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목(面目)

한가위가 다가옵니다. 사람노릇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면목(面目)을 지키기 위해 작은 선물이라도 몇 군데하고 싶은데, 경제권을 움켜 쥔 아내가 한사코 반대를 합니다. 지난 7월 아내의 허리수술비로 인해 <덕산재(德山齋)> 경제사정이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면목이 없게 되었네요.

그럼 면목이란 무엇인가요? 남을 대하기에 번듯한 도리를 말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임을 이루게 하는 본래의 참모습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또한 불가(佛家)에서는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이야기 합니다. 중생이 본래 지니고 있는 순수한 심성, 깨달은 경지에서 나타나는 자연 그대로의 심성, 또는 가식(假飾)이나 인위(人爲)를 더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갖추고 있는 심성을 말합니다.

또한 이 본래면목을 본지풍광(本地風光),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열반야제(涅槃若提)라고도 부르지요. 어쨌든 본래면목이란 누구나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불성(佛性)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면목을 지킨다.’ ‘면목이 선다.’는 말은 자신의 본모습을 잃지 않고 지킨다, 불성을 제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반면에 ‘면목이 없다’는 말은 자신의 본래 모습이나 불성을 잃어버렸다는 뜻이 되는 것이지요.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 <행유편(行由(編)>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육조 혜능(慧能)이 나와서 반석 위에 앉으니, 혜명(慧明)이 절하고 말했다. “원컨대 행자께서는 저를 위해 법을 설하소서.” 혜능이 말했다. “네가 이미 법을 위해 왔으니, 모든 인연을 쉬고 한 생각도 내지 마라. 내 너를 위해 설하겠다.”

혜명은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혜능이 말했다. “선(善)도 생각하지 말고 악(惡)도 생각하지 마라. 바로 그럴 때, 어떤 것이 혜명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인가?” 혜명은 이 말이 끝나자마자 크게 깨달았다.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곳이 본래면목이다.」

그리고 《원오불과선사어록(圓悟佛果禪師語錄)》 <제16권>에는 우리의 본래면목을 이렇게 일러옵니다. 「애초에 이름이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한데 인간이 온갖 생각을 일으켜 이름이 없던 ‘그것’에 별의별 이름을 붙여 ‘그것’을 산산조각 내어버렸다.

본래면목이란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 이름이 있기 이전, 온갖 2분의 분별이 함몰해버린 천연 그대로의 ‘그것’이다. ‘그것’이 불성(佛性)이다. 본래면목에 온갖 화장을 하고 왔는데 언제 고향으로 돌아가나! 이 본래면목을 ‘주인공’이라 하든 ‘본지풍광(本地風光)’이라 하든 상관없다.」

그런데 본디 면목이란 초한지(楚漢誌)의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항우(項羽)가 한말이라고 합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오는 말입니다. 「해하(垓下)에서 8백 명의 군사로 적의 포위망을 뚫었지만, 남은 부하는 28명에 지나지 않았다. 한나라 군사는 계속 항우를 추격했고 달아나던 항우가 뒤따르던 부하들에게 말했다.

“그동안 70여회의 싸움에서 한 번도 패해본 일이 없는데, 지금 이 같은 곤경에 처한 건 하늘이 나를 망치게 하려는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못해서가 아니다. 이제 그 증거를 보여주지.” 말을 마치자마자 항우는 적진에 뛰어들어 수 백 명을 베어버리니 그의 부하들은 모두 감탄하여 땅에 엎드렸다.

다시 도망가던 항우는 오강(烏江)에 닿았다. 오강의 정장(亭長)은 배를 대고 기다리고 있다가 항우를 보자 이렇게 말했다. “강동 땅이 비록 좁다고는 하지만 사방이 천리나 되고 인구는 수십만입니다. 족히 왕업을 이룰 만한 곳이니 어서 배에 오르십시오.“ 그러자 항우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늘이 나를 버렸는데 강은 건너 무엇 하랴! 8년 전 나는 강동의 젊은이 8천을 이끌고 이 강을 건넜다. 그러나 지금은 한사람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으니 설령 강동의 부형(父兄)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왕으로 추대한들,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대하겠는가(有何面目見之乎). 그들이 아무 말 않더라도 내 어찌 부끄러운 마음이 없겠는가.” 떼 지어 쫓는 적병 수 백 명의 목을 벤 항우는 스스로 칼로 목을 찔렀다.」

어떻습니까? 우리가 평소 자주 사용하는 ‘면목’이라는 말에 이렇게 엄청난 뜻이 내재(內在)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사용하지 않았나요? 어쨌든 올 추석엔 덕산의 면목이 서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타고 저의 인연들이 저의 본래면목이 사라졌다고 낮은 인연으로 화할까요?

우리가 좋은 인연을 유지하는 방법은, 남의 원 없는 일을 과도히 권하지 말고, 스스로 높은 체하하지 말며, 남의 시비를 알아서 나의 시비는 깨칠지언정 그 허물을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할수록 더욱 공경하여 모든 일에 예의를 잃지 아니하면, 낮은 인연이 생기지 아니하고 길이 이 즐거움이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닐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9월 22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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