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매린

‘천만매린(千萬買隣)’이란 말이 있습니다. ‘천만매린’이란 ‘천금을 주고라도 좋은 이웃과 가까이하고 산다.’는 뜻입니다. 이웃의 소중함을 강조함이지요. 사람들은 좋은 이웃을 만나기를 원하고, 좋은 이웃을 두면 그것도 기분 좋은 일의 하나일 것입니다.

바로 저의 앞집이 근 한 달여를 소란스럽게 인테리어공사를 하더니 며칠 전에 새 주인이 이사를 왔습니다. 그런데 아직 서로 인사가 없었습니다. 먼저 살던 사람도 몇 년을 살아도 얼굴도 모르고 살았지요. 또 이번에 이사 온 사람 역시 서로 인사도 없이 살 것 같아 걱정이 살 작 들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오늘 여러 가지 떡을 사들고 이사 인사를 와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사실 세상인심이 그렇게 냉담(冷淡)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덕산재(德山齋)》로 이사 올 때만해도 시루떡을 해 이웃 간에 인사를 다녔는데 지금도 그런 미풍(美風)이 아직살아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 할 수 없이 우리가 먼저 인사를 청하러 가지 못해 오히려 빚쟁이가 되었네요.

‘천만매린’이라는 말의 유래는 중국 남북조 시대의 남사(南史)에 나옵니다. 송계아(宋季雅)라는 고위관리가 정년퇴직을 대비하여 자신이 노후에 살 집을 보러 다녔습니다. 그는 천만금을 주고 여승진(呂僧珍)이란 사람의 이웃집을 사서 이사를 하였습니다.

백만금 밖에 안 되는 집값인데, 천만금이나 주고 샀다는 말에 여승진이 의아해하며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송계아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백만매택(百萬買宅)이요, 천만매린(千萬買隣)이라.” 즉, “백만금은 집값으로 지불하였고, 천만금은 당신과 이웃이 되기 위한 웃돈으로 지불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좋은 이웃과 함께하려고 집값의 10배를 더 지불한 송계아에게 여승진이 어찌 감동하지 않았겠습니까? 예로부터 좋은 이웃, 좋은 친구와 함께 산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큰 행복으로 여겼습니다.

백만금으로 집값을 주고, 천만금을 주고 좋은 이웃의 웃돈으로 지불하였다는 송계아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제자신은 우리 이웃에게, 주변사람들에게 과연 좋은 이웃인가 반성해 봅니다. 옛말에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라 했습니다.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술의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가고도 남는다는 말이지요.

이 ‘천만매린’이라는 고사를 읽다가 문득 손님 접대에 대해 생각이 미쳤습니다. 우리 집 사람이 몸이 불편한데도 틈만 나면 온 집을 쓸고 닦고 난리를 칩니다. 사람 사는 집이 먼지하나 없이 하고 산다는 것은 어쩌면 모처럼 오신 손님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손님 접대도 차고 넘치지 않을 정도가 좋은 법입니다. 비가 온 후,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햇살이 너무 맑으면 눈이 부셔 하늘을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마찬 가지로 손님을 맞이할 때 먼지 한 점 없이 정갈하게 한다는 이유로 너무 톡톡 털 면 그 집에서 어찌 편안하게 앉아서 덕담을 나누며 오래도록 머무를 수가 있겠습니까?

유리창이 너무 투명하게 깨끗하면 나르던 새가 부딪쳐 떨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면 새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집안 살림이 너무 깨끗하고 물방울을 튀기면, 그 집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지 않아 주변에 다 같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이 없게 됩니다.

흐르는 물에도 수초가 자라지 않고,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자기 몸을 숨길 수 없으니 그곳에서 살지를 않습니다. 물에는 물비린내도 나고, 수초가 적당히 있어야 물로서 제 몫을 다하는 생명이 살 수 있는 물이 되는 것입니다. 나무도 가지가 하나도 없으면 새가 날아와 앉지도 않고, 새가 그 나무에는 둥지도 틀지 않습니다.

가지하나 없이 꼿꼿하게 자라면 나무도 오래 살아남지 못하고, 도벌꾼에 의해 나무가 빨리 목숨을 잃게 되는 법입니다. 나무에 시원한 그늘이 없으면 매미도 그 나무엔 앉지를 않습니다. 나무에 가지가 없으면 바람도 쉬어가지 않고 흔들며 바로 지나갑니다. 나무에 가지가 없으면 꽃도 피지 않고 열매도 달리지 않는 쓸모가 없는 나무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다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내가 쓰고 남으면 썩혀서 버리지 말고, 이웃과 함께 나눌 줄 알고, 널리 베풀면 우리의 행복은 몇 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덕불고필유여경(德不孤必有餘慶)’이라 했습니다.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고 서로 덕을 쌓으면 덕은 외롭지 않아 반드시 경사가 넉넉히 찾아 올 것입니다. 우리 집 사람이 잠이 없다는 핑계로 너무 쓸고 닦고 하여 모처럼 《덕산재》를 찾아오시는 모든 분들의 마음을 불편하지 않게 모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이웃을 두는 것도 행복입니다. 우리 그 좋은 이웃을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좋은 이웃이 되면 어떨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12월 17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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