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에 ‘대면공화 심격천산(對面共話 心隔千山)’이라는 말이 있다. 즉 “얼굴을 맞대고 서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마음은 천 개의 산이 사이에 있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대화를 나누는 당사자들이 진실성이 없다면 둘 사이에 천 개의 산이 있는 것과 같다는 의미다.

최근 정치권과 법조계를 강타한 김명수 대법원장과 임성근 부장판사의 사례가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지난 4일 국회는 `사법농단`에 연루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현직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터진 것이다. 여야 정치권은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어 향후 거센 후폭풍이 예상된다.

특히 임 부장판사 측이 국회 탄핵을 이유로 사표 반려 여부를 놓고 김명수 대법원장과 `진실공방`을 하던 중 김 대법원장과 나눈 대화 녹취 파일을 지난 4일 전격 공개했디.

4일 오후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근하며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4일 오후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근하며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녹취록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은) 사표 수리·제출, 그러한 법률적인 것은 차차 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 그중에는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된다”며 “더 툭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했다고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고 발언했다.

녹음 파일이 공개되자 가장 곤경에 빠진 이는 김명수 대법원장이다. 김 대법원장은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이 없다”고 밝힌 지 단 하루 만에 이를 뒤집는 증거가 나오자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사과에 나섰다. 사법부의 최고 수장으로서 거짓 해명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셈이다.

김 대법원장과 임 부장판사는 사법부 선후배다. 김 대법원장은 판사라면 모두 선망하는 사법부의 수장이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도 고위직이다. 이번 사태는 사법부 어른들이 했다고는 믿기 어려운 부끄러운 일이다.

부장판사가 대법원장과의 면담을 녹취했다는 사실도 문제지만 후배의 탄핵을 놓고 거짓 해명을 늘어놓다가 증거물이 나오자 뒤늦게 해명하며 사과하는 현직 대법원장의 모습을 보니 우리 사법부가 처한 위기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다.

김 대법원장과 임 부장판사의 대화에는 ‘심격천산(心隔千山)’이 존재했다고 추측된다. 사법부의 어른들끼리의 대화도 믿음이 없어서 녹취하고 거짓 해명을 하는 상황이라니 사법개혁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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