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공덕

진정한 공덕(功德)이란 무얼 말하는 것일까요? 착한 일을 많이 한 공(功)과 불도(佛道)를 닦은 덕, 또는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지켜야 할 도덕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공덕인은 많습니다.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소방관들,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경찰관들, 이렇게 지극히 평범하지만 땀을 흘리며 공덕을 짓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은 그 무상(無相)의 공덕 인들에 의해 유지되는지도 모릅니다. 조선 철종 때 경상도 상주 땅에 서(徐)씨 성을 가진 농부가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그냥 ‘서선달’이라고 불렀지요. 원래 ‘선달’이란 과거 시험에 급제는 했으나 아직 벼슬을 받지 못한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서선달은 무슨 급제와는 관련이 없었고, 그냥 사람이 심성이 착하고 무던해서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서선달은 남의 땅을 빌려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 인가는 봄이 왔어도 그해 농사를 지을 비용이 없을 정도로 곤궁 하였습니다. 생각다 못한 그는 부산 쌀가게에서 장부를 담당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큰 아들을 찾아갔습니다.

효자 아들은 주인께 통사정을 하여 6개월 치 월급을 가불받아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서선달은 100리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데, 어느 고개를 넘던 중 그만 돈을 흘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때 반대쪽에서 고개를 넘어오던 한 양반이 이 돈 꾸러미를 발견한 것입니다. 세어보니 백 냥이나 되는 큰돈이었습니다.

한편 서선달은 30리는 더 가서야 돈을 잃어버린 것을 알았습니다. 서선달은 전 재산을 잃어버렸으니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돈을 발견한 사람이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횡재라고 좋아하는 하인에게 이렇게 나무랐지요.

“돈을 잃은 사람은 반드시 찾아온다. 목숨같이 귀한 돈을 잃은 그 사람은 얼마나 속이 탈꼬!?” 그 노인은 가던 길을 멈추고 몇 시간이고 돈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과연 한참 후 서선달이 얼굴이 흑 빛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노인이 주운 돈을 서선달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서선달은 “어른께서 제 목숨을 살려 주셨습니다.” 하며, 돈을 찾아준 은혜를 갚겠다며 사례를 하려 하였지요. 그러나 노인은 “은혜랄 게 뭐가 있소, 당연한 일인데” 하고는 펄쩍뛰며 사양을 했습니다.

그는 주운 돈 100 냥을 서선달에게 전달을 해 준 뒤 가던 길을 갔습니다. 서선달도 다시 집을 향해 떠나가다가 이윽고 어느 강가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마침 한 소년이 물에 빠졌는데 구경꾼은 많아도 누구 하나 뛰어들어 구해 줄 생각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헤엄을 못 치는 서선달이 외쳤습니다. “누구든지 저 소년을 구해내면 백 냥을 주겠소!” 그때서야 어느 장정이 뛰어들어 소년을 살려 냈습니다. 죽다 살아난 도령입니다. 생명의 은인인 서선달에게 말하기를 “정말 고맙습니다. 어른이 아니었으면 저는 수중고혼(水中孤魂)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희 집은 안동에 있는데 함께 가시면 백 냥을 갚아드리겠습니다.”

서선달은 무슨 사례를 받고자 한일은 아니었으나 자기의 사정도 있는지라 같이 안동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안동의 총각 집은 고래등같은 기와집에다 엄청난 부잣집이었습니다. 그때 소년의 부친이 득달같이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부친이란 사람은 다름 아닌 서선달의 돈을 찾아준 바로 그 노인 이었습니다.

“온 재산을 털어 제 아들을 구해 주시다니, 당신은 진정 의인이요. 정말 고맙소이다.” “아닙니다. 댁의 아드님은 어르신께서 살려내신 것입니다. 제가 돈을 잃었다면 무슨 수로 살렸겠습니까?” “겸손의 말씀 이십니다. 7대독자 외아들을 살려주신 은혜 백골이 되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안동 권 부자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살려준 보답으로 돈 천 냥을 나귀에 실어 서선달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서선달이 사는 상주 고을을 찾아와 백 섬지기 전답까지 사주고 돌아갔습니다. 이 일은 후에 조정에까지 알려져 안동과 상주 두 고을은 모두 조정으로부터 후한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참 착하게 살기가 힘든 시대입니다. 착한 것이 오히려 바보처럼 여겨지는 안타까운 시대입니다. 하지만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이라 했습니다. 덕이 있고 심성(心性)이 착한 사람은 반드시 주위에 돕는 손길이 있습니다. 착하고 양심적으로 사는 것이 바보 같아 보이지만, 이것이 사람답고 행복하게 사는 지름길이 아닐까요?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38장 상덕(上德)에 대한 말이 나옵니다.

​上德不德 : 훌륭한 덕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덕을 내세우지 않는다.

是以有德 : 그러기에 덕이 있게 된다.

下德不失德 : 하덕을 지닌 사람은 덕을 잃지 않으려 아등바등 한다.

是以無德 : 그러기에 덕이 없게 된다.

上德無爲而無以爲 : 상덕은 무위하며 억지로 일을 도모하지 않는다.

사람은 ‘훌륭한 덕을 지닌 사람’과 ‘훌륭하지 못한 덕을 지닌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훌륭한 덕의 사람이란 자기의 덕을 의식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자기가 하는 훌륭한 일이 덕인 줄도 모르고, 덕이 쌓이는지 없어지는지 전혀 의식하지 않고 그저 구김 없이 행동하는 사람이 진정한 의인일 것입니다. 우리 덕을 쌓되 ‘무상공덕’을 쌓는 의인(義人)이 되면 얼마나 좋을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12월 2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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