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가족협의회 등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과 세월호국민대책회의 등 4.16연대 관계자들이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설치한 분향소에 헌화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어느덧 1년, 보통의 사고였다면 잊을 만한 시간이다. 그러나 세월호를 생각하면 우리 모두 ‘감정의 부채’를 덜지 못했다. 슬픔과 분노는 여전하지만, 또 다른 한쪽은 피로감을 느낀다.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의 감정 지형도를 조명해봤다.

[연합통신넷= 심종완, 임병용기자] “미안하고 죄스런 마음까지 사치로 느끼게 만드는 세상이 무서워요.”

신성주씨(24)는 아직도 휴학 중이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그는 말년 병장이었다. 그해 6월이 되자 전역한 신씨는 당초의 계획을 틀었다. 고향인 안산에서 모집하는 자원봉사단에 합류해 진도 팽목항으로 떠났다. 대학 복학을 위한 학비 마련은 조금 미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복학은 예상보다 더 미뤄졌다. 갑자기 집안의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자원봉사 이후 잡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그만둘 수 없었다. 그리고 생활에 치여 세월호와 팽목항의 기억도 흐려지기 시작했다. 어떨 때는 TV와 인터넷에서 들려오는 세월호 소식이 불편하기도 했다.

‘마음의 빚’만 쌓인 채 사는 자원봉사자

신씨는 진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 느낀 복잡한 심경을 기억한다. “그땐 정말 충격적이었는데, 글쎄, 지금은 ‘잊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은 못 쓰겠어요. 1년도 안 됐는데 잊고 있는 걸 보면….” 신씨가 도착한 진도체육관은 이미 시신을 발견해 떠난 희생자 가족들의 공백과 남은 실종자 가족들의 참담한 기대가 엇갈려 무거운 침묵만이 깔려 있었다. 한 달 남짓을 진도에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버스에서 신씨는 다짐했다. ‘사고가 다 매듭지어지면 꼭 여기 돌아와야지.’ 참사 1년 후, 아직도 매듭은 지어지지 못했고 ‘마음의 빚’만 쌓인 채다.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이 뒤섞인 고된 고깃집 서빙 알바생활은 이 빚을 갚을 틈을 주지 않는다.

자원봉사는 희생자·실종자 가족보다는 한 발 물러섰지만 보통의 시민들보다는 한 발 다가서 있던 자리였다. 신씨의 감정은 진도와 안산, 그리고 일터가 있는 서울에서 각기 다른 곡선을 그렸다. 안타까움과 하염없는 기다림 속에서도 일말의 희망이 있었던 진도에서와는 달리 안산의 집으로 돌아와서는 당장 닥쳐온 가정형편 탓에 피하기 힘든 갑갑함에 짓눌렸다. 서울에서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잡고 복학 준비를 하면서부터는 분노와 무기력이 교대로 찾아왔다. 분노가 절정에 치달았을 때는 ‘일베’ 회원들을 위시한 일군의 세력이 벌인 작년 9월 ‘폭식투쟁’ 당시였다. 그리고 동시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무력감이 밀려왔다. 신씨는 그날 광화문에 나가 일베 회원들을 때려눕히는 대신 고깃집에 출근해 불판을 닦았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세월호특별법 정부시행령 폐기를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당사자인 희생자 가족들의 지난 1년은 어땠을까. 세월호 참사로 언니를 떠나보낸 이예은양(14·가명)은 예상보다 덤덤했다. 인터뷰를 고민하던 부모님의 걱정과는 달리 밝은 목소리였다.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하고, 축 처지기도 하고…. 기분이 이랬다 저랬다 했어요. 엄마 아빠가 전보다 일찍 퇴근하려고 하고 자주 이야기 붙이는 건 좋긴 하죠.” 남은 세 식구 사이의 대화는 늘었지만 다 함께 있는 자리에선 언니 얘기와 세월호 얘기는 잘 안 나온다. “저보고 세상을 너무 빨리 알아버리는 거 아니냐고 아빠가 그랬는데, 그 말뜻이 다는 이해가 안 가요. 그냥 우리나라가 너무 잔인한 나라라는 건 알겠어요. 정부도, 사람들도….”

이양이 언니를 보낸 슬픔에서 겨우 헤어나오기 시작하면서 이양의 눈에는 고립된 부모님들의 모습이 비쳤다. 정확히는 진도 팽목항을 떠나 생계를 위해 직장으로 복귀하면서부터로 기억한다. 적극적으로 대책위 활동에 나서는 다른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도 컸다. 하지만 진상규명 대책을 놓고 묵묵부답인 정부를 볼수록 같은 고통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사라졌다는 고립감은 부모님뿐만 아니라 이양에게도 전해졌다. “지금 생각하니 엄청 미안한데요, 뉴스에 다른 가족들이 끌려나가는 모습을 보고, 욕 먹는 것을 보면서 차라리 우리 엄마 아빠는 저 자리 안 나가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긴 했어요. 근데 엄마는 뉴스 보면서 ‘저기 같이 있었으면 서로 달래주기라도 할 텐데’라고 하더라고요.”

이양은 언니의 운구가 동네 어귀를 돌 때 이웃들이 함께 눈물을 훔치던 모습을 기억한다. 이양은 참사 직후의 전 사회적 추모 분위기가 몇 달 만에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혐오로까지 급히 돌아선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양의 나이가 어려서 어려운 것만은 아닐 터이다.

언론정보학 전공 대학원생 이필운씨(29)에게도 한국 사회의 ‘급격한 감정 기복’은 풀기 힘든 숙제였다. 이씨는 지난해 가을학기 기말 보고서 주제를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의 보도와 그 반응에 관하여’로 잡았다. 사고 현장을 객관화시켜 보도한다는 언론의 보도를 한 차례 더 객관화시켜 학술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씨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제출 마감 전 주제를 바꿔 다른 내용의 보고서를 내는 데 만족해야 했다. “무수한 기사를 보면서 계속 든 의문이 현실을 순수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게 가능한지는 둘째 치고, 현실에서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다며 인간적 감정을 덮어놓은 채 쓴 기사들이 ‘사실’을 다루고 반영한 글이라고 할 수는 있을까 하는 거였죠.” 이씨는 답을 찾기 전까지는 논문도 보고서도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일시적 동정심 뒤이어 ‘혐오와 모멸’

사회과학에서 ‘감정’은 낯선 주제다. 개인의 생리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심리학 분야를 제외하고 정치·사회적 차원에서 감정의 문제를 다룬 학자는 많지 않다. 쉽게 계량하고 변화를 측정하기 힘든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씨도 세월호 이후 폭발한 한국 사회의 슬픔과 분노, 그리고 혐오의 감정까지 학문적으로 고민해보고 싶었지만 마땅한 이론틀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의 입장, 정부의 입장, 여당·야당의 입장, 무수한 입장들이 1년 내내 보도가 됐지만 반대로 그 보도를 지켜본 유가족들과 국민들이 느끼는 분노나 허탈감, 배신감은 철저하게 가려져 있더라고요. 국민들의 목소리란 건 고작해야 인양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묻는 설문 응답상의 ‘퍼센트’로만 남아 있고요.”

이씨의 지적처럼 한편에서 여러 감정이 폭발적으로 치솟는 듯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감정을 지워버린 건조한 대책 성명만 반복된 것이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의 ‘감정 상황’이다. 일부 학자들의 연구에서 이 상황을 해석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개인들이 사적인 상실에 대해 반응하자마자 곧바로 슬픔과 분노와 같은 감정들이 자주 생방송으로, 그리고 현장에서 전 세계로 방송된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진심으로 우러나와 털어놓은 명백한 진정성은 뭔가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잃어버리는 것들 중의 일부가 바로 공동체의 진정한 의미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스테판 메스트로비치는 자신의 책 <탈감정사회>에서 현장에서의 다양한 개인의 감정이 브라운관을 거치며 진정성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사회 구조를 지적한다. 자원봉사자 신씨가 가족들을 돕던 자리를 떠나 일상으로 돌아와 본 TV 뉴스에서 이질감을 느낀 현실에 걸맞은 분석이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동정심 피로’를 호소할 정도로 많은 동정심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한 빗나간 동정심은 문화산업이 대량으로 생산한, 알맹이가 없는 대체된 동정심이다. …이렇듯 새로운 동정심은 이제 하나의 사치품, 즉 ‘동정심 피로’로 귀착되는 소비재가 되었다. 이는 구매한 어떤 것에 싫증나게 되는 것과 아주 유사하다.” 메스트로비치의 분석은 세월호가 ‘지겹다’는 여론이 나오는 지금의 현실과 닮아 있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의 감정 기복은 공동체적 연대가 무너진 탓이다. 진심 어린 공감이 사라진 사회에 일시적 동정심으로 치솟았던 감정 지형에 뒤이어 깊은 피로감의 골짜기가 파이는 양상이다.

또 하나, 피로감과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감정 지형도 가운데 불쑥 솟아오른 봉우리 하나가 있다. 바로 혐오와 모멸의 감정이다. 지난해 9월 일베 회원들의 ‘폭식투쟁’ 이후로 세월호 가족대책위에 반대하는 일부 세력들의 전례 없는 혐오발언 및 행동들이 주목을 받았다. 여러 날을 굶고 있는 단식 농성자들 앞에서 음식을 먹어치우는 행동은 당위나 명분을 떠나 ‘비인간적’이라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그들은 당당했다. 이런 돌발적인 행동의 배경에는 어떤 감정이 자리 잡고 있었을까.

세월호 광화문 농성장에 걸린 참사 희생자 사진 앞을 시민들이 지나치고 있다.

세월호는 어제의 일이 아니라 오늘의 일”

“모멸을 주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여러 가지 기준으로 열등한 집단을 범주화하고 멸시하는 통념이나 문화의 위력도 만만치 않다. 일부 소수의 ‘잘난’ 사람들만을 환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박대 또는 천대를 받는 듯 느낀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는 상대를 멸시하는 이면에 깔린 사회 통념에 주목했다. 호남·여성 비하와 같은 그들만의 통념을 강하게 공유하는 일베 회원들이 오프라인에까지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된다.

그다지 ‘잘나지 못한’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이 ‘주제를 모르고’ 정부에 대드는 순간 어떤 이들에게는 혐오감을 느끼는 감정의 메커니즘이 발동된 셈이다. 혐오하고 모멸하는 감정이 휩쓸고 간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는 희생자 가족들과 동조하는 시민들의 절망감이 남았다. 김 교수는 “모멸은 정서적인 원자폭탄이라는 비유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폭력이며, 평생을 두고 시달릴 응어리를 가슴에 남기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어느덧 1년. 보통의 사고였다면 이제 망각의 터널로 들어갈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민들까지 감정의 부채를 덜지 못했다. 철학자 강신주씨는 수십년이 지나도 세월호를 어제의 일로 만들지 못하면 망각의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망각이란 삶을 좀먹는 기억들과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긴 하죠. 그런데 세월호는 어제의 지나간 일이 아니라 오늘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지금 당장의 사태를 잊어버릴 수는 없잖아요?”

이예은양은 16일 부모님과 함께 1년 만에 팽목항에 가기로 했다. 이양은 지난해 4월 사고 당시 갑작스런 기별을 받고 현장에 내려갔지만 하루 만에 안산으로 돌아와 언니의 마지막 얼굴을 보지 못했다. “사진을 계속 봐서 기억은 나는데, 사진 속 표정 말고 다른 표정은 안 떠올라서 속상해요.” 슬픈 목소리로 답하는 예은양에게 엄마가 말했다. “니 얼굴 그대로라서 거울 보면 잊고 싶어도 못 잊을 거야.”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