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슬리는 사또가 마뜩잖은 토착 세력 서열 싸움" 국학진흥원 웹진 담(談) 10월호 펴내

"무너져가는 재지사족(在地士族) 위상, 그를 지키기 위한 투쟁 향전(鄕戰)…."

한국국학진흥원은 '바람이 붕당(朋黨)'이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10월호를 펴냈다.

오늘의 일기-향전이 뭐길래 (만화:권숯돌)
오늘의 일기-향전이 뭐길래 (만화:권숯돌)

향전 이외에도 현대의 권력을 둘러싼 갈등과 그 함의를 조명하고자 이를 기획했다고 한다.

5일 웹진 담 10월호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더불어 사회 전반에 불안과 갈등이 커지면서 여러 대립 양상이 나타난다.

조선 시대 향전으로도 사회 갈등이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향전은 뜻 그대로 지역사회(鄕) 안에서 사회 갈등(戰)을 이야기하나 주로 영조, 정조 시대부터 지방을 장악한 사족에게 새 세력이 대항하며 생긴 불화를 일컫는 말이다.

숙종 대 이후 관료 중앙집중화 지속으로 지방 세력은 중앙 진출이 어려워지자 끊임없이 이를 시도한다.

그러면서 수령을 통한 지방 통제책에 거세게 저항했다.

백성 처지에는 위에서 군림하는 자들 갈등이기에 어느 쪽이나 자신들 이익을 침해하고 수탈하는 싸움이다.

박찬민 작가는 '바람이 붕당'에서 향전을 뮤지컬 시나리오 형태로 흥미롭게 풀어냈다.

등장인물 남인과 노론은 머물던 명륜당 근처에 불길이 덮쳐오고 있으니 진화를 도와달라는 유생 부탁에 대해 향교를 지킨다는 핑계로 무시한다.

협조는커녕 자신들 안위를 걱정하며 명륜당 현판을 방에 들여놓고 이를 화마에서 지킨다는 명분을 만들 때만 똘똘 뭉친다.

나름 명분이 서자 당벌(黨閥·같은 무리가 힘을 합해 다른 무리를 배척할 목적으로 뭉친 당파)에 눈이 멀어 또다시 작은 것 하나까지 거론하며 싸우고 만다.

정철 작가는 '지역 터줏대감 뚫는 법-향전'에서 과거나 현재나 지역에서 다양한 이유로 갈등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향전이란 새 용어로 쓰기 시작한 점부터 주목해야 한다며 유래를 세세히 풀어냈다.

향전이 일어나기 전 조선에서 양반이 유일하게 사회에 진출하는 방법은 과거시험에 합격해 관리가 되는 것이다.

과거시험은 소과 혹은 사마시라고 하는 1차 시험과 대과 또는 문과로 일컫는 2차 시험으로 나뉜다.

두 시험에서 최종 합격한 극히 일부 양반만이 한양을 중심으로 살아갔다.

1차 시험 중 생원시, 진사시가 있어서 이것만 합격한 생원, 진사만 해도 그 수가 적어 고귀한 존재였고 지역에서 엄청난 사회 지위와 위세를 보장받았다.

이 때문에 조선은 지역에 상당한 자율권을 줬다.

그들을 지역에 뿌리박은 양반집 사람들이란 뜻인 재지사족(在地士族)이라고 했다.

수령도 재지사족 협조 없이는 지역을 다스리기 어려웠다.

그러나 18세기 나타난 사회 상황으로 재지사족이 힘을 잃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나 권력이나 부를 좇는 경쟁은 대개 소수 승리자와 다수 패배자를 만들기 마련이다.

한양으로 소수 승리자 세력이 몰리며 시간이 지날수록 지방에서 과거급제자 수가 줄었다.

이런 양극 분해 현상은 양반, 평민 할 것 없이 모든 계층에 고루 나타났다.

주로 서울에 있는 잘나가는 양반은 전보다 훨씬 더 큰 권력과 부를 누렸다.

중인이나 평민 가운데 부 축적에 성공한 이들이 나왔다. 심지어 그들 가운데 일부가 과거시험에 붙기 시작해 유향소, 사마소, 서원, 향교 구성원 명단에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재지사족이 보기에는 근본 없는 자들 어이없는 요구였다.

이런 사유로 자신들 사회적 존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인 '향전'이 시작됐다고 유래를 밝혔다.

권숯돌 작가 '이달의 일기-향전이 뭐길래'에는 다소 어렵게 느껴지거나 생소할 수 있는 향전 의미와 배경을 만화로 쉽게 소개한다.

대부분 향전과 관련한 상소는 왕이 따로 비답(批答)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정조는 안동 유림에서 여러 차례 받은 상소에 더는 반복하지 않도록 지방 수령인 안동부사를 징계해 마무리했다. 향전은 단순히 지방 양반 사이 싸움이 아니라 끝내 왕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조선 후기 권력 구조 다층성과 변동양상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시나리오 작가 홍윤정은 '증오 권하는 사회'에서 분열과 반목을 목격하는 것이 어느덧 일상이 돼버렸음을 이야기한다.

싸움은 늘 비슷한 배경과 비슷한 목표를 가진 사람 간에 일어나곤 한다며 영화 방자전에 변학도 부임 잔치 장면에서 향전을 예로 든다.

대과에 합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새파랗게 젊은 변학도가 사또로 부임하니 몇 대에 걸쳐 지역에 뿌리박고 사는 토착 세력에게는 사또가 당연히 마뜩잖았다.

웹진 편집장을 맡은 이수진 뮤지컬 작가는 "코로나19란 역병에서 온갖 비이성과 부조리가 투명하게 떠오르는 장면들을 목격한다"며 "이 광기들이 다시 가라앉게 둔다면 역병이 사라진다 해도 사라진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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