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淸)나라 순치황제(順治皇帝 : 1638~1661?)의 출가 시(出家詩)를 읽어 보셨는지요? 순치황제는 청나라 제 3대의 황제입니다. 조부는 청 태조 누루하치(愛新覺羅 努爾哈赤 : 1559~1626)요, 아버지는 청 태종 홍타이지(愛新覺羅 皇太極 : 1592~1643)입니다.

순치황제의 시가 여러 편 전해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출가 시 두 편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천하총림반사산(天下叢林飯似山)/ 곳곳이 총림이요, 쌓인 것이 밥이 어니

발우도처임군찬(鉢盂到處任君餐)/ 대장부 어디 간들 밥 세 그릇 걱정하랴

황금백벽비위귀(黃金白璧非爲貴)/ 황금과 백옥만이 귀한 줄을 아지 마소

유유가사피최난(惟有袈裟被最難)/ 가사 옷 얻어 입기 무엇보다 어렵다네.」

「회한당초일념차(悔恨當初一念差)/ 당초에 부질없는 한 생각의 잘못으로

황포환각자가사(黃袍換却紫袈裟)/ 가사장삼 벗고 곤룡포를 휘 감았나

아본서방일납자(我本西方一衲子)/ 이 몸을 알고 보면 서 천축의 중인데

연하유락제왕가(緣何流落帝王家)/ 무엇을 인연하여 제왕가에 떨어졌나.」

순치황제는 본래 인도의 수행자였다고 합니다. 걸망을 짊어지고 저 산 어귀를 돌아서 언덕에 올라앉아서, 넓은 땅에 펼쳐진 모습을 바라보고 한참 쉬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 밑에 큰 길로 줄을 이어 풍악을 울리고 깃발을 나부끼며 황제의 어가(御駕)가 지나갔습니다.

어가의 여러 가지 장엄과 거창한 행차를 가만히 내려 보니까 정말 근사하거든요. 비록 수행자의 입장이기는 하지만 그 왕의 행차가 너무 으리으리하고 근사하게 보여서 ‘와! 그 왕도 한번 해볼만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 한 생각의 인연으로 그만 죽어서 제왕가에서 태어나 왕 노릇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순치황제가 대청제국의 황제 자리를 헌신짝처럼 팽개쳐 버리고 그만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그 만승천자(萬乘天子)가 금산사(金山寺)라는 절에 나무하고 아궁이에 불이나 때는 부목(負木)이 되었습니다. 황제의 부귀영화를 가장 큰 타락으로 보고 만승천자의 보위를 헌신짝같이 차버린 것입니다.

이것도 생각해 보면, 한 때 젊은 혈기로 욕심이 승하여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그러나 권세도 헛됨을 알고 본래면목(本來面目)의 자성(自性)자리로 <환지본처(還地本處)>한 것이 아닌가요? 티베트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머리 두 배나 되는 커다란 돌로 네모난 돌을 만들려고 썩썩 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물었어요. “그 둥근 돌을 네모나게 갈아서 뭐 하려고 합니까?” “네 이 돌을 버리려고 갈지 요.” 정말 의미심장한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인생도 버리기 위해서 갈고 있는 것이 아닌지요?

순치황제도 어쩌면은 그 18년 동안 왕 노릇을 하면서 천하를 통일한다고 했지만은 결국은 무엇입니까? 버리기 위해서 통일을 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순치황제도 사실은 버리기 위해서 18년 동안 왕이 돼서 그렇게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걱정한답시고 열심히 둥근 돌을 모나게 갈고 있었던 것입니다.

버리기 위해서 돌을 가는 일이 사람들이 사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가 정말 쓸 데 없는 끝내 버리기 위한 일을 그렇게 아등바등하고 있지 않는지요? 그런 줄 알았다면 우리가 그렇게 집착하며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먹느냐 먹기 위해서 사느냐?’ 라고 물으면, 살기 위해서 먹는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생 살아가는 것을 보면, 먹기 위해서 모든 시간을 소비하고, 오직 돈에만 집중을 하고 산 삶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원불교 교조이신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 재세(在世)당시에 김정각(金正覺)이란 제자가 있었습니다.

전주에서 태어나 혼인을 해서 딸을 하나 두었는데, 남편이 죽자 청상과부가 되어 마음에 안정을 얻지 못하던 중, 원기 6년(1921) 7월에 소태산 부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그대의 원이 무엇인가?” “저는 세 가지 한(恨)이 있습니다. 하나는 부모를 잘 못 만난 것이고, 둘은 남편을 잘 못 만난 것이며, 셋은 아들을 못 둔 것입니다.” 그래서 법명(法名)을 ‘삼한(三恨)’이라 지어주셨지요.

‘삼한’은 이 세 가지에 늘 화두를 가지고 살다가 출가(出家)를 단행했습니다. 하루는 새 부처님을 뵙고 “제가 그 전에는 세 가지 ‘한’으로 남을 원망하고 자신을 비관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생각해보니 모두가 제가 짓고 제가 받는 것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앗다. 네가 옳게 깨쳤구나! 이제부터 너의 이름을 삼한이라 부르지 않고 ‘정각(正覺)’이라 해라!”

어떻습니까? 황제 자리도 헌신짝처럼 버립니다. 그런데 우리 중생들의 그깟 재색명리(財色名利)가 무엇인지요? 모두가 지은대로 받는 것입니다. 우리 덕화만발 가족은 재색과 명리에 초연(超然)한 삶을 이어가면 얼마나 좋을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9월 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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