 병명은 모른다. 다만 간속에 이름모를 두 종류의 바이러스에 전염되면서 미국 텍사스 내 병원을 찾았고, 의사의 도움으로 입원 두 달여 만에 완치되면서 올해 초 귀국했다. 

그는 지난해 천주교 재단이 운영하는 미 텍사스 세톤 메디컬 센터(Dell Seton Medical Center)에 입원 치료 당시 약 45만불(한화 약 5억원)의 치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었다. 그렇다고 미국 시민권자도 아니다. 당시에는 한마디로 불법체류자 신분이였다. 그는 처음 병원을 찾은 날 의사는 이를 치료할 항생제를 찾지 못하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병원에서 확보한 항생제, 치료제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의사는 몇 날 며칠을 수소문 한 끝에 결국 그를 치료할 항생제를 찾아냈다.

그가 입원했던 병실은 1인실이다. 치료비를 지불하지 못하는 사정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단 한번도 내색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그를 관리하는 환자 상황판에는 '치료비를 낼수 없는 환자'라는 표시가 무색할 정도였다.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한 부담을 주지않았다. 치료가 끝나갈 무렵 미안한 마음에 그는 퇴원을 요구했지만 의사는 "너 아직 치료가 끝나지 않았다"는 말만 할 뿐 보내주지 않았다.

의사는 수일이 지난 후 퇴원을 하는 그에게 그동안 병원에서 관리하던 그의 진료차트를 모두 챙겨주며, 다른 병원을 갈 경우 이 차트를 보여 줄 것과 한 달치 약이 든 봉지를 건냈다. 혼자 힘으로 집에 돌아갈 수 없으면 차량도 제공해주겠다고 했지만 사실 염치가 없었던 그는 이를 거절했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약 값에 쓰라며 1200불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한 보살핌 덕분인지 퇴원 직후에는 영주권을 받아 무사히 귀국길에 올랐다.

그런 그가 말했다. "지금 의료계 파업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벌어 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미국서 받은 의사의 고마움을 평생 잊지 못하겠다는 그가 의사들의 지금 행태를 지적했다. 아팠기 때문이고 죽을 뻔 했었고, 미국의 허준을 봤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이러한 것이 복지 때문에 잘 사는, 돈이 많은 나라여서 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의사의 인성, 차별없는 환자에 대한 태도, 의사라는 잠재된 직업적 무의식 속에서 언제든 살아움직이는 기본적 인성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의사들도 국내에 얼마든지 있다. 그들 노고에 너무나 감사하다. 존경한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의사도 사회적 기득권자로 보여지는 모습에 할 말을 잃는 대중이 많다는 것이다.

<의사는 의사일 뿐..>

전국의사총파업이 사 흘째다. 정부는 지난 26일 파업에 동참한 의사들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내렸다. 이에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줄줄이 던지며 소위 그들만의 반발을 이어가고 있다. 나름대로 이유도 있다. 그러나 방법과 그 시기가 옳지않다. 

서두에 밝혔 듯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모든 국민들이 감염에 대한 불안감과 이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에 신음하고 있는 상황이다. 얼마전 코로나 감염자들을 치료하다 확진된 우리 의사들을 보면서 가슴아파하며 응원의 박수를 보냈던, 그런 국민들의 생명을 볼모로 지금은 집단 이기적 시위로 변모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묻고 싶다. 의사를 포기하는 사직서를 내 던질 시기가 지금인지? 의사는 의사일 뿐.. 그동안 병자 치료를 위해 그 한가지 이유만을 위해 닦아온 의학을 이렇게 쉽게 포기해도 되는지 또한 의문이다. 결국 의사라는 직업을 왜 선택했는지도..

<히포크라테스 선서>

나는 의학의 신 그리고 건강과 모든 치유, 그리고 여신들의 이름에 걸고 나의 능력과 판단으로 다음을 맹세하노라. 나는 이 선서와 계약을 지킬 것이니 나에게 이 의술을 가르쳐준 자를 나의 부모님으로 생각하겠으며, 나의 모든 것을 그와 나누겠으며, 필요하다면 그의 일을 덜어주겠노라. 

동등한 지위에 있을 그의 자손을 나의 형제처럼 여기겠으며 그들이 원한다면 조건이나 보수없이 그들에게 이 기술을 가르치겠노라. 교훈이나 강의 다른 모든 교육방법을 써서라도. 나는 이 지식을 나자신의 아들들에게, 그리고 나의 은사들에게, 그리고 의학의 법에 따라 규약과 맹세로 맺어진 제자들에게 전하겠노라. 그러나 그외의 누구에게도 이 지식을 전하지는 않겠노라.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내가 환자의 이익이라 간주하는 섭생의 법칙을 지킬 것이며, 심신에 해를 주는 어떠한 것들도 멀리하겠노라. 나는 요청을 받는다 하더라도 극약을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을 것이며 복중 태아를 가진 임신부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나는 결석이라도 자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기술을 행하는 자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할 것이다. 내가 어떠한 집에 들어가더라도 나는 병자의 이익을 위해 그들에게 갈 것이며 어떠한 해악이나 부패스러운 행위를 멀리할 것이며, 남성 혹은 여성, 시민 혹은 노예의 유혹을 멀리할 것이다. 나의 전문적인 업무와 관련된 것이든 혹은 관련이 없는 것이든 나는 일생동안 결코 밖에서 말해서는 안되는 것을 보거나 들을 것이다. 

나는 그와 같은 모든 것을 비밀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결코 누설하지 않겠노라. 내가 이 맹세를 깨트리지 않고 지낸다면 그 어떤 때라도 모든 이에게 존경을 받으며 즐겁게 의술을 펼칠 것이요 인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나 내가 이 맹세의 길을 벗어나거나 어긴다면 그 반대가 나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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