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참 순수(純粹)를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인 것 같습니다. 순수와 비슷한 말로 순진(純眞)과 순박(淳朴)이란 말도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단어는 어찌 보면 같은 것 같고 어찌 보면 다르게 보입니다.

순수란 영혼이 맑음을 말하고, 순진은 마음이 꾸밈이 없고 참됨을 말하며, 순박은 마음이 순하고 조금은 어수룩하게 보이는 사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요즘은 너무 영악한 사람들만 가득해서 그런지 순수나 순진, 그리고 순박한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고 또 그런 사람들이 그리워지기조차 하네요.

지난 8월 27일자 동양일보에 실린 ‘순수의 실종’이란 예화가 있습니다.

「어느 고을에 미색이 빼어난 청상(靑孀)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를 안 도깨비가 청상을 찾아와 같이 살자고 추근거렸지요. 과부는 궁리 끝에 한 꾀를 생각해 밤사이 고래등같은 기와집을 지어주면 같이 살겠다고 했습니다. 도깨비는 좋아서 춤을 추며 ‘그러마’고 약속을 합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노릇인가요? 밤사이 도깨비는 거짓말처럼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지어놓은 것입니다. 도깨비는 이제 기와집을 지었으니 같이 살자 했지요. 그러자 과부는 또 하나의 꾀를 짜내 밤사이 집 앞에 5층 석탑을 쌓으면 같이 살겠노라고 또 핑계를 댑니다.

도깨비는 순진하게 씩 웃으며 ‘그러마’고 했습니다. 과부는 속으로 제까짓 게 아무리 재주가 비상해도 밤사이 5층 석탑을 못 쌓겠지 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도깨비는 밤사이 거짓말처럼 5층 석탑을 거뜬히 쌓았습니다. 도깨비는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져 5층 석탑도 쌓았으니 이제는 같이 살자 했지요.

그러자 몸이 단 과부는 다시 꾀를 내 밤사이 앞 논에 개똥을 모아 다 놓고 그 논을 먼 데로 떼어가 버리라고 요구를 합니다. 그러면 같이 살겠노라 했지요. 순진한 도깨비는 또 씩 웃으며 앞 논에 개똥을 주워다 깔고는 논 네 귀퉁이에 말뚝을 박은 채 영치기 영차 하며 논을 끌어당깁니다. 그러나 아무리 끌어당겨도 논은 끄떡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지요.

다음 날 도깨비는 풀이 죽은 몰골로 과부를 찾아와 아무리 논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해도 되지 않으니 같이 살자고 한 약속은 없던 일로 하자고 말합니다. 과부는 그러마 하고 “나는 세상에서 돈이 제일 무서운 데 도깨비 너는 뭐가 제일 무서우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도깨비는 개의 피와 말의 피가 제일 무섭다고 말합니다. “개의 피와 말의 피가 그렇게도 무서워?” 과부가 시침을 뚝 떼고 또 물어 봅니다. “그렇다니까 우리 도깨비들은 개피와 말 피가 제일 무서워.” 도깨비가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지요. “그래?” “말도 마. 피 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끼쳐. 아이 무서워.” 도깨비는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그럼 내일 밤 우리 집에 놀러와. 내 좋은 거 줄 게.” 과부가 눈웃음을 살살치며 말합니다. “좋은 거 그게 뭔데?” “와보면 알아. 내일 밤에 만나!” “그려그려” 도깨비는 신이 나서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돌아갔지요. 다음 날 과부는 개 한 마리를 잡아 삽짝과 기둥에다 피를 뿌리고 밤이 되길 기다립니다.

이윽고 밤이 되자 도깨비가 나타났습니다. 도깨비는 싱글거리며 삽짝을 들어서다 말고 “아이고 나 죽겠네!”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가 지났을까. 많은 도깨비들이 떼로 몰려와 “옛다 돈 받아라 돈! 네가 젤 무서워하는 돈이다. 돈!”하며 돈을 뿌립니다.

그럴 때마다 과부는 “아이고 무서워! 아이고 무서운 돈!”하며 자지러지는 소리를 합니다. 그래도 도깨비는 아랑 곳 없이 “옛다 돈 받아라. 돈! 네가 젤 무서워하는 돈이다 돈!”하고는 엽전을 한도 없이 집어 던졌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이야기는 전설의 고향에나 나옴 직한 우화(寓話)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시사(示唆)하는 바 참으로 큽니다. 순진한 도깨비를 꾀어 앞 논에 거름(개똥)을 넣게 해 농사를 지은 과부의 지혜는 지혜라기보다 간악(奸惡)하고 간교(奸巧)한 계교에 불과하지 않은가요?

지금 우리 사회에 과부의 사악(邪惡)한 간교(奸巧)만 있을 뿐 도깨비의 낭만적 순수(순진)는 없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이고 할 것 없이 사악이 판을 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아니 가장 순일해야 할 사랑에서마저 순수가 없어진 지 이미 오래인 것입니다.

우리는 짓궂은 장난질로 엉뚱한 짓거리를 할망정 악의 없는 도깨비가 그립습니다. 순수하게 살아간다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덕화만발 가족은 맑고 밝고 훈훈한 바람을 불리는 순수의 도반(道伴) 동지(同志)가 되면 참 좋겠네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9월 1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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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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