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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하(蕭何), 황제의 오랜 벗으로 고난을 같이했던 한초(漢初)의 명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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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하(蕭何), 황제의 오랜 벗으로 고난을 같이했던 한초(漢初)의 명재상
[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典疏通] 人物論(42) 군주를 위해 신하의 도리를 다했다.
  • 이정랑 (논설위원, 중국고전 평론)
  • 승인 2020.12.29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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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의 벗이었던 서한의 개국공신이며 한나라 초기 삼걸 중 한 사람.

천하를 경영할 만한 뛰어난 능력과 세상을 구제할만한 지략을 지녔던 관중(管仲)은 제(齊)의 환공(桓公)이라는 천추에 만나기 어려운 명군을 만나 자신의 탁월한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그가 내정권과 외교권, 특히 군권을 장악하지 못했기에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개혁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을 것은 물론이요, 환공을 도와 제후들을 규합하고 천하를 재편성하는 일도 불가능했을 것이고 목숨조차 보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환공도 결코 범상한 인물은 아니었다.

환공은 관중을 특별히 신뢰했다. 하루는 대신들에게 말했다.

“관중을 중부(仲父)로 모시려 하는데 그대들의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소. 이 문제를 표결에 부치고자 하니 찬성하는 사람은 왼쪽으로 서고 반대하는 사람은 오른쪽에 서도록 하시오.”

대신들이 모두 좌우로 자리를 잡았으나 유일하게 동곽아(東郭牙)만은 조당 한가운데 섰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환공이 물었다.

“그대는 왜 가운데 서 있는 것이오. 내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모양이구려?”

“관중의 능력으로 천하의 대사를 도모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요.”

“그의 결단력이 대사를 추진하는 데 부족함이 없습니까?”

“그렇소!”

“좋습니다. 관중의 지모가 천하를 도모하기에 족하고 그의 결단력이 대사를 추진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데 지금 또 대권을 그에게 맡기고 제나라를 다스리게 한다면 폐하의 정권이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이 말에 환공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동곽아에게 말했다.

“그대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구려!”

결국, 환공은 관중을 중부로 세우는 문제를 더 거론하지 않았고 그에게 모든 대권을 넘겨주지도 않았다. 대신 습붕(隰朋)에게 내정을 맡기고 관중에게는 외교를 전담하게 함으로써 권력을 분산시켰다.

소하(蕭何), 황제의 오랜 벗으로 고난을 같이했던 한초(漢初)의 명재상
소하(蕭何), 황제의 오랜 벗으로 고난을 같이했던 한초(漢初)의 명재상/출처:THEWIKI

한나라의 개국공신이었던 소하(蕭何)는 유방이 사수정(泗水亭) 정장으로 있을 때 처음 알게 된 인물이었다. 당시 정장은 비교적 작은 소송을 처리하는 직책이라 큰일이 있을 때는 현으로 상세한 보고를 올려야 했기 때문에 현의 관리들과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소하는 패현의 관리로 유방과는 동향인 데다가 법률에 능통했기 때문에 유방은 그에게 각별한 존중과 신의를 표했고, 소하도 유방이 처리하기 힘든 일을 맡게 될 때마다 기꺼이 나서서 도와주곤 했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친밀해졌다. 유방이 기병한 후 소하는 줄곧 유방을 수행했고 유방은 그의 말과 계책을 무조건 받아들였다. 초한 전쟁은 물론이요 한조 개국의 중요한 정책과 방략은 대부분 소하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물론 유방에게 소하를 경계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은 모든 일을 비교적 원만하게 처리해냈다.

초한 전쟁 시기에 유방이 한중을 떠나 관동으로 가서 항우와 장장 4년에 이르는 전쟁을 벌이는 동안 소하는 한중에 남아 유방을 대신하여 본국을 지키면서 전장의 병사들에게 군량을 공급하는 일을 맡았다.

소하는 국가를 잘 다스려 오래지 않아 한중을 크게 발전시켰고 백성들은 하나같이 소하의 성실한 노력을 칭송해 마지않았다. 또 소하는 유방과 군대에 필요한 군량을 적절한 시기에 맞춰 충분히 공급했다.

사서에는 소하의 치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초한 전쟁이 시작되자 한왕 유방은 승상 소하에게 관중을 맡겨 태자 유영을 잘 보좌하여 군현을 통치하고, 병사들의 군량을 순조롭게 징발하도록 했다. 그리고 자신은 대군을 통솔하여 항우의 군대를 토벌했다.”

기원전 204년, 초한 양국의 군사는 형양과 성고 전선에서 대치했고 전투는 극도로 격렬하고 참혹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유방은 수십 명의 사신을 연달아 관중으로 파견해 진심으로 소하의 노고를 치하하고 위로했다. 이에 소하는 별다른 감회가 없었으나 문객 포생(匏笙)이 그를 찾아와 말했다.

“지금 대왕께서는 밖에서 병력을 통솔하고 계시는데, 상황이 아주 위급하여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몇 번이나 사람을 보내 승상을 위로하셨습니다. 이는 승상에 대해 의심을 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화를 피하려면 승상의 친족 중에서 젊고 건강한 사람을 뽑아 즉시 대왕께 전달할 군량을 호송하여 형양의 군영으로 가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더 대왕께서 의심하는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포생의 말에 소하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는 즉시 포생의 말대로 수많은 형제 조카들을 시켜 형양으로 군량을 호송하게 했다. 유방은 승상이 군량을 보내오면서 자신의 친족들을 대거 군영에 영입시켰다는 소식을 듣고는 매우 흐뭇해하며 직접 나가서 이들을 맞았다.유방이 소하의 근황을 묻자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승상께서는 폐하께 천복이 내려 대업을 이루시길 바란다고 말하면서 항상 거친 벌판과 모래밭을 질주하시는 폐하의 노고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지금 군영에 파견한 사람들을 폐하께서 기쁘게 받아 들여주시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유방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대답했다.

“승상이 나라를 위해 가정까지 버리다니 참으로 충성스럽기 그지없구나!”

말을 마친 유방은 곧장 부사에 들어가 소하 집안의 자제들을 배치하라고 명했다. 이리하여 유방이 소하에게 품었던 의심이 말끔히 해소되었다. 그 후로도 유방은 여러 차례 소하에게 의심을 한 적이 있었지만, 매번 소하의 절묘한 지모로 해결되었다.

한편 소평(召平)도 식견이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다. 진나라 때 낙릉후(樂陵侯)까지 지냈던 그는 진의 멸망과 함께 몰락하여 가난한 서생으로 살고 있었다. 생활이 몹시 빈궁하여 장안 동쪽 황무지에 오이를 심어 생계를 꾸렸는데, 그가 생산한 오이는 맛이 아주 달아서 사람들은 이를 ‘낙릉과(樂陵果)’라 불렀다. 관중으로 돌아온 소하는 소평이 지혜로운 인물이라는 소문을 듣고 그를 자신의 본영으로 불러들였다.

한조 10년(BC 197)9월, 유방은 군대를 이끌고 진희(陳豨)를 치기 위해 북정에 나섰고 한신은 이 기회를 틈타 모반을 꾸몄다. 여후는 이런 소문을 듣고 소하의 도움을 받아 한신을 붙잡아 주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런 소식을 접한 유방은 즉시 장안으로 사람을 보내 소하를 상국으로 세우고 식읍 5천 호를 가봉(加俸)하는 동시에 5백 명의 병력을 호위대로 하사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찾아와 축하 인사를 건네는데 소평 한 사람만이 오히려 애석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소평이 재상의 부중으로 찾아와 말했다.

“장차 공에게 큰 화가 닥칠 것입니다.”

소하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그 이유를 묻자 소평이 대답했다.

“황제께서는 몇 년째 계속 출정하시어 화살과 돌을 맞으며 적과 싸우는 데 공께서는 위험에 맞서지 않고 도성만 지키고 계시지 않습니까? 지금 한신이 장안을 전복시키려 하고 있으나 황제께서는 또다시 공을 의심하시게 될 겁니다. 황제께서 공에게 봉작을 내리시고 호위 병력까지 보내신 것이 겉으로는 공을 총애하시는 것 같지만 실은 공을 의심하신 조치입니다. 이것이 장차 큰 화가 미칠 징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소평의 설명에 소하는 몹시 불안해하며 어떻게 하면 화를 면할 수 있는지 물었다. 소평이 대답했다.

“공께서는 일단 봉작을 사양하시고 오히려 사재를, 털어 군량을 보내십시오. 그러면 화를 면할 수 있습니다.”

소하는 고개를 끄덕여 소평의 충고에 동의했다. 그리하여 그는 상국의 직책만 받아들이고 식읍을 반납했다. 아울러 가산을 털어 군량에 보탰다. 이런 소식을 들은 유방은 다시 한번 소하에 대한 의심을 거두었다.

한조 11년 7월, 회남왕 영포(英布)가 모반을 일으키자 유방은 또다시 병력을 이동시켜 남쪽 정벌에 나섰다. 그 사이에 여러 번 장안으로 사신을 보내 소하의 근황을 살피게 했다. 사신이 유방에게 돌아가 말했다.

“폐하께서 군무로 바쁘실 때 장안에서는 소 상국이 백성들의 위무와 구휼에 힘쓰면서 군량 조달에 만전을 다하는 등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문객이 이런 사실을 전해 듣고는 소하를 찾아가 말했다.

“공께서 멸족의 화를 당하게 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소하가 대경실색하며 그 이유를 묻자 문객이 대답했다.

“공께서는 직위가 재상에 이르러 최고의 공적을 세우고 있기에 더 올라갈 데가 없습니다. 황제께서 자주 공의 행동거지를 살피시는 것은 공께서 오랫동안 관중에 있으면서 민심을 얻고 있어 기회가 오면 기병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지요. 지금 공께서 황제의 심기를 살피지 않으시고 여전히 백성을 위해 열심히 일만 하신다면 황제의 의심은 더할 것입니다. 이처럼 계속 의심을 사다 보면 큰 화를 당할 수밖에 없지요. 제 생각으로는 공께서 강제로 백성들의 땅을 헐값에 사들이고 어진 재상으로서의 풍모를 깨뜨려 백성들 사이에 공에 대한 험담이 퍼지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황제께서 그런 소식을 듣게 되면 공께서도 비로소 목숨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고 가족들에게도 별 탈이 없을 것입니다.”

소하는 문객의 생각에 그대로 따랐다. 유방이 영포의 모반을 평정하고 장안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많은 수의 백성들이 노상에서 증서를 내밀며 길을 가로막았다. 증서의 내용은 소하가 강제로 농민들의 땅을 헐값에 사들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하가 입궁하여 유방의 수레를 보고서 황급히 배알(拜謁)코자 달려가자 유방은 농민들에게 받은 증서를 펼쳐 보이며 웃는 낯으로 말했다.
“일국의 상국이 이런 식으로 백성들의 땅을 가로채 이익을 챙겨서야! 되겠소? 어서 백성들에게 사죄하도록 하시오!”

소하는 유방에게 자신을 크게 꾸짖을 마음이 없음을 알고는 곧장 자리에서 물러나 백성들에게 강제로 산 땅을 원래 가격대로 되돌려주었다. 이리하여 소하에 대한 백성들의 원성은 잦아들었고, 유방은 민심을 얻으면서 명성을 떨쳤다.

한신은 대단히 용감하기만 했지 앞으로 나아갈 줄 몰랐고 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지 못했다. 반면에 소하는 공로도 한신만 못했고 그렇다고 지혜가 뛰어난 것도 아니었지만 자신을 훌륭하게 보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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