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품 전문가 양의숙씨 제주공예박물관 개관... 걸작 26점 소개

추사 의문당 현판 틀장식도 제주민화 도상 눈길...보물지정 가치

[서울=뉴스프리존]편완식미술전문기자=제주문자도의 전형을 한자리에서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3단구성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제주문자도’전이 오는 12월 13일까지 제주공예박물관에서 열린다. 지난달 24일 문을 연 제주공예박물관이 개관기념전으로 마련한 이번 전시에는 대부분 개인소장의 미공개 걸작 26점이 소개된다.

육지와는 다른 독특한 구성과 미감을 지닌 제주문자도는 유교의 여덟 가지 덕목인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를 담았지만 제주 생산력의 토대인 자연생태 도상를 버무려 놓았다. 물고기와 새, 해초, 나비와 꽃 등이 채워져 있다. 사당과 감실,고팡상 등이 연상되는 도상도 눈길을 끈다.

3단구성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있다. 제주신화의 하늘,땅,바다 3계(界)의 형상화로 보는 시각도 있고, 유교의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사상의 반영으로 보기도 한다.

미술평론가 김유정은 제주의 가름(分)문화에서 3단구성의 연원을 찾는다. 제주인의 정신세계에는 늘 확실한 분할,의존하지 않는 독립성이라는 나눔과 분담의 원칙이 있다. 안거리,밖거리라는 세대간 분가제도와 재산과 제사도 장자중심이 아닌 형제간 균등하게 가르는 상속제도에서 볼 수 있다.

내용적인 측면에선 유교와 토속신앙(무속)의 타협적 도상으로 김유정 평론가는 분석한다. 상단은 주로 사후세계와 연관된 사당과 꽃, 지상을 연결시켜주는 전령으로 새와 넝쿨식물이 등장한다.중단은 유교의 도덕적 이념인 효제충신예의염치 문자가,하단은 제주 생산력의 주무대인 바다 물고기와 해초,섬의 식물들을 그렸다. 다시말해 상단의 사당이나 누각은 천상을 상징하는 이미지로서 내세에 대한 희구(希求)를 나타내고, 중단의 유교적 덕목은 사람들이 지켜야 할 도리다. 하단의 바다와 물고기, 새 등은 현실의 생업을 반영한다. 무속적 색감부터 문인화의 먹색까지 수용된 모습이다. 모필이 아닌 새(띠)를 붓삼은 비백효과는 현대미술의 조형미를 방불케 한다.

3단형태를 창호(窓戶)의 맥락에서 보기도 한다. 창호로 상징되는 유교적 덕목을 창호의 틀인 상단과 하단이 장식하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제주 궤의 모서리 장식을 연상시킨다.

정병모 경주대 교수는 제주의 자연이라는 액자에 육지의 문자도를 끼어 넣은 형국이라고 설명한다. 육지의 문자도를 수용했지만,그대로 카피한 것이 아니라 제주의 자연으로 재해석 했다는 얘기다. 제주인의 강한 자의식을 엿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제주추사관에 전시되고 있는 의문당((疑問堂) 현판의 틀장식을 주목한다. 도상이 제주민화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추사의 현판글씨를 문자도처럼 제주 도상이 에워싸고 있다.

양의숙 제주공예박물관 관장은 “의문당 틀장식으로 미루어 보아 제주문자도의 연원을 최소한 19세기 전반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며 “추사글씨를 민화도상이 장식하고 있는 의문당 현판은 마땅히 보물로 지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시대 대학자이자 예술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은 제주 대정현에서 유배생활 9년동안 많은 작품을 남겼다. 국보 제180호 세한도와 추사체를 완성한 것이다.

의문당은 추사가 제주유배시절 대정향교에 써 준 현판이 있다. ‘의심나는 것을 묻는 집’이라는 뜻을 지닌 의문당은 향교에 걸맞는 제액으로 제주지역 유생들과 추사와의 교류 흔적을 짐작케 해준다. 1846년 11월에 강사공이 추사에게 청하여 써주었고 향원 오재복이 새겼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현판은 대정향교 학생들의 공부방인 동재에 걸었다. 1928년 봄 동재를 중건한 후 다시 걸었다고 현판 뒷면에 쓰여있다. 대정향교는 추사의 유배지와 2km 정도 떨어진 단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이 현판은 현재 대정읍 제주추사관에 기증돼 전시되고 있다.

제주문자도는 배타성이 강한 제주도가 유교를 나름의 방식으로 수용한 모습을 엿보게 해준다.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이 토속신앙의 신당과 사찰을 불태우는 ‘종교 탄압’을 가했을 정도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교문자도 병풍이 양반의 상징처럼 여겨지면서 1960년대까지만 해도 결혼, 상장례, 제사 등 제주도의 민간 대사(大事)에는 유교문자도 병풍이 무대장치처럼 등장했다.

제주시 한경면 저지 문화예술인마을에 자리한 제주공예박물관은 제주 출신 양의숙 관장(74)이 고향에 문을 연 공예 전문 박물관이다. 양 관장은 KBS 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의 감정위원을 1995년 첫 방송 때부터 지금까지 맡고 있는 민속품 전문가다. 서울에서 고미술 전문화랑 예나르를 운영해온 양 관장은 “제주공예박물관에서 제주반닫이를 비롯한 제주 공예품은 물론 타 지역의 민속공예품도 두루 소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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