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월호 참사 1주기까지도 진상조사 활동의 근거가 될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결국 매듭 짓지 못하게 됐다. 지난 달 해양수산부가 내놓은 시행령안이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비판이 일자 차관회의 안건 상정 계획을 당초 9일에서 1주기 당일인 16일로 미뤘다가, 추가 검토를 이유로 또 한번 연기하기로 한 것이다. 이석태 특조위 위원장은 "(시행령을 차일피일 계속 미루거나 원치 않는 내용으로 통과시킬 경우) 자체적으로 인력을 뽑아 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연합통신넷= 심종완기자] 15일 복수의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세월호 1주기 당일 예정된 차관회의에 특별법 시행령을 안건으로 올리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언제 회의에서 다시 다룰지는 정해진 바 없다"고 말했다. 16일 실질적인 결론이 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결국 무산된 것이다.

정부는 특조위가 지난 2월 제시한 안을 포함해 유가족 및 국회 상임위에서 제시한 의견을 검토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린다는 입장이다. 또 15~16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나오는 방안도 추가로 반영할 계획이다. 연영진 해수부 해양정책실장은 "관련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최종 개선안이 나오면 특조위에 의견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현 시행령안 폐기 및 특조위 안 수용'이라는 유가족과 특조위 측 주장에 대해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협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유기준 장관 역시 지난 7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입법예고안을 철회할 수는 없으며, 일부 문항은 수정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 시행령이 특조위의 진상규명 범위를 정부 조사결과로 한정하고 위원회의 인력과 직제를 축소하는 등의 원안을 고수할 경우 상당한 난항이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이 이날 원만한 해결을 주문한 만큼 정부가 대폭 물러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 보인다.

한편 이석태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특별법이 제정된 지 5개월이 지났는데도 특조위는 제대로 된 조직도 예산도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는 (시행령에 대해) 의미 있는 말이나 행동을 보이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특조위는 공식 출범과는 별도로 진상규명의 첫 발을 뗄 계획이다. 권영빈 특조위 상임위원은 이날 "이달 하순쯤 사고 당시 해수부 상황실에서 근무하던 공무원을 소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며 "예컨대 참사 당시 구조 인력에 대해 과장ㆍ왜곡 브리핑이 나간 것에 대해 조사가 안 돼 있는데 왜 그랬던 것인지,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인지 등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9일, 세월호 참사 후 첫 대국민 담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며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엄정하게 처벌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포함한 특별법을 만들 것도 제안 합니다"라고 했다.

 

↑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1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후 유가족들이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조성된 참사 1주기를 추모하는 '기억의 벽'을 만지고 있다.

여야 의원들과 정부는 저마다 안전, 선박, 해상 관련한 법을 쏟아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4월 16일 이후 이달 현재까지 법안명에 '안전'을 명시해 발의한 법안은 230여건에 이른다. 특히 지난해 4월과 5월에 관련법 들이 집중 발의됐다.

전년도 같은 기간 동일 조건으로 발의된 법안이 150여건에 이르는 것과 비교할 때도 월등히 많다.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상임위에 접수만 됐을 뿐 상당수 계류중이다. 수상 구조자 자격을 신설하고 심해 잠수 훈련 시설을 설치하는 내용의 수난구호법 개정안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계류된 채 법안심사 한 번 받지 못했다.

유람선과 도선(연락선)의 선령을 제한하는 '유선 및 도선 사업법'은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운항을 금지하는 선령을 몇 년으로 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정해지지 않았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한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실적'과 관련되면서 안전 등에 대한 관련 법안들이 우르르 쏟아졌지만 실상 처리된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처리된 법안 가운데도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법들이 수두룩하다. 여론에 떠밀려 법안들이 쏟아지면서 위헌적인 요소가 담겨 있거나 법안의 한 구절 정도만 수정하는 수준으로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여야는 오랜 진통 끝에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세월호 특별법)', '정부조직법 개정안' , '범죄수익 은닉 규제 및 처벌법'(유병언법) 등을 통과시켰지만 아직 입법 성과는 없는 상태다.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어렵사리 활동을 시작했지만 출범 초기부터 세월호 시행령에서 특조위의 독립성 훼손, 조직 축소 등의 갈등이 빚어지면서 출범이 미뤄지고 있다.

특히 유병언 법으로 불리는 범죄수익 은닉 규제 및 처벌법은 "대형 참사를 일으킨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으면 자식 등 일가와 측근까지 관련 범죄로 얻은 범죄 수익 등을 몰수하거나 추징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입법 당시부터 제 3자의 재산권 침해와 헌법에 위배되는 연좌제적 성격을 띠는 유병언 법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본회의까지 통과했다. 이후 유 씨가 숨진 채 발견되면서 법 적용도 하지 못한 채 위헌 논란만 남겨졌다.

세월호 참사로 '관피아 척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통과된 '김영란 법(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 제정안)' 역시 알맹이는 빠진 채 포괄적인 곁다리 등이 포함되면서 위헌 논란을 사고 있다.

김영란법의 핵심인 이해충돌 방지 부분은 빠졌고, 당초 취지와 달리 민간 영역으로 법 적용 대상이 확대되면서 과잉입법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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