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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월31일 역사] 루터, 면죄부 비판… 종교개혁 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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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월31일 역사] 루터, 면죄부 비판… 종교개혁 점화
  • 안데레사 기자
  • 승인 2017.10.31 0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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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면죄부 비판… 종교개혁 점화 

2015년 한국 첫 여성 해부학자 나복영 교수 별세
2010년 '구석기 연구의 개척자' 원로 고고학자 손보기 교수 별세
2010년 브라질 첫 여성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 당선
2009년 ‘중국 우주개발의 아버지’ 첸쉐썬 박사 사망
2009년 이후락 전(前) 중앙정보부장 별세
2006년 보타 남아공 前대통령 사망
2002년 여군학교 52년 만에 폐교
2001년 미륵사 석탑, 보수를 위해 1400년 만에 해체 시작
2000년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상주할 우주인 태운 `소유즈 TM-31` 발사
2000년 대만 중정 공항에서 싱가포르항공 여객기 추락, 78명 사망
1999년 이집트항공 소속 보잉767기 미 동부해안 추락. 탑승자 17명 몰사
1997년 국민회의-자민련, 김대중씨를 단일후보로 결정
1996년 우편 업무 전산망 구성 완료
1996년 삼성 전자 세계 최초로 1G D램 개발
1993년 이탈리아 영화감독 펠리니 사망
1992년 로마교황청 350년 만에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복권
1990년 정부, 새 민방간 TV방송 지배주주로 (주)태영 선정
1989년 오잘 터키 총리, 국회에서 대통령에 선출
1986년 AIDS 병원체 국내 첫 검출
1986년 미국의 물리학자 멀리컨 사망 - 1966년 노벨물리학상 수상
1984년 인디라 간디 인도 총리 피살
1983년 알폰신,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당선
1980년 지하철 2호선 (잠실~신설동 14.31km) 준공
1980년 중국, 사회주의경제와 자유주의경제 혼합
1978년 인천 화력발전소 제4호기 준공
1970년 국토종합개발 10개년계획 확정
1968년 쌍용시멘트 동해공장 준공
1967년 월남 군사정권, 선거 통해 형식상 민정으로. 티우 대통령(중장) 취임
1966년 존슨 미국 대통령 방한
1964년 국군파월에 관한 한월(韓越)협정 체결
1962년 인도-중국군 아샘지역에서 접전
1961년 한국-호주 국교 수립
1959년 한국-브라질, 국교 수립
1958년 미국-소련, 과학교류협정에 조인
1958년 미국-영국-소련 제네바 핵실험 정지회담 개최
1956년 미국 해군기 처음으로 남극 극점 착륙 성공
1956년 영국-프랑스군, 이집트 폭격 개시
1953년 대한상공회의소 개편 발족
1939년 친일문학단체 조선문인협회 결성
1929년 조선어연구회, 조선어사전 편찬회 조직
1927년 광통신 기술 개척한 인도 출신 미국 과학자 나린더 싱 카파니 출생
1922년 무솔리니,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부 수립
1920년 전인도 노동조합회의, 봄베이에 사무국 설치
1919년 중국 남북평화통일 선언
1908년 한일 어업협정 조인
1906년 토지건물증명규칙 반포
1903년 미국 북장로회선교사 모펫, 평양에 숭의여학교 설립
1887년 중국정치가 장개석 출생
1883년 최초의 신문 한성순보 발간
1874년 청, 타이완 출병을 둘러싼 베이징조약 체결
1846년 이탈리아 작가 에드몬도 데아미치스 출생
1795년 `희랍의 옛 항아리`의 저자, 영국 시인 존 키츠 출생
1517년 루터, 면죄부 비판… 종교개혁 점화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 성교회 정문에 ‘면죄부에 관한 95개조 논제’를 붙였다. 돈에 대한 교회의 무절제와 면죄부 판매행위를 격렬히 비난하는 공개 반박문이었다. 인쇄업자 손에 들어간 반박문이 단 2주 만에 독일 구석구석까지 퍼지면서 루터는 당대 최고의 종교개혁가로 부상했다.

1521년 4월 21일 그의 죄를 신문하기 위해 보름스 독일 의회가 열린 이날, 합스부르크 황제 카를5세가 물었다. “자신의 의견을 철회하겠느냐?” 이튿날 루터가 “저는 제가 인용해 온 성서와 제 양심의 가르침에 따르겠습니다”며 황제의 요구를 거부하자 일부 광신도들이 그를 “불속에 넣으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카를5세는 루터의 후원자인 프리드리히 선제후(選帝侯)와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그를 화형에 처할 수 없었다.

며칠후 루터가 보름스를 벗어났을 때 갑자기 복면의 한 무리가 그를 낚아채곤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가 도착한 곳은 선제후의 성이었고 그는 그곳에서 1년을 지내며 성서 번역에 매달렸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독일어 성서야말로 진정한 종교개혁의 출발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구원은 ‘오직 신앙’으로만 가능했고 권위는 ‘오직 성서’에만 주어질 뿐이었다.

루터는 로마 교황청이 사용하는 라틴어 성서에 의존하지 않고 성서의 원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그리스어 원전으로 된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옮겼고, 구약성서도 히브리어 원전에서 독일어로 번역했다. 비록 오류는 많았지만 토착어로 번역된 세계 최초의 성서였다. 교황의 '무오류성'을 지적한 루터였지만 그 자신도 오류가 적지않았다. 1520년대 일어난 농민봉기가 폭동으로 발전하자 무력진압을 주장하며 농민봉기를 참혹하게 진압하는 데 관여했고, 자신과 종교적으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거부반응을 보인 열렬한 반유대주의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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