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은 꿈에 부푼 시작에 비해 비극적 종말을 고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은 마치 승전보를 전하고 죽은 페이디피데스의 비극적 최후와 같다.

천신天神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 휘하에는 마라토스라는 용맹한 장수가 있었다. 숙적 페르시아와의 전쟁 때 그는 좀처럼 결판이 나지 않는 싸움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한 신탁에 따라 제물이 되고자 자결했고, 그 희생 덕분으로 그의 조국 아테네는 승전했다.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토스 장군의 숭고한 죽음을 기려 명명한 ‘마라토스의 땅’ 마라톤으로부터 아테네 성까지 백여 리를 달려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그 곳 시민들에게 승전보를 전했다. 그리고 너무나 기진맥진한 나머지 “기뻐하시오, 우리가 승리하였소!”하고 외치고는 그만 쓰러져 죽었다.

박종형 칼럼니스트
박종형 칼럼니스트

삼십대 초반 약관에 첨단 신소재 개발 사업에 뛰어든 젊은 사업가가 있었다. 그는 장장 다섯 해 가까이 연구개발에 매달렸다. 수천 번의 제작실험을 거듭하느라 세속적 즐거움이나 젊은이의 쾌락, 안식과 가정적 단란 등 모든 개인적 욕망은 희생되었고, 돈 될 재산은 전부 처분해 비용으로 썼다.
그가 목표한 신소재를 발명해 내기 위한 길고 긴 집념의 항해는 수많은 암초에 부딪쳐 파선의 위기를 극복해야 했다. 쓰러지려는 그를 격려해 다시 일어나게 도와 준 힘이란, 그의 내부에 고독하게 빛나고 있는 불굴의 의지와 가치 있는 신념과, 그리고 그에 대한 순수한 믿음을 담보로 재정적 후원을 한 친구와 친지들의 성원뿐이었다.

그의 경주에는 승전보라는 기쁨을 안고 달린 페이디피데스가 소유했던 것 같은 힘이 될 만한 기쁨이란 없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싸움이 무모하다 비웃거나 중단을 충고했을 뿐이었다. 그 만큼 그의 경주는 말할 수 없이 외롭고 고통스러웠다.
땀과 눈물과 희망과 좌절로 얼룩진 시작생산試作生産 기록부가 산더미처럼 쌓일 정도로 칠전팔기 도전을 거듭한 끝에 노하우 완성의 서광이 비췄다.
드디어 무명 청년 기업가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첨단 신소재의 제조비법을 발명해 낸 것이다. 그건 마치 피그말리온의 정성에 감복해 사랑의 여신 아포로디테가 여인 조각상 갈라데이아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주어 피그말리온의 사랑을 완성시킨 축복 같은 성공이었다.

그의 성공은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 그의 성공을 기원했던 가족과 후원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의 전도는 희망이 넘쳐 보였다. 그러나 페이디피데스가 승전보를 전한 직후 탈진해 죽었듯이, 그 젊은 창업자는 개발성공의 문턱을 넘은 순간 도산 위기에 빠졌다. 장기간 투자한 개발비로 인한 누적된 적자와 거대한 규모로 불어난 빚 때문이었다. 개발자금에 쓰느라 집서부터 돈 될 재산은 다 팔아 투자 했으며, 빚이 이자를 낳고 이자가 새로운 빚을 불리는 악순환 때문에 금융은 물론 얼마간의 경상비 급전조차 조달이 어려웠다.  말하자면 문만 닫아걸지 않았을 뿐 사실상 도산 상태에 빠진 것이다.

성공의 순간에 기진맥진해 죽는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비극이다. 특히 기업에 있어서 페이디피데스 형 비극적 성공이란 무의미한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신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했다 하더라도 상품화에 성공하지 못하거나 판매에 성공할 수 없다면 무가치하다.
기업 창업이 페이디피데스적 비극을 만나게 되는 것은 힘의 안배를 무시한 무모한 질주 때문인데 이는 창업자가 아주 흔하게 범하는 실수다. 세상에는 그런 비극에 청운의 날개가 무참히 꺾인 미래 기업가들이 부지기수다. 예컨대, ‘벤처의 메카’이며 ‘미국의 보물섬’이라고 하는 실리콘밸리에는 매일 수십 명 꼴로 부자가 태어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실패자가 망해 사라진다.  거기엔 승리의 찬가보다 낙오자의 묘지에 울리는 진혼곡이 훨씬 많은 것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피그말리온의 지극한 정성과 염원을 축복한 여신 같은 자본가가 있어 성공의 날개를 달아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 젊은 창업자도 천만다행하게도 ‘천사벤처투자가’를 만나 도산의 벼랑에서 살아났으며 그 후 곧 사업이 번창했다. 하마터면 그도 성공의 문턱에서 페이디피데스처럼 비극적 죽음을 맞았을는지 모른다.
창업자가 천하를 얻은 것과 같은 개발에 성공했다 해도 거기서 주저앉아 숨이 끊긴다면 그건 한 판의 비극적 도전일 뿐이지 생명을 가진 창업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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