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시인 청아의 말처럼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1년 전 오늘,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세월호 의인들도 그렇다.

 

사고 당시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애쓴 세월호 의인들의 뜨거운 외침은 아직까지 회자되며 큰 감동을 주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가슴 졸였던 그날, 마지막까지 타인을 위해 애썼던 '잊을 수 없는' 세월호 의인 10명을 소개한다.

 

죽음이란 두려움도 이겨낸 그들의 희생정신이 오래도록 기억되길 바란다.

 
1. 안산 단원고 학생, 정차웅

 


 
"내 구명조끼 네가 입어!"

 

세월호 침몰 당시 故정차웅(17)군은 반 친구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건네고, 또 다른 친구를 구하러 가다 숨지고 말았다.

 

2. 안산 단원고 선생님, 최혜정

 

 

"걱정마.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이 따라갈게"

 

2014년 처음 담임으로 부임한 故최혜정(여, 24)선생님은 카카오톡으로 제자들을 안심시키며 자신의 첫 제자들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다.

 

3. 안산 단원고 선생님, 남윤철

 

 

"윤철이는 다시 돌아가도 아이들을 구했을 것이다"

 

늘 솔선수범하는 태도로 존경 받았던 故남윤철(남, 35)선생님은 마지막까지 학생들의 탈출을 도왔다.

 

최근 남 선생님의 모교인 국민대학교는 그가 마지막으로 수업을 들었던 강의실을 '남윤철 강의실'로 명명하기도 했다.

 

4.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 돼, 여보"

 

세월호 사고 당일 오전 10시께 故양대홍(남, 45)씨는 부인과의 마지막 전화통화에서 "(구조 때문에) 길게 통화 못 한다"며 "통장에 모아둔 돈 있으니 큰아들 학비 해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5.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

 


 

"승무원은 맨 마지막에 나가는거야"

 

故박지영(여, 22)씨는 구명조끼가 부족하자 자신의 조끼를 벗어주면서까지 다른 승객들의 대피를 도왔다.

 

6. 화물차 기사, 김동수

 

 

"자식 같은 학생들을 그냥 두고 나올 수 없었다"

 

김동수(남, 50)씨는 자신의 몸에 소방호스를 묶은 뒤 학생을 포함한 승객들에게 밧줄을 던져주며 구조에 힘썼다.

 

침몰 직전까지 아이들을 구하고 겨우 빠져나온 김씨는 아직까지 그날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7. 민간 잠수사, 이광욱

 


 

"저희 아버지는 한 가정의 기둥이셨습니다"

 

故이광욱(남, 53)씨는 지난해 5월 6일 잠수부 인도선을 세월호에 연결하기 위해 바다에 입수했다.

 

그러나 잠수 도중 호흡 곤란 증세로 병원에 실려간 뒤 끝내 숨지고 말았다.

 

8. 안산 단원고 학생, 박호진

 

"받아요! 아기요, 아기!"

 

박호진(17)군은 부모와 오빠를 잃어 울고 있는 소녀 권지연(6)양을 구출했다. 사고 당시 촬영된 영상에서 자신보다 권양부터 챙기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다.

 

9. 세월호 승무원, 정현선·김기웅

 


 
"얼른 배 밖으로 나가세요!"

 

결혼을 앞둔 故정현선(28), 故김기웅(28)커플은 배가 침몰하는 마지막 순간, 갑판에서 탈출할 수 있었지만 배 속에 갇힌 승객을 구조하기 위해 오히려 배 안으로 들어갔다가 결국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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