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김덕권, 前원불교문인협회장

인간의 선한 본성

요즘 뉴스를 보기가 두렵습니다. 또 오늘은 무슨 사건이 또 터질까 걱정이 되어서이지요. 마치 인간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가 80년 5월 광주의 참혹했던 양민학살을 생각하다 보면, 도대체 인간의 성품은 착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먼저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 그리고 <성무선무악설(性無善無惡說)>부터 알아봅니다.

첫째, 맹자(孟子 : BC 372?~BC289?)의 성선설입니다.

《중용(中庸》에서는 ‘천명을 성이라 이른다(天命之謂性)’고 하였습니다. 성(性)은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것으로 사람이 날 때부터 갖추고 있는 본성으로 규정했는데, 맹자는 이것을 선(善)이라고 본 것입니다. 맹자는 이것을 근거로 사람이 누구나 남의 불행을 차마 내버려두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두 선한 성을 타고나지만 모두 선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사덕(四德)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에 차별이 있어서가 아니라 선의 실마리를 힘껏 배양하고 확충하지 않은 결과라고 보는 것입니다.

둘째, 순자(荀子 : BC 298~BC 238)의 성악설입니다.

맹자의 성선설과 대립되는 이론입니다. 순자는 사람은 누구나 다 관능적 욕망과 생(生)의 충동이 일고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도덕 질서가 파괴되어 이를 가리켜 인성(人性)이 악(惡)하다고 규정지은 것이지요.

순자가 말하는 인성은 욕망을 의미하고 선악은 사회적 치란(治亂)을 의미합니다. 순자는 인성이 비록 악하지만, 그러나 인간의 후천적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선한 방향으로 그것을 교정(矯正)할 수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을 일러서 ‘위(僞)’를 쌓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위’는 우리가 일상 말하는 거짓이라는 뜻의 허위(虛僞)가 아니고 ‘인위(人爲)’를 가리킵니다. 인위는 사람이 선천적으로 가지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나 욕망과는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개념입니다.

셋째, 고자(告子 : ?~?)의 성무선무악설(性無善無惡說)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욕구(食慾, 色慾)만 가지고 태어났고, 인간 외의 동물도 동일하다는 주장을 고자의 성무선무악설이라고도 부릅니다. 고자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욕구를 성(性)이라고 보았습니다. “성은 흐르는 물과 같아 동쪽으로 터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터놓으면 서쪽으로 흐른다. 이것은 인성에 선과 불선의 구별이 없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어느 학설이 옳을까요? 당(唐)나라 이후 불교의 영향으로 공맹(孔孟)의 유학이 정주(程朱)의 성리학(性理學)으로 윤색되면서, 본연(本然)이니, 무시(無始)니, 순선(純善)이니 라고 말들 합니다. 그러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그런 성리학적 논리에는 철저하게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하늘에서 받은 착한 성품대로 어김없이 따라가면 도(道)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성은 선하다는 학문적 결론을 얻어냈습니다.

맹자와 다산의 말씀처럼 인간의 성품은 착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오늘날에는 악에 대한 부끄러움은 없고, 오히려 악한 행위를 하고도 부끄럽거나 수치스럽게 여기지를 않으니 어찌하면 좋을까요?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무리들을 보면 미워하기 보다는 여간 안쓰럽고 불쌍한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많은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도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뻔뻔스럽게 잘만 살고 있는 사람들, 국법을 어기고 국정을 농단한 범행으로 모두의 미움을 사면서도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다고 태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 작은 이해에 사람을 죽이고도 떳떳하다고 하는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생(衆生)들이 철없이 많은 죄업(罪業)을 짓고 부끄러워하며 개과천선(改過遷善)하여 훌륭한 인격을 완성함에는 네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습관상의 종자입니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마음도 다르고 행동도 다르게 태어나는 것은 익힌바 습관의 종자가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각자 각자가 좋은 습관을 들여서 좋은 종자를 장만하기에 힘쓰는 것입니다.

둘째는, 인연을 잘 짓는 것입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 했습니다. 끼리끼리 만나는 것입니다. 인연을 잘 만나야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만일 인연을 잘 못 만나서 바른 지도를 받지 못하거나 옳은 일을 하려 할 때에 반대하거나 막거나 하는 것은 좋은 인연을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법의 우로(雨露)를 잘 받는 것입니다.

자주 성현의 경전을 읽고 스승님의 법설(法說)을 잘 들어야 마음의 좋은 싹이 잘 자라나서 항상 진보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넷째는, 적공(積功) 적공 대적공하는 것입니다.

인격완성에 있어서 인공(人功)이란 곧 자기의 공력(功力)입니다. 사람이 좋은 습관을 가졌고, 좋은 인연을 만났으며, 좋은 가르침을 받았다 하더라도 자기의 적공과 공력이 들지 않고서는 훌륭한 인격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무어라 하더라도 사람은 선하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 선한 인간이 되는 것은 악을 멀리 하고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리>와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진리>를 철저히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나 악의 소굴에서 벗어나 광명정대한 인생길을 달려갈 수 있지요. 중생도 한 번 뛰어 불보살의 위(位)에 오를 수 있습니다. 마음에 욕심을 떼고, 마음에 청정일념을 물들이면 그 지긋지긋한 지옥에서 탈출하게 되지 않을 런지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10월 31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관련기사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