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른정당 유승민 당대표 후보가 지난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당대표 후보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 한겨레}

[뉴스프리존= 유병수기자] 탈당을 선언한 바른정당 의원 8명이 8일 탈당계를 제출하고 9일 한국당에 입당한다. 바른정당이 시작한, 창당 286일 만에 분당을 맞게 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의결을 계기로 지난 1월 24일 ‘개혁보수’의 기치를 내걸고 시작한 바른정당 9명 의원이 6일 탈당을 공식선언했다. 바른정당 창당의 한 축이었던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강길부·김영우·김용태·이종구·정양석·황영철·홍철호 의원 등이다. 대표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주호영 원내대표 역시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추가 탈당이 예상되던 바른정당이 새로 꾸려질 지도부에 ‘한 달 말미’를 주고 중도보수대통합을 추진하기로 합의하며 급한 불을 껐다. 바른정당 잔류파 의원들이 극적으로 갈등 봉합 수순에 들어가면서 일단 ‘2차 탈당 사태’라는 급한 불을 끄게 된 것으로 보인다.

현실의 정치

함께 탈당을 선언한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은 전당대회가 끝나는 13일 탈당하기로 했다. 8명은 9일 오전 10시 홍준표 대표의 입회하에 입당식을 갖고, 한국당에 공식 합류한다. 이로써 바른정당은 스무 석에서 12석으로 줄며 원내 교섭단체 지위를 잃었고, 한국당은 115석으로 늘어 민주당과 6석 차이로 간극을 좁혔다. 탈당 성명서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보수세력이 갈등과 분열을 뛰어넘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하나가 돼야 한다”고 했다. “작은 생각의 차이나 과거의 허물을 묻고 따지기에는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 위중하다”고도 했다. ‘구국의 결단’을 내세웠지만 바른정당 창당 과정의 언행을 돌이켜보면 개혁보수 뜻을 꺾은 ‘말 바꾸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 9명의 합류로 자유한국당 의석수는 현재 107석에서 116석으로 늘어난다. 한국당은 늘푸른한국당 등 다른 보수정당과의 통합을 가속화하는 한편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1대1 구도를 만드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10명의 의원은 8일 국회에서 회의를 열고 12월 중순까지 자유한국당은 물론 국민의당도 대상으로 하는 ‘중도보수 대통합’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유의동 의원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중도와 보수를 아우르는 대통합을 추진하기로 했다”며 “일단 큰 방향에 합의했으며 세부 내용은 2~3일 안에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늦어도 12월 중순까지 구체적 성과를 내는 한편 통합논의의 주체는 ‘11·13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새 지도부에 맡기기로 했다. 차기 당 대표로는 유승민 의원이 유력한 상황이다. 목적지는 자유한국당(옛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에서 나와 바른정당에 몸을 실은 뒤, 1년이 못 된 시점의 복귀다. 김 의원 등의 탈당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연관된 국정농단 사태 속에 보수진영 일각에서 들고 나왔던 ‘개혁보수정당’의 깃발은 거센 바람을 맞게 됐다.바른정당 통합파는 한국당 복당의 명분으로 ‘문재인 정부 독주에 대한 견제’를 내세웠다. 이들은 “오늘날 보수세력이 직면한 안타까운 현실이 더이상 지속돼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도 “문재인 정부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는 가치가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결단을 내렸다”면서 “모든 비난은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독주를 막고자 비난을 감수하고 한국당행을 택했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의“이합집산” 비판

국민의당에까지 문을 열어놓은 중도보수대통합은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김세연·정병국 의원 등이 적극적으로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앞서 통합파와 자강파 간의 통합논의 때도 ‘전대 연기 및 한국당과의 통합 전대’를 중재안으로 제시했으나 강경 자강파로부터 퇴짜를 맞았고 결국 내부 갈등의 불씨가 됐다. 원내 1당인 민주당(121석)은 바른정당 내 추가 이탈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제1야당인 한국당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국회 운영에 어려움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바른정당 잔류 의원 11명 중 6명이 추가로 한국당으로 넘어간다면 원내 1당 지위도 한국당에 넘겨주게 된다.

이 때문에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참가했던 바른정당의 일부 의원이 또다시 한국당에 무릎 꿇으며 돌아가려 하고 있다”면서 “어떤 명분도 양심도 없는 정치적으로 나 홀로 살고 보자는 이합집산”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민주당이 위기 국면 돌파를 위해 국민의당, 정의당을 향해 적극적으로 구애에 나설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김 교수는 “민주당이 인위적인 정계 개편을 하지 않겠다고 굳이 말하는 것은 국정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여러 가지 정치적인 연합을 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표현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중도통합

국민의당으로서는 바른정당 잔류 의원과의 연대가 더 공고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이후 바른정당 의원 추가 탈당 등의 상황이 이어지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추구하는 ‘중도통합’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을 방문 중인 안 대표는 “탈당하는 (바른정당) 의원에게는 (자신들이) 나온 정당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명분이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도대체 (한국당이) 무엇이 바뀌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은 페이스북에 “(바른정당과) 통합·연합·연대를 주장하던 국민의당이 어떻게 되겠느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됐다”고 비판했다.

소수 정당으로 전락한 바른정당 입장에서도 국민의당의 협조가 절실해졌다. 바른정당은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잃는 동시에 국회 내 위상 역시 급격히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지급받는 경상보조금이 대폭 깎이는 등 살림살이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선관위는 지난 2일 의석수 기준으로 바른정당에 14억 7600여만원의 4분기 경상보조금을 지급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의석수가 11석으로 줄어들면 바른정당은 8억 7000여만원이 깎인 6억 400여만원의 보조금만 받게 된다. 국회 상임위원장이나 상임위원회 간사 등을 맡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원내 협상 참여도 제한된다.

유승민의 리더십 도마 위에

그러나 향후 통합논의가 진척을 보이지 못하면 다시 탈당 움직임이 가속화할 수도 있다. 남 지사는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새 지도부에 한 달의 말미를 줬고, (그 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할 것”이라며 “늦은 감이 있지만, 노력을 해보자는 쪽으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바른정당의 위기 속에 자강파는 11·13 전당대회를 예정대로 치르기로 했다. 앞서 박인숙·정운천 의원이 후보직에서 전격 사퇴하면서 경선 주자는 유승민·하태경 의원, 정문헌 전 사무총장, 박유근 후보 등 4명으로 압축됐다.

바른정당은 전당대회에서 후보별 투표·여론조사 결과를 합쳐 당 대표와 최고위원 3명을 지명한다. 남은 후보자 4명 모두 당 지도부에 입성하는 셈이다. 유·하 의원, 정 전 사무총장 등 전대 후보 3명은 “보수통합이 아니라 보수교체, 야당교체가 시대정신이라는 데 뜻을 모았다”며 전대를 강행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분당 사태를 겪으면서 바른정당의 창당 주역이자 대주주인 유 의원의 리더십에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일각에서는 유 의원이 끝까지 당에 남아 ‘개혁보수’의 명분을 지켰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유 의원의 ‘타협 없는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올랐다. 유 의원은 “몇 명이 남더라도 우리가 가고자 했던 길로 계속 가겠다는 마음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극적으로 합의점을 찾으면서 최대 6명 의원이 추가 탈당할 것이라는 우려는 일단 걷히게 됐다. 앞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바른정당 모임이 진행되던 시간에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탈당하지 않은) 나머지 바른정당 분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득하기 어렵다. 이제 문을 닫고 내부 화합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남 지사는 “홍 대표 개인 생각일 뿐”이라며 중도보수 통합 추진 노력에 의욕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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