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망울처럼 순수하고 풋사과처럼 싱그러운 청년 김용락 시인 이야기

중년의 사내가/마음속 깊은 상처 하나를 안고/백사장에 앉아 가을의 바다를 본다/바다는 지난 여름의/격렬한 감정이나/ 불면과 고통으로 더이상 나를 압도하지 않는다/밀려가는 파도처럼 혹은 세월처럼/혁명도 이데올로기도/저만치 멀어져버린 것 같은/오늘의 견딜 수 없는 이 쓸쓸함/그러나 그 속에서 패배를 배우고 인생의 겸허를 느껴보자/나도 이제는/가을의 바다를 깨달을 수 있는 나이/물러날 때의 쓰린 비애를 제대로 배워보자// 김용락 시집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창비 1996 ) 중에서 ‘가을의 바다’ 전문

3년전 대구경북작가회의가 시인보호구역 갤러리에서 ‘지역 문인들의 애장품전’이 열렸다. 왼쪽부터 박상봉, 김수상, 이하석, 김용락, 이해리 시인이 애장품전 개막식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3년 전 김용락 시인이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장이었을 때 시인보호구역 갤러리에서 ‘지역 문인들의 애장품전’이 열렸다. 왼쪽부터 박상봉, 정 숙, 이하석, 김용락, 이해리, 김수상 시인이 애장품전 개막식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박상봉

김용락 시인의 시에는 인간의 희노애락이 담겨있다. 이 시도 그렇다. ‘백사장에 앉아 가을의 바다를’ 바라보는 ‘중년의 사내’는 ‘마음속 깊은 상처 하나를 안고’ 살아온 나날을 되돌아보고 인생을 관조한다. 바다를 보면서 ‘가을의 바다를 깨달을 수 있는 나이’임을 알게 되고 바다의 썰물 같이 물러날 때를 인정하고 인생의 겸허함을 배운다.

김용락 시인은 한없이 겸허한 친구다. 누구에게나 먼저 손 내밀고 지위나 빈부를 가리지 않고 누구 할 것 없이 공평하게 대할뿐 아니라 한없이 낮은 자세로 머리 숙일 줄도 안다. 며칠 전에 인간미 물씬 풍기는 이 친구와 함께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문인수 시인을 찾아뵌 일이 있다. 선생님 힘드실까봐 그리 오래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선배 시인의 아픔을 위로하고, 따뜻한 정담을 나눈 매우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요즘 김용락 시인은 서울에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매주말마다 서울과 대구를 오르내리면서 출퇴근하는 고단함이 녹록치 않을 터인데 바쁜 중에 짬을 내 문인수 선생님 찾아뵙고 싶다고 해서 코끝이 찡해졌다. 역시 김용락이다.

인간미 물씬 풍기는 김용락 시인(오른쪽)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문인수 시인을 찾아뵙고, 선배 시인의 아픔을 위로하고, 훈훈한 정담을 나누며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인간미 물씬 풍기는 김용락 시인(오른쪽)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문인수 시인을 찾아뵙고, 선배 시인의 아픔을 위로하고, 훈훈한 정담을 나누며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박상봉

다른 사람 같으면 차관급 정도의 요직에 앉아있으면 똥폼이나 잡으며 거들먹거릴 터인데 이 친구는 서울 올라가기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모습이 한치도 없다. 여전히 인간미 넘치고 시인으로서도 변함없이 ‘시 같지 않은 시’를 부지런히 쓰고 있다. 김용락 시인의 ‘시 같지 않은 시’는 사실 가장 ‘시 다운 시’다. ‘서정시의 원리에 충실한 고전적 사유와 감각을 보여 주면서도 삶의 근원과 구체성에 다다른 미학적 결실을 이루어낸’ 그의 시편들은 ‘도대체 시란 무엇인가’라는 황지우의 80년대식 질문을 다시 소환해 봐야할 분명한 사유(思惟)를 던진다.

이미 시단에서 손꼽히는 시인으로 대우 받는 김용락 시인이지만 필자는 깊이와 진폭이 넓은 이 시인의 문예미학과 문학적 가치성은 아직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보며,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그는 경북 의성 출신으로 대학 재학 중인 1982년 대구 진골목에 위치한 ‘사랑마당’에서 개인시화전을 열고 소시집『송사리떼를 몰고 하늘로』(흐름사, 1982)를 출간한 바 있다. 1984년 창작과비평사 17인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에 신작 발표로 등단해 『푸른별』 (창비, 1987), 『기차소리를 듣고 싶다』(창비, 1996), 『시간의 흰길』(사람, 2000),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 (문예미학사, 2008), 『산수유 나무』(문예미학사, 2016), 『하염없이 낮은 지붕』(천년의시작,2019) 등을 출간했다.

김용락 시인이 여섯 번째 시집 '하염없이 낮은 지붕' 추천사에서 염무웅 평론가는 "김용락은 막 돋아나는 꽃망울처럼 순수하고 금방 딴 풋사과처럼 싱그러운 청년이었다."고 회고했다.
김용락 시인이 여섯 번째 시집 『하염없이 낮은 지붕』 추천사에서 염무웅 평론가는 ‘김용락은 막 돋아나는 꽃망울처럼 순수하고 금방 딴 풋사과처럼 싱그러운 청년이었다.’고 상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용락은 시인은 대구지역에서 언론인으로, 교육자로 일해온 경력이 있다. 한때는 한나라당의 안방인 그곳에서 무소속 시민후보로 국회의원에 출마하기도 했고, 교육감 선거에도 야권의 단일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시인이 혼탁한 정치판에 뛰어든 것에 대해 걱정하는 이들도 많다. 그의 스승인 권정생 선생은 ‘정치와 전쟁은 악마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편을 거꾸러뜨리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고 선하기만 한 사람이 견뎌내기 힘들 것이라며 극구 말렸다고 한다. 반면에 그의 또 다른 스승 염무웅 선생은 ‘용락이처럼 맑고 깨끗한 인물이 정치권에 유입돼야 그나마 정치권의 탁한 물이 맑아질 수 있다’면서 격려해주었다고 한다.

필자는 정치를 믿지않는다. 국방이나 외교 분야에는 정치력이 필요하겠지만 경제 · 사회 · 문화 · 교육 분야나 평민들의 생활에는 정치가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친구가 걱정되고 말리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의 소신있는 정치 행보를 찬성하고 지지하게 됐다. 김용락 시인은 매우 따뜻하고 겸손하며 진솔한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범하나 비범한 기운이 넘치는 시를 쓰는 시인이다. 그의 인간적 면모, 특히 문학과 예술을 대하는 진정성과 한번 시작한 일은 그침 없이 매조지는 열정과 투지, 정도만을 걷는 그의 성품과 기질을 필자는 존경해마지 않는다.

 ‘막 돋아나는 꽃망울처럼 순수하고 금방 딴 풋사과처럼 싱그러운 청년’(염무웅)  ‘김용락 시인은 만만치 않은 한세월을 살았지만 여전히 소년 같은 미소를 짓는다. 그는 피가 뜨거운 사람인데, 어쩌면 그 뜨거운 피 때문에 여전히 소년으로 남아 소년의 미소를 짓는 것인지도 모른다.’(매일신문 조두진 기자)

시인으로, 정치인으로, 사회 운동가로 우렁우렁 우렁찬 기적을 울리며 내달리는 김용락 시인의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김용락 시인. 그를 만나 본 적이 없는 독자일지라도, 그의 시를 보면 그가 어떤 심성을 가진 사람인지, 그가 지향하는 시, 그가 지향하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만만치 않은 한세월을 살았지만 여전히 소년 같은 미소를 짓는 김용락 시인. 그를 만나 본 적이 없는 독자일지라도, 그의 시를 보면 그가 어떤 심성을 가진 사람인지, 그가 지향하는 시, 그가 지향하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기차소리를 듣고 싶다/아니, 기적소리가 듣고 싶다/가을비에 젖어 다소 처량하게/비극적 음색으로 나를 때리는/그 새벽 기적소리를 듣고 싶다/방문을 열면 바로 눈앞에 있던/단풍이 비에 젖은 채로 이마에 달라붙는/시골 역전 싸구려 여인숙에서/낡은 카시미론 이불 밑에 발을 파묻고/밤새 안주도 없이 깡소주를 마시던/20대의 어느 날 바로 그날 밤/양철지붕을 쉬지 않고 두들기던 바람/아, 그 바람소리와 빗줄기를 다시 안아보고 싶다/인생에 대하여, 혹은 문학에 대하여/내용조차 불분명하던 거대 담론으로/불을 밝히기라도 할양이면/다음날의 태양은 얼마나 찬란하게 우리를 축복하던가/그날은 가고 기적을 울리며 낯선 곳을 향해/이미 떠난 기차처럼 청춘은 가고/낯선 플랫폼에 덩그러니 선 나무처럼/빈 들판에 혼자 서서/아아 나는 오늘밤 슬픈 기적소리를 듣고 싶다// 김용락 시집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창비 1996 ) 중에서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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