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풍당당

‘노풍당당(老風堂堂)’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위풍당당(威風堂堂)이란 말은 많이 들어 보았으나 노풍당당이란 말을 아주 생소합니다. 위풍당당은 ‘남을 압도할 만큼 위엄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노풍당당은 어떤 위엄을 말하는 것일까요?

노인의 모습에는 편안함이 있어야 합니다. 노년의 향기는 얼굴 모습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지요. 노년의 향기는 그것은 오래 살아본 삶에서 배어나는 향기입니다. 애써 걷어 들인 풍족함이 아니라, 인고(忍苦)로 견디어 온 초월함과 여유입니다. 삶의 성숙은 곧 오래된 향기로 남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향기는 노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닐 런지요?

죽음을 공포로 받아들일 때, 노년은 괴롭고 쓸쓸하지만 죽음을 섭리(攝理)로 받아들이고, 삶을 감사하면 노년은 풍성한 결실이요 사은(四恩 : 天地‧父母‧同胞‧法律)의 은혜임을 알게 됩니다. 그 사은의 은혜를 깊이 깨달아 알기에 참다운 인생의 결실은 노년의 향기인 것입니다.

노년의 성숙함은 다음 세대를 위한 희생입니다. 그리고 기다림입니다. 젊음의 상징이 아름다움이라면, 노년의 상징은 원숙함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향기입니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용서하며 내어줄 수 있는 것. 그것은 일체중생(一切衆生)에 대한 사랑입니다.

늙어가는 모습에는 편안함이 있어야합니다. 그것은 노인 됨의 축복을 알아야 진정한 노인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의미이지요. 늙어 가는 자기 모습은 누구에게나 실망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오래 살고 싶은 연민(憐愍) 때문이 아닐까요?

살아 있는 것은 누구나 늙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누구나 다 노풍당당한 노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노풍당당한 노인이 되지 못하고 죽는 이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노인이 된다는 것은 특별한 축복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늙어 감을 안타까워하고 좌절할 일이 아니라, 늙음을 받아들이고 생(生)을 관조(觀照)해야 합니다. 그러면 남은 삶이 여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할 것이며, 늙지도 않고 끝없이 오래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과 갈등을 내려놓게 할 것입니다. 젊은 날을 돌이켜보면 아쉬움과 회한(悔恨)이 있겠지만, 노인이 되었다고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은 아닙니다. 이 나이까지 살아남는 것도 우리가 누리는 축복이 아닐까요?

중년(中年) 이후의 얼굴은 자기가 책임져야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결국 자기인생은 자기가 만들어 간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노인의 얼굴에는 노인의 일생(一生)이 담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얼굴에는 편안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마음의 여유로움이고, 우리 노인들이 누릴 수 있는 노풍당당이 아닐 런지요?

저 역시 그 노풍당당을 누리려고 요즘 무척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 동안 ‘덕화만발’의 글을 쓰고, 자료를 찾으며,  『덕화만발』 카페를 관리 하느라고 거의 하루 왼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생활한 탓인지 저도 모르게 다리가 마비되어 여간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어리석고 무모한 저의 행위에 진리께서 벌을 내려주셨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요즘 대한민국의 국민임이 이렇게 자랑스러운 것인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당연히 누리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잘 걷지도 못하는 저에게 나라에서는 두 달 전 부터 요양보호사 한 분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분의 도움으로 저는 요즘 노풍당당을 찾으려고 엄청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노풍당당을 찾는 것이 국가와 ‘사은’에 대한 진정한 보은(報恩)이 아닐까요? 아직 밖에는 못 나가지만 <덕산재(德山齋)> 안에서 걸음마부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제 서재(書齋)와 거실을 한 바퀴 도는 것조차 여간 힘에 겨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멀리 보고, 허리 펴고, 천천히 발뒷꿈치부터!’ 큰 소리로 복창(復唱)합니다.

한 열흘 이렇게 기를 쓰고 걸었더니 어제는 열 세 바퀴까지 걸었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선선한 기운이 돌면 용감하게 노풍도 당당하게 창밖의 소공원으로 걸어 나갈 것입니다.

《정산(鼎山) 종사법어》 <법훈편 70장> 이런 말씀을 내려 주셨습니다.

「세속에도 네 가지 기쁜 때가 있다 하거니와, 묵은 병이 절로 나은 때(宿病自解時) 얼마나 기쁘며, 널리 영약을 보시하는 때(普施靈藥時) 얼마나 기쁘며, 모든 법이 통달하게 밝아지는 때(諸法通明時) 얼마나 기쁘며, 만생이 다 귀의하는 때(萬生歸依時) 얼마나 기쁘리요.」

우리 이제 노풍당당을 되찾아 이 네 가지 기쁨을 마음껏 누리면 얼마나 기쁠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9월 1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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