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산 김덕권칼럼니스트

리터루족

최근 우리 두 늙은이가 살기엔 집이 너무 큰 것 같아 작은 평수로 옮겨갈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몸도 아프고 두 사람 다 기력이 모자라 청소는 물론 식사, 병구완 등이 힘들어서였지요. 그런데 이제는 그 생각을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작은 딸 애가 뒷집에 사는데 언제 집에 들어와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리터루족’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는지요? 독립해 가정을 꾸렸다가 경제적인 불안 때문에 다시 부모와 함께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입니다. 리터루족은 ‘돌아가다’라는 의미의 ‘리턴(return)’과 ‘캥거루족’을 합성한 말입니다. 캥거루족은 자식이 취업을 하지 못했거나 취업을 했음에도 임금이 적어 독립하지 않는 자식들을 일컫지요.

전문가들은 전세금이 치솟는 이른바 전세대란과 높은 주거비용을 따라가 주지 못하는 임금 상승률로 인해 ‘리터루족’이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주거비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는 등 안간힘을 쓰다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다시 부모와 함께 살기를 선택한다는 것이지요.

국민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2015년 전국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2년 전인 2013년에 비해 무려 24.5%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파트 값이 너무 올라 20~30대 청년층이 아파트 마련과 경제적 독립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리터루족’ 뿐만 아니라 부모에게 기대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않는 30대 이상의 자녀를 뜻하는 ‘빨대 족’, 생활고로 인해 부모의 집으로 다시 회귀(回歸)한 젊은 직장인들을 뜻하는 ‘연어족’, ‘니트족’ 등의 신조어가 난무합니다.

1년 6개월 전 결혼한 이모(29)씨는 최근 출산 후 양가 부모와 통화하는 일이 늘었습니다. ‘생활비 지원’ 때문이지요. “출산으로 직장을 그만 두고 남편 월급(약 300만원)으로 생활하는데, 대출이자, 보험료, 생활비 등 기존에 들어가는 돈에다 아이에게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다”는 게 결혼 후에도 손을 내미는 그녀의 항변입니다.

‘다시 직장에 나갈 때까지만’이라는 조건으로 모자란 돈을 지원받고 있다는 이씨는 “부끄럽지만 당장 아쉬운 상황이라 감사하게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주거와 양육 부담 등으로 인해 자식이 늙은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게 아니라 부모가 다 큰 자식을 ‘업고’ 살게 된 것이 여간 슬픈 현상이 아닙니다.

지난 10월 30일 취업포털 잡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남녀 1,061명 중 절반 이상(56.1%)이, 기혼자 중에서도 14.4%가 ‘스스로를 캥거루족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특히 부모에게 회귀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육아(育兒)입니다. 지난해 육아정책연구소 설문(20~50대 1,000명 대상) 결과, 10명 중 6명(59.6%)이 ‘양육비 부담을 느낀다.’고 토로할 정도라 자연스레 부모에게 금전적으로 기대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 살배기 딸이 있는 송지연(32)씨는 “친정에 아이를 맡기려고 근처로 이사를 갔는데 넉넉지 않은 형편을 알고 계시다 보니 아이 옷, 장난감 구매비용 등을 대주시는 경우가 잦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거비도 ‘리터루족’을 양산하는 원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예 부모 집 방 한 칸을 신혼 방으로 꾸미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직장인 주모(32)씨는 “가진 돈으로는 서울에 마땅한 집을 마련하기 어렵고, 힘들게 번 돈을 월세에 쓰기도 아까워 ‘한 3년 바짝 모으자’는 생각으로 합가(合家)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신한은행이 경제활동인구 1 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평균 9,105만원인 결혼자금 중 가장 부담스럽다고 꼽힌 항목이 ‘주거비 마련’(37.1%)이었습니다.

조금 여유 있는 부모는 ‘언젠가 줄 돈’이므로, 자식들이 고정적ㆍ안정적 수입이 있어도 미리 여윳돈을 준다고도 합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A(30)씨는 “취업 이후는 물론 결혼 후에도 생활비는 아버지 신용카드로 해결하고, 월급은 모두 저축한다.”고 했습니다.

보험, 적금 등 취업 전부터 부모가 납부해 주던 돈을 결혼 후 관성처럼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한국사회문제연구원’에서는 이런 현상을 “취업난 등으로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연령대가 계속 높아지다 보니, 과보호 경향이 결혼 후까지 자연스레 이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자식들 때문에 부모가 노후대비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제3차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조부모와 부부, 미혼자녀가 함께 사는 3세대 가족 비율은 2016년 기준 3.1%로 2010년(1.0%)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고 합니다. 결혼한 뒤 분가를 했지만 다시 부모의 집으로 돌아가 생활하는 ‘리터루족’의 증가는 부모의 노후 빈곤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리터루족’이 증가하면 부모세대는 노후저축을 전혀 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번 합니다. 한편 ‘리터루족’의 증가로 두 가족 이상이 거주할 수 있는 넓은 평형대의 아파트를 찾는 수요자들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온나라부동산포털’의 아파트 거래량에 따르면, 전용면적 85㎡를 초과하는 거래량은 2013년 12만9137건, 2014년 15만3547건, 2015년 17만2174건 3년 연속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우리가 이 ‘리터루족’을 곱지 않게 보는 이유는 과거처럼 마음에서 우러나는 ‘효’를 실천하는 개념이 아닌 경제적 상황에 부딪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자 택한 방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상 ‘전세대란’에 자식들 임금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달 31일 KB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전국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2억 120만원이었습니다. 전세계약기간 2년을 고려해 2013년 7월 전세가를 확인해보면 1억6160만원. 2년 새 24.5%상승했습니다. 재계약 때 보증금이 무려 4000여 만 원이 더 필요한 것이 현실입니다. 2년 만에 생활비를 제외하고 4000만원을 모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주거불안은 결혼과 맞물려 부모 자식 세대를 모두 위협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부모의 집을 담보로 신혼집을 마련해 달라는 등의 이야기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그렇다고 ‘리터루족’만 탓할 일도 아닙니다. 천만다행하게도 보태달라고 하기는커녕 두 늙은이의 모자라는 생활비를 보태주는 자식을 둔 사람은 가히 천복을 누린다고 할 수 있지 않을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11월 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본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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