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권 전 원불교문인협회장, 칼럼니스트

어느 노부부의 사랑노래

몇 년 전부터 저는 다리가 아파 잘 걷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조금 만 걸어도 다리에 힘이 빠지고 엉치뼈에서 허리까지 통증이 찾아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니 자연 점점 꼼짝도 안하고 글 쓰는 데에만 여념이 없지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내가 점점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그 동안 저를 케어하며 저의 다리 역할을 하던 아내가 아픈 것을 보고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아뿔싸!” 언제까지나 저 보다는 건강해 저를 보호해주던 아내가 기실 저보다 더 심각하다는 생각을 하니까 잠이 다 오지를 않습니다. ‘아! 이제는 어떻게든지 내가 건강을 되찾아 아내를 보호해 줘야지!’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양손에 등산용 지팡이 두 개를 짚고 조금씩 걷기를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조금만 걸어도 다리는 아파오고 숨도 차오르며 심장도 마구 뜁니다. 그래도 어금니를 물고 우선 집 앞의 공원에서 죽기 살기로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여기 참으로 애달픈 어느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구나 늙은이들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노부부의 사랑노래를 널리 전합니다.

「우리 부부는 조그마한 만두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손님 중에서 어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면 어김없이 우리 가게에 나타나십니다. 대개는 할아버지가 먼저 와서 기다리지만 비가 온다거나 눈이 온다거나 날씨가 궂은 날이면 할머니가 먼저 와서 구석자리에 앉아 출입문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할아버지를 기다리곤 합니다.

두 노인은 별말 없이 서로를 마주 보다가 생각난 듯 상대방에게 황급히 만두를 권하시며 눈이 마주치면 슬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눈물이 고이기도 했습니다. 대체 저 두 노인들은 어떤 사이일까? 나는 만두를 빚고 있는 아내에게 속삭였습니다. “글쎄요. 부부 아닐까요? 그런데 부부가 무엇 때문에 변두리 만두 가게에서 몰래 만나요? 허긴 부부라면 저렇게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진 않겠지. 부부 같진 않아. 혹시 첫사랑이 아닐까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서로 열렬히 사랑했는데 주위의 반대에 부딪혀 이루지 못한 사랑. 그런데 몇 십 년 만에 우연히 만났다든가 하는 얘기요.” “서로에게 가는 마음은 옛날 그대로인데 서로 가정이 있으니 어쩌겠는가. 그래서 이런 식으로 재회를 한단 말이지? 아주 소설을 써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아내의 상상이 맞을 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따뜻한 눈빛이 두 노인이 아주 특별한 관계라는 걸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근데, 저 할머니 어디 편찮으신 거 아니에요? 안색이 지난 번 보다 아주 못하신데요?” 아내 역시 두 노인한테 쏠리는 관심이 어쩔 수 없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따라 할머니는 눈물을 자주 닦으며 어깨를 들썩거렸습니다.

두 노인은 만두를 그대로 놔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돈을 지불하고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고 나갔습니다. 나는 두 노인이 거리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시선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걷는 할머니를 어미 닭이 병아리를 감싸듯 감싸 안고 가는 할아버지!

두 노인의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 아내 말대로 첫사랑일까? 사람은 늙어도 사랑은 늙지 않는 법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어머? 비가 오네. 여보, 빨리 솥뚜껑 닫아요.” 그러나 나는 솥뚜껑 닫을 생각 보다는 두 노인의 걱정이 앞섰습니다.

우산도 없을 텐데… 다음 주 수요일에 오면 내가 먼저 말을 붙여 물어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리 가게에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처음엔 몹시 궁금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 노인에 대한 생각이 엷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사람인가 봅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난 어느 수요일 날, 정확히 3시에 할아버지가 나타나셨습니다. 좀 마르고 초췌해 보였지만 영락없이 그 할아버지였습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조금 웃어보였습니다. “할머니도 곧 오시겠지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못 와. 하늘나라에 갔어.” 하는 겁니다. 나와 아내는 들고 있던 만두 접시를 떨어뜨릴 만큼 놀랬습니다. 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우리 부부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서, 너무 안타까워서.

두 분은 부부인데 할아버지는 수원의 큰 아들 집에, 할머니는 목동의 작은 아들 집에 사셨답니다. “두 분이 싸우셨나요?” 할아버지께 물었습니다. “우리가 싸운 게 아니라 며느리들끼리 싸웠어” 큰 며느리가 “다 같은 며느리인데 나만 부모를 모실 수가 없다”고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공평하게 양쪽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한 분씩 모시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두 분은 일주일에 한 번씩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 만난 거랍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신 것이지요. “이제 나만 죽으면 돼. 우리는 또 다시 내생에도 같이 살 수 있겠지.” 할아버지는 중얼거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습니다. 할아버지 뺨에는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떠한가요? 가슴이 먹먹하지 않으신가요? 지금까지 저는 아내보다 먼저 간다는 생각만 하고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슴만 덜컥 내려앉습니다. 아내가 먼저 갈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서이지요. 그렇다면 아내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제가 걷지 않으면 아내보다 먼저 죽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아내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합니다. 노인에게 가장 좋은 운동은 바로 걷기라고 합니다. 걷기는 완벽한 운동이며, 특히 노약자에게는 가장 안전한 운동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꾸준히 하루 30 분 정도 활기 있게 걸으면 만성질환의 30~40%는 줄어들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명(命)이야 하늘에 달렸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에겐 그 동안 닦아온 법력(法力)이 있습니다. 이미 우리 부부는 생사를 초탈(超脫)하고, 죄와 복을 임의로 하며, 마음을 자유로 할 수 있는 수행을 오랜 동안 해온 몸들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한 날 한시에 떠날 수 있는 ‘노부부의 사랑노래’를 마음껏 부르다가 해탈의 문으로 어서 들어가면 좋겠는데, 이를 어찌하면 좋을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11월 1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본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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