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재(德山齋)》 거실에는 『중화지도(中和之道)』라고 쓴 휘호(揮毫)가 결려 있습니다. 제가 오랜 동안 일하던 「원불교 청운회(靑耘會)」 직을 물러 날 때 당시 원불교 종법 사님이셨던 좌산(左山) 이광정(李廣淨) 종사(宗師)님께서 내려 주신 기념휘호이지요.

『중화지도』란 무엇인가요? 중화지도라 함은 한마디로 말하여 음(陰)에도 양(陽)에도 치우치지 말고 균형을 취하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어느 한 곳에 편중(偏重)되는 것은 절대로 금물입니다. 또 편견이 있어도 안 되며, 상하, 좌우, 종횡, 남북 할 것 없이 이 모두가 중화를 이룰 때 비로소 중심을 이루고 균형을 유지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중화지도야말로 세상의 도중에 가장 중요한 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카페 「덕화만발」의 <4대강령>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는 편협한 종교, 이념, 정치를 배격하고 중도를 지향한다.>입니다.

중앙일보 11월 13일 자에 종교전문 백성호 기자가 우리 좌산 상사(上師)을 방문해 [원불교 좌산 상사 “자기편 맹신, 상대편 불신 땐 다 같이 공멸”]이라는 제하의 기자회견 전문을 실었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이 바로 이 시대. 우리 덕화만발 강령(綱領)과 부합하여 요약 정리해 보았습니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 11일 3일 전북 익산시 금마면 구룡길에 있는 원불교 상사원을 찾았다. 바로 뒤에는 미륵산이 우뚝 서 있었다. 거기서 원불교 최고 어른인 좌산(左山) 이광정(李廣淨ㆍ84) 상사를 만났다. 죽을 고비를 넘긴 근황이 놀라웠다. 좌산 상사는 지난해 12월 라오스로 의료봉사를 떠났다가 현지에서 쓰러졌다. 긴급 이송해 한국에서 심장 박동장치를 다는 심장 수술을 했고, 올해 1월에는 구강암 수술까지 했다. 수술 후 불과 며칠 만에 그는 병원 복도에서 하루 2만보씩 걸었다. 담당 의사는 “이렇게 빨리 아무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깜짝 놀랐다. 그것도 80대 중반의 환자가 말이다.

좌산 상사는 『국가경영 지혜』라는 책도 썼다. 익산 금마면 구룡리에 좌산 상사가 들어와 ‘십룡(十龍)’이 됐다는 이야기가 돌만큼 도인(道人)으로도 통하는 그에게 ‘나라 살림의 지혜’를 물었다.

ㅡ중세 때 흑사병이 유럽을 휩쓴 뒤에 비로소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코로나 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뭔가. “코로나는 ‘합리적 지혜’를 외면하는 인간의 오만을 강타하는 것이라 본다.”

ㅡ어떠한 인간의 오만인가.

“중국에서 처음에 한 의사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를 했다. 중국 정부는 그걸 무시했다. 그리고 호되게 당했다. 거기에는 중국식 정치 제도의 오만이 있다. 코로나는 그러한 오만을 강타했다. 또 미국은 자유에 대한 오만 때문에 크게 당하고 있는 것이다.”

ㅡ자유에 대한 오만이라면.

“‘코로나가 확산돼도 나는 괜찮다’며 자유롭게 생각하는 식이다. 자유는 좋은 것이다. 그렇지만 자유가 오만에 빠지면 남을 해코지한다. 미국은 그런 딜레마에 빠져 있다. 코로나는 바이러스 아닌가. 오만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로 대처해야 한다. 그게 이치에 합당한 것이다.”

좌산 상사는 종교도 예외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코로나 시국에 ‘나의 신앙생활은 괜찮아’라고 하는 것도 오만이다. 그 때문에 우리 사회가 심한 홍역을 치렀다. 한국 사회는 두 가지 병을 앓고 있다. 소위 ‘믿음 병’ 이다. 하나는 무조건 믿는 맹신 병이고, 또 하나는 무조건 안 믿는 불신 병이다.”

ㅡ맹신과 불신의 대표적인 곳이 정치권이다. 자기 진영에 대한 맹신과 상대 진영에 대한 불신. 한국사회 진보와 보수의 무조건적인 대립과 갈등은 어찌 풀어야 하나.

“정치 현실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모두 필요하다. 그런데 명심해야 할 게 있다. 역사는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게 아니다. 살아서 움직이며 늘 변용한다. 그래서 보수적 시각을 갖고 있더라도 진보적 시각으로 대처해야 할 때가 있다. 반대로 진보적 시각을 갖고 있더라도 보수적 시각으로 대처해야 할 때도 있다. 이걸 제대로 못 하면 어찌 되겠나. 나라가 망한다. 역사 속에 그런 예는 많다.”

좌산 상사는 “역사 속에는 진보가 대처해야 할 때가 있고, 보수가 대처해야 할 때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가만히 현실을 주시하고 있다가 진보적 시각이 두드러질 때는 이쪽 사람을 쓰고, 보수적 시각이 두드러지는 상황에서는 또 저쪽 사람을 써야 한다. 그걸 잘해야 한다. 그럼 누가 좋아지겠나. 결국 국가가 좋아지고, 국민이 좋아지는 거다. 그런데 지나치게 자기 진영을 맹신하고, 상대 진영을 불신하면 어찌 되겠나. 다 같이 공멸하고 만다.”

ㅡ왜 권력 뒤에는 부정부패가 따르나.

“그동안 사회 부정부패를 어지간히도 봤다. 이만큼 세월을 살다 보니까 보이는 게 있다. 인간의 속성상 평소에는 잘하다가도 권력만 잡으면 달라지는 사람이 있다. 왜 그렇겠나. 권력을 잡으면 이기주의에 매몰되기 때문이다. 그걸 깨려면 ‘무아봉공(無我奉公)’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게 쉽지는 않다. 원불교의 교리도 마지막 결론은 ‘무아봉공’이다. 나의 사리사욕을 다 없애고, 공(公)을 위해서 일하는 거다.”

얼마 전 작고한 이건희 삼성회장은 원불교 교도였다. 좌산 상사는 원불교 최고지도자인 제4대 종법사를 역임했다. 그에게 소회를 물었다. “지금은 반기업적 정서가 많지 않나. 그런데 여러분 세대는 아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얼마나 일본과 대립하면서 살았나. 그래도 ‘일제, 일제’ 하고 ‘소니, 소니’하면서 최고로 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한국 제품은 알아주지도 않았다.

그걸 삼성 이건희 회장이 나와서 바꾸어 놓았다. 원불교 교도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사실 하나만 하더라도 그 공로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우리 역사 속에 찌들어 있던 가난을 바꾸어 놓지 않았나. 그걸 어떻게 과소평가할 수 있겠나?”

인터뷰를 마치고 상사원 앞뜰을 잠시 거닐었다. 날이 꽤 차가웠다. “가장 가슴 깊이 담아두는 원불교의 한 구절”을 물었다. 좌산 상사는 “요건 좀 매운 질문”이라며 ‘일원상 게송(偈頌)’을 꺼냈다.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부처님이 열반에 앞서 미리 내린 게송이었다. “유(有)는 무(無)로 무는 유로/돌고 돌아 지극(至極)하면/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

좌산 상사는 “유에 있어도 유에 집착하지 않고, 무에 있어도 무에 집착하지 않으면 대자유의 세계에 있을 수 있다”고 풀어주었다.

<좌산 이광정 상사가 말하는 신통과 합리>

소태산 부처님(원불교 창교자, 본명 박중빈, 1891~1943) 계실 때였다. 당시 집들은 대부분 초가였다. 소태산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짚으로 지붕을 덮었으면 새끼줄로 묶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제자들은 그 말을 듣고도 안 묶었다. “갑자기 바람 불면 어쩌려고 안 묶었느냐?”고 물었다. 제자들은 “여기는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습니다. 오늘 밤에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날 밤에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결국 지붕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이튿날 제자들은 “소태산 부처님은 신통(神通)이 있으시다. 지난밤에 바람이 부는 걸 어떻게 아셨지?”라고 수군거렸다. 그걸 보고 소태산부처님은 심하게 꾸짖었다. “나는 합리적이고 바른길을 일러주었지. 신통하는 길을 일러준 게 아니다!”】

어떻습니까? 유에도 집착하지 않고, 무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대 자유를 누리는 것이 바로 이 ‘중화지도’가 아닐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11월 1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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