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성(解裙聲)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오늘은 모처럼 하늘이 높고 공기가 아주 청량(淸凉)날입니다. 요즘 ‘집 콕’으로 많은 분들이 <코로나 불루>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그 꿀꿀한 기분 다 날려 보내시라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해군성’을 들려드립니다.

해군성! ‘벗을 해(解), 치마군(裙), 소리성(聲)’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라고 합니다. 30년을 벽만 쳐다보고 도를 닦은 스님이 계셨습니다. 황진이(黃眞伊)는 자신의 여자 됨의 매력을 시험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비가 오는 어느 날, 황진이는 면벽수행을 하시는 스님을 찾아가 이 깊은 밤 산속에서 갈 데가 없으니 하룻밤 재워 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비에 젖은 여인의 모습은 여간 선정적(煽情的)인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남자에게는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가련함이 더해 이런 유혹을 떨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지요. 그러나 스님은 너무나 담담하게 그러라고 승낙합니다. 이미 도(道)의 경지에 있었던 터라 여인과 한방에 있다가 유혹을 해도 파계(破戒)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산사(山寺)의 방에는 희미한 촛불만 타고 있었지요. 돌아 앉아 벽을 보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스님의 등 뒤에서 여인은 조용히 옷을 벗기 시작합니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만큼 아름다운 소리가 또 있겠는지요? 30년 면벽수도(面壁修道)한 스님도 이 한소리에 한 순간 무너지고 맙니다.

물론 이 얘기는 당시 성리학자들이 불교를 폄훼(貶毁)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옛 시인 묵객(墨客)들은 해군성을 ‘세상에서 들려오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인정하고 있다고 하네요.

조선 효종 때 홍만종의 ‘명엽지해(蓂葉志諧)’에 소리의 품격을 따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연히 어느 벼슬아치의 환송 회식에 참석한 정철과 유성룡, 이항복, 심희수 그리고 이정구 등, 학문과 직위가 쟁쟁한 다섯 대신들이 한창 잔을 돌리면서 흥을 돋우다가 ‘들려오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 라는 시제(試題)를 가지고 시 한 구절씩을 읊어 흥을 돋우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각자 이런 시를 읊었습니다.

① 송강(松江) 정철(鄭澈)입니다.

청소낭월 루두알운성(淸宵朗 月樓頭遏雲聲)

‘맑은 밤 밝은 달빛이 누각 머리를 비추는데,

달빛을 가리고 지나가는 구름의 소리,’

 

② 일송(一松) 심희수(沈喜壽)입니다.

만산홍수 풍전원수성(滿山紅樹 風前遠岫聲)

‘온 산 가득 찬 붉은 단풍에 먼 산 동굴 앞을 스쳐서 불어 가는 바람 소리,’

 

③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입니다.

효창수여 소조주적성(曉窓睡餘 小槽酒滴聲)

‘새벽 창 잠결에 들리는, 작은 통에 아내가 술을 거르는 그 즐거운 소리,’

 

④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입니다.

산간초당 재자영시성(山間草堂 才子詠詩聲)

‘산골 마을 초당에서 도련님의 시 읊는 소리,’

 

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입니다.

동방양소 가인해군성(洞房良宵 佳人解裙聲)

‘깊숙한 골방 안 그윽한 밤에,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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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습니까? 이 중, 단연 으뜸은 오성대감 이항복의 ‘깊은 골방 안 그윽한 밤에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였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김광균의 시 <설야(雪夜)>에서도 ‘첫눈’을 ‘머 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깊은 밤에 눈 내리는 소리가 시인에게 마치 어둠 속에서 여인이 치마끈을 풀어 치맛자락이 사르르 흘러내릴 때의 신비롭고 매혹적인 소리처럼 들린 것이지요.

이 얼마나 그윽한 정감과 함부로 흉내 내기 어려운 멋으로 다가오는가요? 이들의 풍류(風流)와 해학(諧謔)과 멋! 음란하다기 보다는 정말 한 시대를 풍미하고도 남기에 족합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소리는 많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값진 소리는 사랑을 나눌 줄 알고, 베풀 줄 아는 넉넉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소리는 작은 것이라도 아끼고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겸손함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해군성’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고는 하지만, 「청풍월상시(淸風月上時) 만상자연명(萬像自然明)!」 수도 인이 오랜 수행 끝에 크게 도를 깨치는 대각일성(大覺一聲)이 아닐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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