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부 내내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청이 갈등을 빚었던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논란이 매듭지어졌다.

내년부터 만 3~5세 아동의 무상보육에 필요한 예산은 중앙정부가 책임지게 된다. 반면 아동수당, 기초연금 등 문재인 정부의 보편적 복지 확대 기조와 관련된 예산들은 정부안보다 삭감됐다.

5일 여야 합의에 따르면 2018년도 예산에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정부안대로 2조587억원 편성이 확정됐다. 올해의 경우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2조875억원 중 약 41%인 8600억원만 중앙정부가 부담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육·유아교육의 ‘국가완전책임제’를 실현하겠다고 공약하고서도 예산은 시·도교육청에 미룬 탓에 빚어진 갈등과 혼란은 마침내 끝나고, 중앙정부가 보육을 온전히 책임지게 된 셈이다. 하지만 불씨는 남았다. 전날 여야가 “2019년 이후 누리과정 국고 지원은 2018년 규모를 초과할 수 없다”고 합의해 추후 누리과정 단가가 오르면 예산 떠넘기기 논란이 재연될 수 있다.

부모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0~5세 어린이 모두에게 매달 10만원씩 주는 아동수당 예산으로는 당초 1조1009억원이 책정됐지만, 상위 10% 고소득층 자녀는 제외하자는 합의에 따라 예산이 줄었다. 전국의 0~5세 아동 253만명 중 25만명이 혜택에서 제외된다.

수당 지급을 시작하는 시기도 “지방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반발 속에 내년 7월에서 9월로 미뤄졌다.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이었던 아동수당이 결국 선별적 복지 성격으로 전환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미국·멕시코·터키·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고, 20개국에서는 소득과 관계없이 전 계층에 수당을 준다.

‘모든 아이들을 위해 주는 돈’이 선별적으로 주는 돈으로 바뀐 만큼 예산은 조금 줄었으나 행정력 낭비가 우려된다. 온 국민의 소득을 조사해 상위 10%를 가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을 만들고 몇 달간의 연구용역을 거쳐야 하는 등 절차가 간단치 않다. 소득 변화 등을 고려해 매년 소득기준선을 다시 선정해야 하는 것도 문제다. 

참여연대는 “복잡한 자산조사나 소득조사 같은 불필요한 관료적 절차를 거치며 비용을 지불하기보다는 아이가 있는 모든 가정에 수당을 주고 고소득자에게서 세금을 더 걷으면 된다”는 비판 성명을 냈다.

상위 10%를 가르는 정확한 소득기준선은 연구용역을 거쳐 내년에나 결정되겠지만, 지난해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서 상위 10% 월소득 경계값인 3인 가구 기준 723만원 수준에서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보육비용을 많이 쓰는 맞벌이 부부들이 오히려 불이익을 볼 수도 있다. 복지혜택으로 인한 소득역전을 막기 위해 상위 20% 가구 중 일부가 수당을 더 적게 받을 가능성도 있다.

소득 하위 70%에게 차등지급하는 기초연금의 경우 현재 20만원인 기준연금액을 25만원으로 올리는 안은 그대로 확정됐다. 하지만 역시 지방선거에 영향을 끼친다는 반발에 인상 시기가 내년 4월에서 9월로 미뤄졌다.

지급 시기가 미뤄지면서 올해보다 22% 많은 9조8400억원으로 편성됐던 정부 예산도 삭감됐다. 월 최대 수급액을 받는 노인은 내년에 기대보다 연 25만원을 덜 받게 된 것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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