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늙어 간다는 것..

곱게 늙어 가는 것이 간단치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곱게 늙지 않으면 인생의 끝장이 추해집니다. 그래서 저의 12번째 수필집 제목이 <봄꽃 보다 고운 잘 물든 단풍>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제 모두 잘 물든 단풍으로 익어 가시는지요!

곱게 늙어 가는 분을 만나면 세상이 참 고와 보입니다. 늙음 속에 낡음이 있지 않고 도리어 새로움이 있습니다. 이렇게 곱게 늙어가는 이들은 늙지만 낡지는 않습니다. ‘늙음과 낡음’은 글자로는 불과 한 획(劃)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품은 뜻은 서로 정반대의 길을 달 릴 수 있습니다.

‘늙음과 낡음’이 함께 만나면 허무(虛無)와 절망(絶望) 밖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늙음이 곧 낡음이라면 삶은 곧 '죽어감'일 뿐입니다. 늙어도 낡지 않는다면 삶은 나날이 새롭습니다. 몸은 늙어도 마음과 인격(人格)은 더욱 새로워집니다. 더 원숙(圓熟)한 삶이 펼쳐지고 진리에 대한 더 농익은 깨우침이 다가옵니다.

늙은 나이에도 젊은 마음이 있습니다. 늙어도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겉은 늙어 가도 속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 아름답게 늙는 것입니다. 겉이 늙어 갈수록 속도 더욱 낡아지는 것이 추(醜)하게 늙는 것입니다. 늙음과 낡음은 삶의 미추(美醜)를 갈라놓습니다.

곱게 늙어 간다는 것!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멋모르고 날뛰는 청년의 추함보다는 고운자태(姿態)로 거듭 태어나는 노년의 삶이 더욱 더 아름다울지도 모릅니다. 행여 늙는 것이 두렵고 서러우신가요? 그것은 마음이 늙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 바람에 지는 줄 모르는 낙엽이 땅에 떨어지기까지는 순간이지만, 그럼에도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것은 분명히 절규가 아니라 춤추는 모습입니다. 낙엽이 지기 전의 마지막 모습은 아름다운 단풍이었습니다. 말년의 인생 모습도 단풍처럼 화사(華奢)하고 봄꽃보다 고운 잘 물든 단풍처럼 장엄(莊嚴)합니다. 마치 해 질 녘의 저녁노을처럼 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유혹(誘惑)’과 ‘죽음의 공포(恐怖)’ 이 두 가지에서 벗어나고자 고민하는 것이 인생의 참 공부입니다. 죽음을 향해 가는 길이 늙음의 내리막길이 아닐까요? 인생도 오르는 길은 힘듭니다. 그래도 내려가는 길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삶의 길을 멋지게 내려가는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걸 우리는 수행(修行)이라 하는 것입니다.

첫째, 허공처럼 만드는 것입니다.

비움의 실천은 ‘버림’으로써 여백(餘白)을 만드는 일입니다. 분별(分別)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쁘고 밉고 참마음이 아닙니다. 좋고 나쁘고도 참마음이 아닙니다. 허공처럼 텅 빈 마음 그것이 참마음입니다. 없고 없고 또 없는 그 마음을 그대로 그대로 갖는 것이 허공처럼 텅 빈 마음이지요.

둘째,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의 경륜이 있어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입니다. 노인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신중함이 있습니다. 수행에 힘쓴 사람은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도옹(不倒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셋째, 늙는다는 것은 점잖다는 말입니다.

노인이 되면 언행이 무겁습니다. 그래서 어둡지 않지요. 품격이 고상하되 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점잖다’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지요. 젊은이처럼 감성에 쉬이 휘둘리거나 분위기에 가볍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점잖음은 중후(重厚)한 인생의 완결이자 노인이 보여줄 수 있는 장엄한 아름다움이지요.

넷째, 사리연구의 달인이 되는 것입니다.

늙으면 생각이 깊고 신중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삶의 경험과 평소 사리연구를 연마한 결과이지요. 노인이 되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러다 보니 했던 말을 또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일념통천(一念通天)! 곧 지혜의 샘물입니다.

다섯째, 10분의 6의 법칙입니다.

세상만사가 다 뜻대로 만족하기를 구하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천만 년의 영화를 누리려는 사람같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십 분의 육만 뜻에 맞으면 그에 만족하고 감사를 느끼는 것입니다. 또한 십 분이 다 뜻에 맞을지라도 그 만족한 일을 혼자 차지하지 아니하고 세상과 같이 나누어 즐기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재앙을 당하지 않을뿐더러 복이 항상 무궁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아름다움의 끝은 죽음입니다. 우리가 이 다섯 가지로 살면 곱게 늙어가고 마침내 장엄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해탈(解脫)이고 열반(涅槃)으로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 런지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10월 2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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