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 등 주요 사건 수사를 연내 마무리하겠다는 문무일 검찰총장 발언이 적잖은 파장을 낳고 있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에서 “졸속 수사가 우려된다”고 비판하고 일선 수사팀에서도 이견을 표시하고 있다. 문 총장의 발언은 단서가 달려 있긴 하나, 진행중인 수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문 총장의 과제인 검찰 자체 개혁작업도 국민의 기대 수준과는 거리가 있어, 앞으로 본격화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제도개혁 과정이 순조로울지 의문이다.

문 총장은 5일 “모든 검찰 업무가 각 부처에서 넘어오는 적폐수사에 집중되는 것으로 보이는 상황을 연내에 마칠 계획”이라며 “내년부터는 민생사건 수사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같은 말 여러번 들으면 지치지 않느냐” “(한가지 이슈를) 너무 오래 지속하는 것도 사회 발전에 도움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사회 발전’ 운운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최근 공항에서 한 말과 비슷하고, ‘지친다’는 말은 국민 피로감을 주장하는 수구보수 언론·야당의 단골 논리를 연상시킨다. 검찰 수사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댓글공작 지시 여부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특수활동비 국고손실 혐의 등 또다른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상황에서 김을 빼는 듯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나머지 부분은 뒤로 넘겨 수사를 마무리 지을 계획”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으나, 국민의 기대 수준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그의 발언이 수사팀과 충분한 소통이나 조율을 거쳐서 나온 것도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수사팀은 “연내 수사 마무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검찰총장이 “연내에 끝내라”고 하면, 수사하지 말라는 얘기밖에 되질 않는다.

현재의 수사 대상은 그동안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았거나 진실을 왜곡했던 사안이 상당수다. 검찰에도 그만큼 원죄가 크다는 뜻이다. 설사 여론이 “이제 그만 덮자”고 해도 “범죄 혐의가 있는 한 단죄하겠다”고 나서야 하는 게 ‘정의’를 입에 달고 사는 검찰의 도리다. 더구나 현재 드러나는 범죄 혐의는 군이나 정보기관의 선거·정치 개입이나 국고손실 등 국기문란에 해당하는 중범죄가 대부분이다. 내년부터 하겠다는 민생수사를 핑계로 서둘러 끝내자고 할 사안이 아니다. 수구보수 언론·야당 말고 어느 국민이 국기문란 범죄 대신 민생범죄 수사하라는 말을 하는가. 국민이 적폐청산 수사에 가장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음은 여론조사로도 확인된다.

문 총장이 취임 뒤 나름의 개혁 방안을 내놓고 있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기자 간담회에서 밝혔듯이 중요 사건의 수사·구속·기소 여부를 심의하는 외부인 중심의 검찰수사심의위 출범, 상급자 수사 지휘내용 기록 의무화, 변호인 조력권 확대 등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공수처 설치 등 핵심 검찰개혁안 추진에는 여전히 미온적이다.

특히 법무검찰개혁위가 권고한 자체 과거사위 구성 의지를 보면, 과거 잘못을 제대로 파헤치는 데 매우 미흡한 것 같아 걱정스럽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아직도 활보하고 있는 상황이 말해주듯, 다른 기관 적폐는 파헤치면서 자신들이 저지른 ‘사건 농단’은 제대로 손대지 않는다는 비판을 문 총장은 새겨듣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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