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넘게 이어온 길고 긴 뜨신 끈같은 인연 문인수 시인을 만나다

무슨 일인가, 대낮 한차례씩/ 폭염의 잔류부대가 마당에 집결하고 있다/ 며칠째, 어디론가 계속 철수하고 있다/ 그것이 차츰 소규모다/ 버려진 군용 텐트나 여자들같이/ 호박넝쿨의 저 찢어져 망한 이파리들/ 먼지 뒤집어쓴 채 너풀거리다/ 밤에 떠나는 기러기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몇몇 집들이 더 돌아와서/ 또, 한세상 창문이 여닫힌다.//- 문인수 시집『동강의 높은 새』(세계사, 2000) 중에서 ‘9월’ 전문

앞차에 헌 자전거가 한 대 실려간다. /끈을 문 트렁크 뚜껑이 질겅질겅, /자전거를 씹는 형국이다. 불가사리다. 자전거에 감긴 길, 길이 길 잡아먹는 것 본다. 경부고속도로, /나는 조수석에 기대앉아 지그시, /되새김질에 빠진 하마다. 청춘 …… 제맛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아, /잘 씹지도 않고 삼킨 길이 지금, /막힌 길이 저 아가리에 깜깜 오래 질기다 // -문인수 시집『적막소리』(창비, 2012) ‘귀성길’ 전문

지난 2007년 봄 필자(왼쪽 네번째)의 첫 시집 '카페 물땡땡' 출판기념회를 마치고 문인수 시인(왼쪽 세번째)과 나란히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박상봉
지난 2007년 봄 필자(왼쪽 네번째)의 첫 시집 '카페 물땡땡' 출판기념회를 마치고 문인수 시인(왼쪽 세번째)과 나란히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박상봉

추석 전날에 오랜만에 문인수 시인을 찾아뵙고 왔다. 문인수 시인은 해마다 추석이나 새해가 되면 꼬박꼬박 찾아뵙고 하례(賀禮)를 드려온 존경하는 선배 시인이다. 대구고등학교 문예반(계단문학동인회) 선배이며, 1980년대 중반에 처음 만나 35년 넘게 줄기차게 만나왔으니 그와는 ‘길고 긴 뜨신 끈’ 같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는 찾아뵙지 못하고 있다가 추석 문안 인사 겸 들린 것이다.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폭염의 잔류부대가 마당에 집결하고 있’는 그의 단독주택 거실에 들어서니 시인은 야윈 얼굴에 웃음기 가득한 표정으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다가가서 손을 잡았다. 시인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문인수 시인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시인이 앓고 있는 병마가 ‘잘 씹지도 않고 삼킨 길’ 같이, ‘막힌 길’처럼 ‘깜깜 오래 질기’게 시인을 붙들고 있다.

요즘 문인수 시인의 일상은 미당문학상을 받은 그의 출세작 ‘식당의자’와 같은 모습이다. ‘수성못 유원지 도로가에, 삼초식당 천막 안에, 흰 플라스틱 의자’처럼 ‘몇 날 며칠 그대로 앉아’ 지내는 시간이 많다. 천천히 걷는 것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걸음걸이가 예사롭지 못하고 말을 하는 것도 힘겹게 보였다.

문인수 시인은 1945년생 해방둥이다. 경북 성주(星州)가 고향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대장리 630번지가 본적지다. 방올음산이 내려다보는 이 번지에 그의 생가가 있다. 그 집은 ‘소잔등 둥두렷한 등성이 넘어 불쑥이//해 떠오르’(문인수 시인의 시 ‘아버지’ 중 일부)던 아버지의 집이요, ‘여름날 저녁 칼국수 반죽을 밀’면서 ‘둥글게 둥글게 어둠을 밀어내면/달무리만하게 놓이던’(문인수 시인의 시 ‘칼국수’ 중 일부) 흰 땅, 거기 지어진 어머니의 집이다.

‘‘청춘! 그 어디에서도 뿌리 내리지 못하고 떠돌던 타관객지(문인수 시인의 시 ‘빗소리는 길다’의 소재)를 고향에다 헌옷처럼 벗어 처박아놓고 대책 없이 빈둥거린 그런 세월이 있었다. 그 지리멸렬한 날들을 지금도 고향에 가면 아버지·어머니의 번듯한 집, 이제는 허물어져 가는 그 옛집(문인수의 시 ‘머위’ ‘칼국수’ 등의 소재)이 다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향은 역시 ‘육친’ 같은 것.’’이라고 회고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를 쓰고 글쓰기에 매달린 문학소년이었던 그는 시골 농업고등학교에 다니다가 1962년 어느 가을 날 대구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시 쓰기와 함께 학생문사들과 교류가 시작됐다.

이 오래된 흑백 사진은 1963년 가을에 대구고등학교 다니던 문학청년들이「달구문학의 밤」행사를 마치고 찍은 기념사진이다. 뒷줄 왼쪽 다섯번째가 문인수 시인. 당시 대구고등학교 3학년생으로 미소년이다. 남녀공학 아닌데 앞줄에 여학생들이 왜 끼었는지?
이 오래된 흑백 사진은 1963년 가을에 대구고등학교 다니던 문학청년들이「달구문학의 밤」행사를 마치고 찍은 기념사진이다. 뒷줄 왼쪽 다섯번째가 문인수 시인. 당시 대구고등학교 3학년생으로 미소년이다. 남녀공학 아닌데 앞줄에 여학생들이 왜 끼었는지?

그 시절을 회고하는 문인수 시인의 고백을 들어보자.

‘‘열일곱 살 되던 해인 1962년. 성주농업고등학교에서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아버지를 졸라 대구의 대구고등학교로 전학을 해버렸다. 바깥 세계에 대한 동경과 질투가 ‘쟁취’한 길. 그것이 나의 최초 ‘출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일이 내 ‘잘못 든 길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동국대 국문과로 진학했다는데 1966년 군입대와 더불어 문학청년 시절은 스스로 막을 내렸다. 문학인구, 문학환경을 떠나 여러해 객지를 떠돌며 방황하다가 그런 세월 20여 년 만에 마흔이 다 된 나이로 심상 신인상으로 소위 등단이란 걸 했다.

이 늦깎이 시인은 후생 각이 우뚝하다. 2000년 제11회 김달진문학상을 시작으로 2003년 제3회 노작문학상 수상, 2007년 제17회 편운문학상과 제10회 한국 가톨릭문학상, 제7회 미당문학상을 잇달아 수상하고, 2016년에는 무려 8천만원이라는 최고의 상금이 걸린 제9회 목월문학상까지 받고 한국시단에 전무후무한 지존의 자리로 올라앉았다.

문인수 시인이 유명세를 띄기 전 그의 생활은 빈한해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먼저 밥 사고 누구에게나 따뜻하며 늘 관대했다.

30년 전 내가 대구 시내에서 1980년대 중후반에 시인다방을 경영하다가 집안 사정으로 그만 두고 직장을 찾아 서울로 이주하였을 때 이야기다. 30대 초반 나이에 낯선 서울 땅에 올라가 일거리를 찾아 헤매다가 문인수 시인 덕분에 밥술이라도 뜨게 된 일이 있다. 그가 주간으로 일하는 잡지사 기자로 채용되어 다니게 된 것이다.

서울 장충동의 어느 영화잡지사 기자로 일하던 그 시절에, ‘아, 결국 기댈 데란 허공 뿐’인 ‘거처’, 네평 남짓한 골방에 기거하며, 거의 매끼니 국수만 드시는 시인을 뵌적이 있다.

‘국수를 너무 좋아해서 국수만 먹는다’고 말씀하셨지만 생활비를 아끼려고 그리 사신 줄 내 다 안다. 그는 모든 종류의 국수를 다 좋아 하지만 그 중에서도 누른국수를 특히 좋아한다. ‘누른국수’는 ‘경상도 칼국수’의 별칭이다. 그가 쓴 칼국수에 대한 시가 맛깔스럽다. ​

문인수 시인은 국수를 너무 좋아한다. 모든 종류의 국수를 다 좋아 하지만 그 중에서도 누른국수를 특히 좋아한다. ‘누른국수’는 ‘경상도 칼국수’의 별칭이다. 돼지국밥도 좋아 한다. / 사진=박상봉
문인수 시인은 국수를 너무 좋아한다. 모든 종류의 국수를 다 좋아 하지만 그 중에서도 누른국수를 특히 좋아한다. 돼지국밥과도 잘 어울리는 시인이다. 삶의 내용과 철저하게 육화된 그의 시는 돼지국밥의 누리끼리한 냄새와도 닮았다. /​ 요즘 문인수 시인의 일상은 미당문학상을 받은 그의 출세작 ‘식당의자’와 같은 모습이다. ‘몇 날 며칠 그대로 앉아’ 지내는 시간이 많다. 지난 7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시인의 단독주택 거실에서 심강우 시인(왼쪽)과 함께 문인수 시인(가운데)을 만나고 있다. /사진=박상봉 요즘 문인수 시인의 일상은 미당문학상을 받은 그의 출세작 ‘식당의자’와 같은 모습이다. ‘몇 날 며칠 그대로 앉아’ 지내는 시간이 많다. 지난 7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시인의 단독주택 거실에서 심강우 시인(왼쪽)과 함께 문인수 시인(가운데)을 만나고 있다. /ⓒ박상봉

어머니, 여름날 저녁 칼국수 반죽을 밀었다/둥글게 둥글게 어둠을 밀어내면/달무리만하게 놓이던 어머니의 부드러운 흰 땅.// 나는 거기 살평상에 누워 별 돋는 거 보았는데/그때 들에서 돌아온 아버지 어흠 걸터앉으며/물씬 흙냄새 풍겼다 그리고 또 그렇게/솥 열면 자욱한 김 마당에 깔려......아 구름 구름밭,/부연 기와 추녀 끝 삐죽히 날아 오른다.//이 가닥 다 이으면 통화가 될까./혹은 긴 긴 동앗줄의 길을 놓으며/나는 홀로 무더위의 지상에서 칼국수를 먹는다//-문인수 시집『배꼽』(창비, 2008) 중에서 ‘칼국수’ 전문

사실 그는 돼지국밥과 더 잘 어울리는 시인이다. 삶의 내용과 철저하게 육화되어 있는 그의 시는 돼지국밥의 누리끼리한 냄새와도 닮았다. 이규리 시인이 쓴 에세이 ‘문인수 시인의 스케치’ 에 보면 "그의 몸과 태도가 돼지국밥집과 절묘하게 어울린다"면서 "돼지국밥에 둥둥 뜬, 꺼먼 돼지털이 숭숭 박힌 비계를 질겅질겅 씹고 있는 그의 어금니 사이에서, 그리고 벌건 노을같은 국물 훌훌 마시고 나서 먼지 낀 창 넘어 먼 마을을 보는 그의 눈빛 사이에서 그의 빛나는 시가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고 고백하고 있다.

요즘 시인은 운동도우미의 도움을 받거나 아내와 함께 거의 매일 동네 공원까지 걸어가서 간단한 근력운동을 꾸준히 하며 지낸다. 가끔 한 동네 사는 심강우 시인의 산책길과 동선이 겹쳐 마주치면 심 시인과 나란히 걷기도 하고 나무벤치에 앉아 두런두런 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얼마 전부터 한번 자리에 앉으면 일어서는 동작이 잘 되지않는다. ‘생(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말을 듣지 않으니 ‘꽉 찬 먹구름이 무지근하게’ ‘마음을 자꾸 뭉게뭉게 뭉갠다. 생활이 그렇다.’ (문인수 시인의 시 ‘식당의자’ 중 일부)

요즘 문인수 시인은 운동도우미의 도움을 받거나 아내와 함께 거의 매일 동네 공원까지 걸어가서 간단한 근력운동을 꾸준히 하며 지낸다. 가끔 한 동네 사는 심강우 시인(오른쪽)의 산책길과 동선이 겹쳐 마주치면 심시인과 나란히 걷기도 하고 나무벤치에 앉아 두런두런 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요즘 문인수 시인은 운동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거의 매일 동네 공원까지 걸어가서 간단한 근력운동을 꾸준히 하며 지낸다. 가끔 한 동네 사는 심강우 시인(오른쪽)의 산책길과 동선이 겹쳐 마주치면 심시인과 나란히 걷기도 하고 나무벤치에 앉아 두런두런 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추석 연휴 지나고 나서 어제 오전에 심강우 시인과 함께 또 한번 찾아뵈었는데 문인수 시인의 ‘명절이 편안하다’. 걱정과 근심이 없어 ‘편안’해 보이기 보다는 내려놓은데서 오는 ‘편안’함이 느껴진다.

독서도 시작(詩作)도 다 내려놓았다고 한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무진장 부려놓던 절창들, 그 빛나는 시(詩)의 자궁이 거세된 시인의 무기력증에 대한 고백은 오히려 새장을 벗어나 푸른 창공을 나는 자유를 찾은 새 같다.

경지에 오른다는 것이 그러할 것이다. 문단 말석의 시인인 내가 보기에는 잠잠 앉은 자세와 표정만 봐도 시의 경지가 느껴진다.

이문열의 소설「시인」을 읽어 보면 시인의 경지가 어떤 모습인지 나온다. 김삿갓이 스승으로 섬기는 취옹은 필설로 시를 써 보여준 적이 한번도 없으나 스스로 소나무가 되고, 바위가 되고, 물이 되고, 구름이 되어 흐르는 지존의 경지를 보여준다. 세상을 떠돌며 김삿갓이 추구한 시의 길이 스승과 같은 지존의 경지에 이르는 도정이고, 결국 스승과 같은 지존이 된다는 이야기다.

들릴듯 말듯 더듬더듬 한무더기 말씀을 풀어놓는 시인의 어눌한 말투에 마음의 꽃이 활짝 만발한다.

어느날 저녁 퇴근해오는 아내더러 느닷없이 굿모닝! 그랬다. 아내가 웬 무식? 그랬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후 매일 저녁 굿모닝. 그랬다. 그러고 싶었다. 이제 아침이고 대낮이고 저녁이고 밤중이고 뭐고 수년째 굿모닝, 그런다. 한술 더 떠 아내의 생일에도 결혼기념일에도 여행을 떠나거나 돌아올 때도 예외없이 굿모닝, 그런다.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수고했다 보고 싶었다 축하한다 해야 할 때도 고저장단을 맞춰 굿모닝, 그런다. 꽃바구니라도 안겨주는 것처럼 굿모닝, 그런다. 그런데 이거 너무 가벼운가, 아내가 눈 흘리거나 말거나 굿모닝, 그런다. 그 무슨 화두가 요런 잔재미보다 더 기쁘냐, 깊으냐. 마음은 통신용 비둘기처럼 잘 날아간다. 나의 애완 개그, ‘굿모닝’도 훈련되고 진화하는 것 같다. 말이 너무 많아서 복잡하고 민망하고 시끄러운 경우도 종종 있다. 엑기스, 혹은 통폐합이라는 게 참 편리하고 영양가도 높구나 싶다. 종합비타민 같다. 일체형 가전제품처럼 다기능으로 다 통한다. 아내도 요즘 내게 굿모닝, 그런다. 나도 웃으며 웬 무식? 그런다. 지난 시절은 전부 호미자루처럼, 노루꼬리처럼 짤막짤막했다. 바로 지금 눈앞의 당신, 나는 자주 굿모닝! 그런다. - 문인수 시집『배꼽』(창비, 2008) 중에서 ‘굿모닝’ 전문

문인수 시인과 헤어지면서 나도 ‘굿모닝’ 그랬다. 그러고 싶었다. 틈날 때마다 자주 찾아뵙고 ‘굿모닝’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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