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권 전 원불교문인협회장,칼럼니스트

애끊는 저 소리

'애'는 창자라는 뜻의 옛말로 ‘간장(肝腸)’을 강조하여 이르는 말 입니다. 그래서 크나 큰 아픔을 말할 때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그럼 이 ‘애끊는 저 소리’는 어떤 아픔일까요? 아마 그것은 애잔한 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이 그럴 것입니다.

저의 큰 딸이 뉴욕에서 조금 잘나가는 의상디자이너로 살고 있습니다. 지난여름에도 제가 다리가 아파 가지 못하니까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갔습니다. 그런데 이달 초에 또 잠시 출장을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부모 된 우리부부의 심정이 여간 애끊는 기분이 아닙니다.

이 안타까운 단장의 슬픔에 대한 고사(古事)가 전해져 오는 것이 있습니다.《세설신어(世說新語)》<출면편(黜免編)>에 보면 진(晉)나라 환온(桓溫)이 촉(蜀)을 정벌(征伐)할 때의 얘기가 나옵니다. 환온이 촉을 치기 위해 여러 척의 배에 군사를 나누어 싣고 가는 중이었습니다. 양쯔강 중류의 협곡(峽谷)인 삼협(三峽)이라는 곳을 지날 때 한 병사가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잡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 어미 원숭이가 환온이 탄 배를 좇아 백 여리를 뒤따라오며 슬피 웁니다. 그러다가 배가 강어귀가 좁아지는 곳에 이를 즈음, 어미 원숭이는 몸을 날려 배위로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미 원숭이는 자식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애를 태우며 달려왔기 때문에 배에 오르자 안타깝게도 죽고 말았습니다.

배에 있던 병사들이 죽은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았습니다.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이 창자를 끊어낸 것입니다. 배 안에 있던 군사들이 모두 놀라 환온에게 고했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환온이 새끼 원숭이를 풀어주고, 그 원숭이를 잡아왔던 병사를 매질한 다음 내쫓아 버렸습니다.

몇 년 전 중국의 한 농가에서 어미 곰이 새끼 곰을 목 졸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을 했습니다. 그 해 8월 28일자 ‘런민바오(人民日報)’ 등 중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중국 북서부 외곽(外廓)의 한 농가에서 쓸개즙을 채취하고자 곰 몇 마리를 포획(捕獲)하여 기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고당일에도 이농가에서는 우리에 갇혀있는 새끼 곰에게 산채로 고무호스를 삽입해 쓸개즙을 빼내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새끼 곰이 고통으로 비명(悲鳴)을 지르자 어떻게 알았는지 근처에 갇혀있던 어미가 우리를 부수고 철창(鐵窓)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새끼 곰이 갇혀있는 우리로 달려 왔습니다. 담즙(膽汁)을 빼내려던 작업 원들은 공포에 휩싸여 그대로 도망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근에 있던 목격자는 “달려오는 어미 곰이 새끼의 우리를 부수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아기 곰을 끌어안은 뒤 질식(窒息)시켜 죽였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새끼 곰이 숨을 거두자 어미 곰 자신도 벽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 처절한 모성애(母性愛)! 가슴이 다 떨려오지 않으시는지요?

자식을 잃은 슬픔이 이런 것입니다. 저 같이 미국에서 성공한 자식을 두고서도 ‘애’가 타는데, 생때같은 자식을 졸지에 잃은 부모들의 심정은 얼마나 ‘단장의 아픔’을 겪고 있을까요? 아직 세월호사태의 슬픔이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10월 12일 세월호 7시간 30분 조작이 터졌습니다. 청와대는 국가위기관리센터 캐비넷과 국가안보실 공유폴더 전산 파일에서 발견한 박근혜 정부의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청와대가 공개한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관련 자료를 보면, 2014년 4월16일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에 대한 최초보고를 오전 9시30분에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6개월 뒤인 10월 23일 당시 청와대는 실제 보고를 받은 시점을 30분가량 늦춘 10시에 최초보고가 있었다고 수정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10시 15분에 사고 수습과 관련해 첫 지시를 내렸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첫 보고 시점과 지시 사이의 시간 간격을 줄이려는 시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보고시점의 사후 조작은 법률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이에 대해 한 변호사는 “답변서를 제출할 당시, 9시 30분에 보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도 10시라고 고쳐 제출했다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세월호 유가족들의 애끊는 저 소리가 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야당의 한 국회의원은 세월호 특별법 통과를 요구하며 농성하는 유가족들에게 ‘노숙자들 같다’는 망언을 내뱉었습니다. 보수 논객이라 불리는 어떤 사람은 세월호 사건을 두고 “어디 시체장사에 한 두 번 속아봤냐”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어버이연합의 회원들은 단식 농성 중인 유가족들 앞에서 ‘먹는 단식 퍼포먼스’를 감행했고, 이에 질세라 극우 인터넷 게시판 ‘일베’의 회원들은 광화문에서 ‘먹 거리’ 집회를 열고 단식 중인 유가족을 조롱했었지요.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그들입니다. 애끊어지는 슬픔에 잠긴 그들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이 같은 국민인 저들의 슬픔을 달래주어야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할 도리가 아닐까요?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의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는 ‘인간성’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월호의 진실을 잘 모릅니다. 독립조사 기구였던 ‘세월호특조위’에게 주어진 권한은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것도 주어진 기한을 채우지 못하고 해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정부와 언론이 발표한 세월호사건의 전모는 조사의 끝이 아니라 의혹의 출발이었습니다. 따라서 세월호참사와 관련해 새로운 조사활동을 재개해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합니다. 그리고 내년 6.4 지방선거나 기타 선거를 기회로 문제제기와 이를 해결할 의지와 신뢰성을 드러내는 쪽에 더 분명한 지지를 보여주는 것만이 세월호의 희생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춘원(春園) 이광수(1892~1950)가 지은 <불자(佛子)의 노래>가 있습니다.「불자야 듣느냐 중생의 부름을/ 괴로움 바다와 불붙는 집에서/ 건져 주 살려 주 우짖는 저 소리/ 불자야 듣느냐 애끊는 저 소리」들리는 가요? 애끊는 저 소리가요!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장의 슬픔을 끝내게 할 때는 지금이 아닌 가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11월 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본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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