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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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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란 무엇인가
  • 김덕권
  • 승인 2020.09.28 0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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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란 무엇일까요? 사물의 본질이나 진리의 숨은 참뜻을 비로소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됨을 이르는 것이지요. 불교에서는 수행이 완성되어 증득(證得)하게 된 완전한 깨달음을 가리킵니다. 곧 부처의 상태를 이룬 것이나 부처가 됨을 뜻합니다.

이 자리를 불교에서는 구경각(究竟覺)이라 부릅니다. 다른 말로 보리(菩提) 또는 각(覺), 묘각(妙覺), 묘각지(妙覺地) · 묘각해지(妙覺海地) · 묘과(妙果), 적멸심(寂滅心) · 적멸심묘각지(寂滅心妙覺地) · 대보리(大菩提) ‧ 반야(般若) · 마하반야(摩訶般若) 등등 여러 가지 말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원불교는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 부처님이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대각(大覺) 하셔서 세운 종교라 ‘일원상의 진리’를 깨우치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말하지요. 원불교는 소태산 부처님의 이 깨달음으로 세운 종교입니다. 소태산 부처님은 7살 때부터 우주와 인생에 대한 회의를 품으셨습니다.

그 의심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독자적인 수도고행(修道苦行)에 들어가십니다. 26세 까지 가진 고행 끝에 1916년 4월 28일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처음 불교에서 깨달음을 찾으려고 했으나 불교에서 진리를 찾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새 종교를 설립하신 것입니다. <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표어(標語)를 내 거신 때가 원기 1년입니다.

원불교의 핵심 사상은 《일원상의 진리》입니다. 일원상은 다른 종교들이 ‘신(神)’을 믿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일원상》은 둥근 원 모양을 말합니다. 이는 모든 궁극적 진리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이나 하느님, 우주의 궁극적인 진리의 모습이 《일원상》이라는 것이지요.

원불교에는 대표적 수행교리 중 하나인 ‘삼학(三學)’이 있습니다. 즉,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를 뜻합니다. 이 ‘삼학’이 부처의 인격에 이르도록 하는 세 가지의 길입니다. 이렇게 ‘삼학’은 일원상의 진리를 깨우치고 체험하는 방법이고, 마음공부를 통해 부처가 되는 방법인 것입니다. 이 ‘삼학’을 행하게 되면, 누구나 부처의 마음을 가진 ‘자유인’이 되고, 원만한 인격을 이룬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원숭이 한마리가 절 숲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절의 스님들은 음식이 남으면 가져와서 원숭이에게 나누어 줍니다. 철이 바뀌어 한 스님이 새로 왔는데 스님은 무슨 버릇인지 먹이를 줄 때마다 원숭이 머리를 꼭 한 대씩 치는 것이었습니다. 참다못한 원숭이는 부처님 앞에 가서 하소연을 했지요.

“부처님 저 스님 다른 곳으로 좀 보내 주세요.” 이 소원이 먹혔던 것일까요? 그 스님이 어디론가 가고 다른 스님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먹이를 주면서 머리를 두 대씩 때립니다. 또 부처님을 찾아갔지요. “부처님 이번 스님은 저를 두 대씩 때립니다. 스님을 바꿔주세요.”

신기하게도 또 다른 스님이 왔는데 이번에는 세대씩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법당의 부처님이 하루는 원숭이 꿈에 나타셨습니다. “얘야, 왜 소원을 말하지 않는 것이냐. 또 바꿔 줄까?” 그런데 원숭이는 소원을 말하지 않고, 대신 깨달은 것이 있다면서 말씀을 올립니다.

“아이고 부처님! 맘에 안 들어도 맞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네 번째 오는 스님이 저를 죽일지도 모르잖아요!” 이렇게 불가(佛家)에서는 문제의 본질을 밖에서 찾지 말고 내 안에서 찾으라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삶이 문제가 아니라 삶을 보는 나의 생각이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세상의 불합리함을 어떻게 일일이 대적할까요? 마음을 바꾸면 세상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나도 변하고 남도 변하지요. 한 호흡 멈추는 곳에 사연(事緣)이 생겨나고, 한 호흡 멈추는 곳에 후회가 만들어지며, 한 호흡 멈추는 곳에 인연의 끈이 소멸되는 것입니다.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저 숲속의 원숭이처럼 한 일이 지나야 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래도 이 작은 깨달음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는 대각에 이르지 않을까요? 어리석은 개미는 자기 몸이 작아 사슴처럼 빨리 달릴 수 없음을 부러워하고, 똑똑한 개미는 자신의 몸이 작아서 사슴의 몸에 딱 붙어 달릴 수가 있음을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마찬 가지로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의 단점을 느끼면서 슬퍼하고, 똑똑한 사람은 자기 장점을 찾아내어 자랑하는 것입니다. 화내는 얼굴은 아는 얼굴도 낯설고, 웃는 얼굴은 모르는 얼굴이라도 낯설지 않습니다.

어떻습니까? 깨달음은 선방(禪房)에 왼 종일 쪼그리고 앉아야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 처처불상(處處佛象) 사사불공(事事佛供)>입니다. 우리 ‘소각소각(小覺小覺)’ 쌓고 쌓아 대각여래(大覺如來) 부처의 위(位)에 오르면 어떨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9월 2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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