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키와 알리

제가 1970년대 젊은 시절에 권투푸로모터로 활약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참 활동하던 시절 불세출의 영웅 무하마드 알리(1942~2016)가 부인과 함께 한국에 왔습니다. 그 때 김포공항에서 조선호텔, 장충체육관 등, 한국을 떠날 때 까지 안내역을 제가 맡았었지요.

당시 무하마드 알리는 아마 어느 재벌, 어느 왕에 못지않은 인기와 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본명은 ‘캐시어스 마셀루스 클레이 주니어’. 유년시절 그가 살던 곳은 특히 인종차별이 극심한 곳 이었습니다. 클레이는 늘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커다란 덩치에도 날렵한 몸놀림을 갖게 된 것 역시 가족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처음 권투가 입문 한 것은 열 두 살이었습니다. 클레이는 누군가 자신의 자전거를 훔쳐가자 씩씩거리며 “마주치면 한방 먹이겠다.”고 말하였습니다. 마침 옆에서 이 말을 듣던 한 형사가 “한방 먹이려거든 체육관을 가라”고 농담을 던집니다.

이 때 클레이는 무릎을 탁 쳤습니다. 차별대우를 받는 흑인에게 갈 길이란 권투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전거 도둑을 혼내주려던 생각에서 권투 선수로서 꿈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영원한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의 탄생 순간이었지요.

그런데 1975년경 미국 한 빈민가에 사는 한 젊은 부부가 생활고를 벗어나기 위해 죽도록 노력했지만 허사였습니다. 남자는 영화배우를 꿈꾸며 살았는데 그들의 삶에서 그것은 거리가 먼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일을 했습니다. 영화관 안내원, 피자배달부, 청소부, 단역배우, 보디가드, 심지어는 성인물 배우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뛰었지요. 하지만 늘 생활고에 허덕이는 생활은 그들의 삶에 족 쇠처럼 따랐습니다. 이런 생활의 계속은 도저히 안 된다고 여겨 무언가 큰 결심을 해야만 했습니다.

남자는 12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12번이나 학교를 옮겨 다녀야 했기에 그의 어린 시절 생활은 어둠의 연속이었고 불행했습니다. 그로인해 그의 삶은 마치 암흑의 터널을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남자의 서른 번째 생일날, 그의 부인은 가지고 있는 마지막 돈 1.15달러로 아주 빈약한 케익을 사왔습니다.

그들은 촛불을 켜고 축하의 노래를 부른 후 아내는 촛불을 끄기 전 진지하게 남편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말했습니다. 그 남자는 비통한 표정으로 “제발 이 지긋지긋한 가난한 생활이 끝나게 해주십시오...” 라고 빌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남자는 우연히 TV에서 ‘무하마드 알리’와 ‘척 웨프너’의 권투시합을 보았습니다.

그 시합은 한마디로 처절한 경기였습니다. 하지만 관중들은 약자가 끝까지 시합을 해내는 모습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그 시합 장면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는 곧바로 망설임 없이 반나절 만에 시나리오 하나를 완성시켰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나리오를 들고 용감하게 영화사를 찾아가 자기가 쓴 대본으로 영화를 찍자고 제의했습니다. 하지만 번 번히 거절당했습니다. 그것도 어처구니가 없이 자기를 주연으로 써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우여곡절 끝에 한 영화사에서 우연히 1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고, 수익은 1/10 밖에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각본 료는 고작 2만 달러였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의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찍겠다는 일념에 너무 기쁜 나머지 흥행 따윈 아랑곳 하지 않고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의 영화는 불과 28일 만에 초스피드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제작 장소는 장소사용비가 많이 드는 허리우드가 아닌 비용이 들지 않는 뉴욕에서 촬영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웬일입니까? 개봉 당일부터 관중들이 줄에 줄을 이었고 영화는 한마디로 완전 흥행 초대박이었습니다. 마지막 끝 장면에서 권투시합을 끝낸 주인공이 붓고 터지고, 피가 흐르는 얼굴로 그의 사랑하는 여인을 부르는 장면에서는 모든 관중이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습니다. 그 영화가 바로 ‘록키’였습니다. 이 영화는 처음 수익만 5.600만 불이나 됐고, 총 수익은 1억불이나 되었습니다. 그 이후 총5편의 ‘록키’ 시리즈가 모두 흥행에 성공하여 그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획득했습니다.

그는 어떤 인터뷰에서 성공비결을 묻는 그에게 주인공 ‘실베스타 스텔론(1946~)’은 “성공이란 실패를 이겨내고자 하는 노력이 절정에 이른 상태를 말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현실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희망을 버리고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일화입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했습니다. 고난 없이 성공은 없습니다. 우리도 지금은 코로나 19 때문에 말 못할 고난의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록키와 알리’처럼 반드시 ‘이 또한 승리할 수 있다.’라고 외칠 수 있지 않을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12월 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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