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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소리로 모래알을 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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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소리로 모래알을 센다.
[이정랑의 고전소통] 창주양사(唱籌量沙)
  • 이정랑 (논설위원, 중국고전 평론)
  • 승인 2020.12.2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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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제(檀道濟)는 남북조 시대 송나라 무제(武帝-유유(劉裕)가 나라를 세우는 데 공을 세운 무장으로서, 일찍이 군대를 이끌고 북의 전진(前秦)을 정벌하여 큰 공을 세운 바 있었다. 송 문제(文帝-유의륭(劉義隆)는 무제에 이어 왕위에 오른 후 단도제를 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으로 삼고 ‘무릉군공(武陵君公)’에 봉했다.

『남사』 「단도제전 檀道濟傳」에는 단도제가 사용한 ‘창주양사‘ 의 계략에 관한 기록이 있다. 431년, 단도제는 북위 정벌에 나서 ’위군과 잇달아 30여 차례 싸워 승리를 거두고‘ 역성(歷城-지금의 제남시 교외)에 이르렀다. 그러나 식량이 바닥나서 철수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위군에 투항한 병사로부터 송군의 식량이 떨어져 철군을 꾀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위군은 몰래 사람을 보내 송나라 군영을 정탐하게 했다. 단도제는 일찌감치 이런 동정을 알고, 비밀리에 군량미를 담당하고 있는 관리에게 저녁이 되면 양식을 점검하면서 병사들에게 모래를 쌀처럼 됫박으로 재게 했다. 병사들은 쌀(모래)을 됫박으로 퍼 담으면서 ’한 되, 두 되‧‧‧‧‧‧ 한 석, 두 석,‧‧‧‧‧‧ 열 석‘ 하며 큰 소리를 질러댔다. 쌀(모래)이 한 가마 두 가마 높게 쌓여갔다. 주위에는 진짜 쌀알을 어지럽게 흩어놓았다. 위군의 밀정이 돌아가 송군에 양식이 넉넉하다고 보고했다. 이 소식을 접한 위군은 섣불리 쳐들어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항복해온 송의 병사를 죽여버렸다. 이리하여 송군은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었다.

이후 ‘큰소리로 외치며, 모래를 센다.’는 뜻의 ‘창주양사’는 가짜로 진짜를 숨기는 책략으로 널리 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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