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신가중학교 교장 김선호
(전) 신가중학교 교장 김선호

아버지는 나에게 구두를 닦도록 하고, 그 대가로 용돈을 주셨다. 닦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반짝거리게 잘 닦았다. 중·고등학교 6년을 닦다 보니 슈샨보이(shoeshine boy – 구두 닦는 소년)를 뺨칠 정도였다.

반짝거리는 구두를 볼 때마다 신고 싶었다. 중학교 때는 발이 작다 보니, 헐떡거려서 신을 수가 없었다. 고2쯤 되니까 딱 맞았다. 신고 싶어서 발바닥이 근질근질했다. 고3 학년말 고사가 끝났다. 아버지 몰래 신고, 조금은 두근거렸지만 뽐내며 등교했다.

교문을 통과하려는 순간, 학생과장이 저 멀리서 보고, “저놈 잡아라.”며 번개같이 달려온다. 나는 본능적으로 죽어라 도망갔다. 제트기처럼 빠르다고 ‘쌕쌕이’라고 학생들이 별명을 붙여준 학생과장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나는 반 죽었다고 생각했다.

교무실로 끌려갔다. 선생님들이 군밤을 한 대씩 주며 놀려댄다. 그런 중에도 수학 선생님은 구세주였다. “김선호, 너 어쩐 일이야. 시험은 잘 봤던데.” 군밤 대신 던진 말씀도 고마운데, “쌕쌕아! 선호 착실한 놈인데. 잘 봐줘라.”는 말씀은 성경 말씀처럼 달콤했다. 금방이라도 용서받을 것 같았다.

이미 빼앗긴 구두 대신, 실내화를 던져주며, “너, 오늘 저녁에 우리 집으로 와.” “아버지하고 같이 와. 알았지?” 아버지한테 말씀드렸더니, “너 혼자 갔다 와라.” “니가 잘못했으니, 가서 빌어라.” 선생님이 적어주신 주소를 보고, 혼자 삼선동 언덕길을 어렵게 찾아 갔다. 사모님이 다과를 주시며 권하신다. ‘아! 나를 크게 야단치시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스쳐 갔다. 사모님이 정말로 미인으로 보였다. 나도 모르게 “선생님, 사모님이 혹시 미스코리아 ......” 사모님이 피식 웃으신다. 쌕쌕이 부장님도 웃으신다.

구두를 내주시며, “선호야, 졸업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때까지만 참아라.” “졸업식 끝나면, 마음대로 신을 수 있잖아.” 등짝도 어루만져 주셨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아버지와 선생님 사이에, 나 혼자 보내기로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내 구두를 처음으로 맞춰 주셨다. 졸업식 날, 그 구두를 신고 갔다. 구두를 신고 있는 졸업식 사진을 보니, 쌕쌕이 선생님이 보고 싶다. 그런데, 이미 선생님은 세상에 안 계신다. 그래서, 더 그립다.

내 업보인가? 신가중학교 교장 시절, 구두를 신고 다니는 학생 때문에 힘들어하는 선생님이 계셨다. 오죽하면 “담임 못 해 먹겠다.”며 하소연도 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이놈 봐라. 나는 고3 졸업 고사 끝나고 신었는데, 중학생이 벌써부터 구두를 신고 다녀 ....”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아니었다. 나도 중학교 때, 아버지 구두가 헐떡거려서 못 신었지, 신고 싶었지 않은가?

학생을 조용히 불렀다. “너, 어쩌면 나하고 똑같냐. 교장 선생님도 중학교 때, 아버지 구두를 엄청 신고 싶었거든, 발이 헐떡거려서 못 신었지.” “졸업식이 얼마 안 남았는데, 졸업식 끝나고 고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얼마든지 신을 수 있잖아.” 나는 한 발짝 더 나가, 문을 더 열어주었다. “정~ 신고 싶으면,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하주 종일 신고 다녀라.” 등짝도 어루만져 주었다. 토요일 오후 퇴근길에 우연이 보았다. 어느새 집에 갔는지, 구두를 신고 친구들과 조잘거리고 있었다.

검은 운동화만 신었던 시절, 색깔 있는 운동화를 신고 등교하다 걸려들면 유기정학이었다. 가방을 들고 다녔던 시절에, 멜빵 가방은 무기정학이었다. 빡빡머리 시절에, 조금만 긴 머리는 전교생 앞에서 고속도로를 당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방종은 안 되겠지만, 자율을 지나치게 억압하는 교육은 참교육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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