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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우리는 보았다. 깡패 두목 같은 목사와 깡패의 졸개, 호위무사가 된 신도들의 추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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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우리는 보았다. 깡패 두목 같은 목사와 깡패의 졸개, 호위무사가 된 신도들의 추태를"
  • 박충구 전 감리교신학대교수
  • 승인 2020.08.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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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 목사들에게...

1. 한국 교회는 깡패 목사들에게 그 주도권이 넘어간 것 같다. 전광훈이의 광화문 난동질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깡패들의 특징이 무엇인가? 깡패들은 진정성 있는 윤리적 담론이나, 정직한 대화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런 방식을 택하면 절대 깡패 노릇을 할 수가 없다. 깡패들은 품위 있는 지식인의 모습이 아니라, 먼저 눈을 부라리고, 주먹을 들이대며 위협하고, 온갖 더러운 언어폭력으로 상대의 말문을 막아 버린다. 지금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광훈파 목사들이 하는 짓이다. 진실해야 할 목사가 놀랍게도 입만 열면 거짓말이다. 금세 드러날 일인데도 눈 하나 껌벅하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임기응변의 대가들이다.

이런 짓을 하면서 이들은 마치 기독교 신앙인의 고결한 희생, 순교적 신앙을 고수하는 그것이라고 확성기에 대고 큰 소리로 떠들어 대고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고, 무식한 데다가 부지런하면 정말 무섭다. 목사들의 정신세계가 타락하여 이런 길에 일단 들어서면 돌아서기가 무척 어렵다. 자신이 강단에서 선언한 것에 대하여 정직하게 그 오류를 인정하거나 책임을 질 인격과 지성의 힘이 없는 경솔한 자들이 그런 길에 빠지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런 자들을 일러 양심에 화인을 받은 자라고 했다. 양심에 화인을 받으면 정직하거나 진실하지 않은 목사가 되어 평생 그렇게 산다.

광화문 집회에 나오면 “성령의 역사가 있어서 코로나바이러스에 안 감염된다.”고 떠벌리며 국민이 헌법에 따라 민주적 절차를 거쳐 선출한 대통령을 공공연히 비하하고, 반말로 조롱하며 갖은 오만을 떨던 그가 지금 어떻게 되었나? 아마도 그는 이제부터는 순교자 코스프레를 할 것이다. 그 길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자가 숭고한 정신을 지켜온 기독교를 사교(邪敎)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나는 한국 기독교가 어쩌다 저렇게 무식하고 천박한 자가 기독교의 이름으로 광화문에서 연일연야 난동질을 치도록 나 몰라라 하며 방임할 수 있었을까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더니 그나마 사회적 신뢰도의 가냘픈 명맥만 겨우 남아있던 한국 기독교의 공공성, 영성과 지성, 사회적 연대성이 전광훈이 부류의 난동질에 여지없이 땅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나는 이 모든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초래한 원인은 기독교 목사들의 사상적 빈곤, 무식함을 감추려는 허세에서 연유했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한가하게 자기 우물(교회)에 빠져 좁은 하늘만 올려다보는 우물 안의 개구리들이 되어 어쩌다 합창하는 소리마다 너무나 시대착오적이고 한심한 것 일색인 이유다.

2.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허세로 가득한 목사들이 사리 분별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지성인 흉내를 내면서 신실하게 공부하지도 않았고, 급변하는 세상을 따라잡을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 우물 안을 들어박혀 희희낙락 만족하며 살아가는 시대착오적인 존재의 면모를 이제 더는 숨길 수 없게 되었다. 전광훈이의 난동질은 숨겨져 있던 것이 드러난 것일 뿐, 어쩌다 일어난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대부분의 무식한 목사는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별하려 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는 자가 강단에 서있기 때문이다. 강단에 서면 무식한 목사는 “절대” 정직할 수가 없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알 수 없는 것은 알지 못한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목사가 판단 능력에 있어서 부정직하다. 비판과 비난을 받아들일 정신적 여유가 없다. 

목사는 태어날 때부터 목사가 아니다. 모두 평신도 신앙에서 출발한다. 다만 일정한 교육을 받고 목사가 되어 설교하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자신의 무지와 두려움을 목사 가운 속에 덮는다. 오로지 말씀의 증언자라는 의식으로 자신을 스스로 교도한다. 그 결과 자신의 평소 삶의 질과 가치와 판단능력은 감추어지고 복음의 투사 모습으로 거듭난다. 여기서 두 부류의 목사가 탄생한다. 자신의 본질을 인식하고 부단히 공부하고 수행하여 부족하고 모자란 것을 채워나가는 목사, 그리고 그러한 노력을 포기하고 허세를 떨며 목사의 권위를 앞세우는 목사 부류다. 하지만 본질은 감추어지지 않는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목사 가운 속에 숨어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존재가 목사다. 목사 가운이 감춰주기 때문에 일반의 평가를 당분간은 유예받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목사는 내가 말하는 두 부류 중 하나에 속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에 한없이 모자라는 자기 자신의 초라함에서 오는 긴장을 잘 견디며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와 이런 현실을 쉽고 안일하게 처리하는 천박한 목사를 나는 구별한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허세를 부리는 자와 허세를 부리지 않는 자 사이에 있다. 허세를 부리는 자는 알 수 없는 것도 안다고 주장하고, 자기가 믿지 못하는 것도 믿는다고 주장하다가 스스로 그 거짓된 것을 허상이 아니라 실재라고 믿고 가르치려 든다. 일종의 착란적 사유에 익숙해진 자다.

목사가 일단 착각하여 강단에서 떠들기 시작하면, 그것을 쉽게 취소할 수 없다. 여기에 목사들의 비극이 있다. 다른 전문 영역에 들어가서 이런 짓을 하다가는 쉽게 발각이 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려가 깊은 목사들은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에 대하여 주제넘게 단언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 목사들은 2000년 된 고전, 성경을 시간과 거리를 무시하면서 모든 학문 분야에 앞서 전가의 보도처럼 높이 쳐든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무식한 목사들은 시대착오적인 주장까지 섞어 변하지 않는 진리로 조작하여 매우 “용감하게“, “없는 확신을 있는 척하면서” 설파한다. 이런 짓을 하게 되면 목사직은 성직이 아니라 천박한 직업이 된다.

천박하고 무식한 목사를 증명하는 방법에 대하여 할 말이 무척 많지만 세 가지만 사례를 들기로 하자. 이들은 목사 가운을 입고 거짓된 것을 진실한 것이라며 허세를 부린다. 허세가 강하면 강할수록 멍신도들은 허세에 압도되어 경이를 느낀다. 그리고 하는 소리가 “우리 목사님 영력이 대단한 분”이라고 여긴다. 이렇게 영성을 빙자한 우스꽝스러운 사기 행위가 도처에서 벌어진다. 종교가 정신적으로 열등한 자들에 의하여 점유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무식한 목사와 비지성적 평신도는 궁합이 잘 맞는다. 광화문에서 우리는 보았다. 깡패 두목 같은 목사와 깡패의 졸개, 호위무사가 된 신도들의 추태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온갖 모욕과 수치를 당한다.

3. 이 땅에서 무식한 목사들은 예수의 후예가 아니라 이승만-박정희-전두환 계열의 독재자를 칭송하는 권력 근친 성이 강한 자들이 대부분이다. 독재자와 성직자 간의 결탁을 이루는 이들의 공통점은 좌파가 있어야 자신의 정당성과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는 데 있다. 좌파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감을 가진 무식한 목사들은 무엇이 좌파고 공산주의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 요즘 이들이 입에 달고 있는 소리를 보면 “좌파 독재하는 문재인 정권”이라는 덜떨어진 규정이다. 이런 소리는 대부분 극우 정치가들과 손을 잡고 있다가 좌파 혐오증에 오염된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다.

내가 보기에는 문재인 정권은 좌파 독재 정권이 아니라 하는 모양이 우파 정권에 가깝다. 헌법(윤석열을 관용하는 것을 보면)과 민족(친일, 친미 사대주의와 거리를 두는 것을 보면), 민주(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처럼 인권을 짓밟지 않는 것을 보면)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모양이 그렇다. 하지만 독일이나 캐나다, 혹은 프랑스에서 모두 실천하고 있는 가난한 자들의 인간다운 삶(교육비 없애기, 극빈자 지원비, 직업교육, 노인복지)을 위한 좌파적 사회 정책을 실현할 능력은 너무나 약하다. 그런데 무슨 좌파 독재냐? 제대로 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소리가 정신이 나가도 한참 나간 주장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목사들이 껍죽대며 이런 소리 하고 다니는 모양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어디서 무리를 지어 주워듣고 선동 받아 천박한 주장을 진리를 전해야 할 강단에서 떠들고 있다. 정말 우스꽝스러운 것은 이런 조야한 거짓 판단에서 나온 허깨비와 싸우겠다며 목을 매고 목사가 순교자 코스프레 짓을 하는 것이다. 사유능력이 천박하면 이런 유치한 논리와 행위가 마치 기독교 신앙에서 우러난 것인 양 가증스럽게 떠들게 된다. 이런 자들과는 토론하거나 대화할 수 없다. 그저 미친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 자들이 떠들던 것이 무엇이었나? “문재인이가 대통령 되면 나라를 통째로 김정은이에게 가져다 바친다”라는 소리가 아니었나? 지금 집권 4년 차, 나라가 김정은에게 넘어갔나? 오히려 우리는 세계 방역 1등 국가의 위상에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 미국은 우리보다 8~90배나 많은 사람이 죽었고 지금도 하루에 1,000명 정도 죽고 있다. 한 가지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공공연하게 거짓을 설파하며 세상을 불신으로 몰아가는 이런 자들은 모두 사기꾼 목사라고 봐도 틀림이 없다. 새빨간 거짓을 주장하며 순교자가 되겠다는 전광훈이 닮은꼴이라 보면 오차가 없는 판단이다. 이런 자들의 지적 수준은 저급하고, 판단 능력은 조야하다.

이런 짓을 하는 목사들은 마치 정치적 판단력이 출중한 듯 억지하며 허세를 부리다가 조석으로 바뀌는 조중동이나 정치꾼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이다. 미통당도, 조선일보도 상황이 바뀌니까 전광훈이를 재빠르게 버렸다. 광화문에서 더는 내세워 문재인 정권 비판 세력으로 써먹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쓸모없기 때문이다. 곁에 두기 창피할 정도로 무식했기 때문이다. 정당한 것이 아니라고 저희도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무지한 목사들은 포기할 줄을 모른다. 자기 오류를 인정할 자기 비판능력, 진실을 말할 용기가 애초부터 없는 부류라서 그렇다.

이들이 하는 소리, “코로나바이러스를 우리 교회에 가져다 부어 버렸어!” 현실 판단 능력이 이렇게 저급하고 무식하다. 맹신도들은 이걸 믿는다. 그러니 내가 한심하다고 하는 것이다.   

4. 둘째, 무식한 목사들은 멀쩡한 사람을 잡으려 21세기 한가운데에서 시대착오적인 이단 재판을 주도한다. 이런 자들이 감리교에서는 30년 전에 변선환 교수를 축출했고, 장로교에서는  학문 공동체에 개입 지배하여 멀쩡한 학생을 내쫓게 만들고, 최근에는 평생을 교단 신학교에서 신학생을 가르친 허호익 교수를 출교 처분하는 결정에 손을 들었다. 이들 사이에는 유통기간이 한참 지난 시대착오적인 우물 안 개구리 논리가 부끄러움 없이 유통되고 있다. 양심적이며 비판적 지성인인 기독교인들이 수용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것이다.

종교재판이란 원래 평신도들의 지적 수준을 얕잡아 보던 성직자들이 자신들의 허세를 지키기 위해 일종의 공포 종교 정치를 통해 자신들과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을 제압하는 박해 수단이었다. 19세기 이후 이런 천박한 전통은 후진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졌다. 동성애자를 한 인간으로 귀히 여겨야 한다는 주장이 비난을 받고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 그런 종교는 도대체 왜 존재하는 것인가? 기독교가 동성애에 대한 무수한 편견을 유포하며 그들을 괴롭혀온 수백 년의 역사도 모자라서, 정신의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이상 징후가 없다고 판단한 의학적 전문 견해를 외면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정죄하다 못해 “동성애가 교회를 허문다”는 거짓을 유포하는 자들이 과연 정상인가?

무리를 지어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고 목사들이 허공에 대고 주먹을 흔드는 것이 과연 예수의 정신인가? 종교개혁의 나라 독일, 스위스, 프랑스, 덴마크, 벨기에, 영국, 미국, 캐나다, 이루 셀 수 없는 많은 선진국 국민들이 오랜 편견을 버리고 생각을 바꾸어 이미 사회적으로 합의한 일이다. 세상 바뀌는 줄도 모르고 갓 쓰고 도포 입고 살겠다는 자들과 무엇이 다른가? 하다못해 일본도, 대만 국민들도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냈다. 무식하고 멍청해도 정말 한참 무식하고 멍청한 짓이다. 요즘 하는 말로 묻게 된다. 하나님의 교회가 니꺼냐? 내 것이라면서 아비 자식 사이에 세습질하는 자, 그것을 옹호하는 멍신도 무리까지 있으니 무엇을 더 말하랴.

5. 셋째, 무식한 목사들이 자신의 무식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행태는 이웃 종교에  “해코지하는 야만스러운 짓”에서 드러난다. 종교는 높은 가르침을 담고 있는 소중한 인류의 지혜와 가치를 담고 있어 귀한 것이다. 나는 영성은 아주 깊고 맑은 샘 하나에서 우러나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교단이 달라도 서로를 인정하고 관용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치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 깊은 영성의 샘에서 영성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이 저마다 다를 수는 있으나 내 것만 진정한 영성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입증할 수 없는 악무한 억지 논리다.

인류의 정신세계를 갈고 가꾸어 보다 정의롭고, 평등하며,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하여 노력하는 종교라면 우리는 그런 종교를 우리의 경쟁자가 아니라, 우리의 선한 이웃으로 여겨야 한다. 그런데 천박한 호전적 신앙을 교도하여 이웃 종교에 쳐들어가 그들이 귀히 여기는 것을 불법적으로 파괴하고 난동질한 것을 신앙의 이름으로 두둔하는 무식한 목사들이 있다. 이런 난동질에 너무나 미안하고 죄송하여 사죄하는 마음으로 다소라도 보상하여 종교 간의 갈등을 화해로 마무리하려는 노력조차 이단으로 몰아가는 무식한 자들이다.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본다면 유불선은 오랜 기간 우리 한국인의 품성을 올곧게 키워준 종교적 전통이다. 개신교는 1884년에야 뒤늦게 이 땅에 전래한 서양 종교다. 초기에는 겸손한 성직자와 신도들이 그 믿음의 순전함과 신실함으로 선교의 지평을 열어 무수한 이들을 기독교 신앙인으로 초대하여 변화시켜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몸집이 조금 커졌다고 오만하게 이웃 종교들을 향한 난동질을 신앙의 미덕이라 여기며 두둔하는 것인가? 이런 무례한 짓은 기독교를 야만의 종교로 타락시키는 짓이 아닌가?

종교 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하여 노력한 손원영 교수를 칭찬하지는 못할망정 징계하고, 교수직에서 축출하고, 심지어 교육부와 법적 판단에서도 패소한 자들이 깡패처럼 모여 강단을 가로막고 서서 손 교수가 교수로서의 소명을 수행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다니 이 어찌 교육 공동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대학에서는 있을 수 없는 한심한 일에 학생들까지 동원하는 천박함은 도대체 무슨 정당성이 있는 일인가? 한국교회는 모름지기 장자 교단을 자처하는 것이나 소규모의 교단이나 한결같이 깡패들에게 점유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번거롭고 괴롭다. 이 모든 일은 깡패 같은 목사들이 하나님 신앙을 빌미로 삼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하는 마음도 없이 벌리고 있는 범죄다. 6. 한국 기독교의 기형적 변종, 전광훈이 일파, 그대들이 초래한 결과가 무엇인가? 예수께서 당부하셨던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이었는가? 부활의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다가오셔서 빌어 주셨던 평화의 길인가? 그대들의 믿음이 더 나은 것이라 주장하려면 먼저 빛과 소금의 길, 평화의 길을 열어 보여 주어야 하지 않을까?

박충구 전 감리교신학대교수
박충구 전 감리교신학대교수

75년 적대 관계를 청산하여 남북 분단과 적대적 전쟁 상태를 종식하고 평화의 문을 열려는 정권이 친북 독재 정권인가? 이웃 종교와 평화하고 소수 약자를 보호하려는 정권이 반기독교 정권인가? 코로나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여온 의료진들의 피땀을 헛되게 만들고, 전 국민이 삼가고 조심하며 지켜온 방역 체계를 조롱하던 그대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는 말인가? 사람을 죽게 해도 예배를 드리겠다고?  인신공양을 받던 몰록 신이  너희의 하나님이냐? 너희들이야말로 이 시대에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아닌가?

예수가 이 땅에 오셨다면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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