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듣는 것으로 마음을 얻는다는 뜻이지요. 이 말은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사자성어’입니다. 이 말의 유래는 노(魯)나라 왕이 바닷새를 궁(宮)안으로 데려와 술과 육해진미를 권하고, 풍악과 무희 등, 융숭한 대접을 했습니다.

하지만, 바닷새는 어리둥절해 슬퍼하며 아무것도 먹지 않아 사흘 만에 죽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장자(莊子)는 이 노나라 왕의 이야기를 통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상대방 입장을 고려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즉, 노나라 왕은 자신이 즐기는 술과 음악 그리고 음식이 바닷새에게도 좋을 것이라 착각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청득심’은 경청(傾聽)과 배려(配慮)의 단순한 의사소통뿐이 아닙니다. 서로간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신뢰를 만들어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자기 말을 많이 하기 보다는 남의 얘기를 많이 듣고, 듣기 좋은 말뿐만 아니라, 듣기 거북한 쓴 소리에도 귀를 기울어 들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는 순간 상대를 가리키는 손가락은 검지뿐입니다.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세 손가락은 ‘자신’을 향해있는 것입니다.

남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떳떳한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은 대개 말이 아닌 침묵(沈默) 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침묵이 금(金)인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내가 말하기 보다는 침묵하며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어떤 부인이 정신과 의사를 찾았습니다. “선생님 더는 남편과 살지 못하겠어요. 그 사람은 너무 신경질적이고 잔소리가 심해요.” 의사가 고민 끝에 처방을 합니다. “우리 병원 옆에 샘이 하나 있습니다. 그 샘물을 한 통 길어서 집으로 가져가세요. 남편이 귀가하면 샘물을 한 모금 머금으세요. 그런데 가능하면 오래 머금을수록 효과가 좋고 바로 삼키면 효과가 없습니다.”

그 부인은 남편이 귀가하자 얼른 물 한 모금을 머금었습니다. 이게 웬 일입니까? 조금 지나자 남편이 잠잠해지는 것이 아닌가요? 하루 이틀 무사히 지나가자 이젠 남편이 잔소리를 시작하네요. 그럴 때도 부인은 어김없이 그 샘물을 입에 머금었습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나자 남편의 행동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신경질이 줄고, 아내를 함부로 대하던 행동도 몰라보게 변했습니다. 신비한 효과에 깜짝 놀란 아내가 의사를 찾아가 감사 인사를 올렸습니다. “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그 샘물이 너무 좋더군요. 남편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의사는 빙긋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편분이 변한 것은 그 물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침묵 덕분입니다.”

어떻습니까? 말은 3~4년이면 배우지만, 침묵은 그렇게 아무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말을 잘하는 사람도 침묵을 할 줄 알아야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징기스칸의 말에 이런 명언이 있습니다. “배운 게 없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며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이와 같이 ‘내가 듣고 있으면 내가 이득을 얻고, 내가 말을 하고 있으면 남이 이득을 얻는다.’ 이것이 ‘이청득심’의 교훈일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삶의 후회는 대개 말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말을 참지 못하고 마구 뱉고 나면 일시적으로 속은 시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삶의 지혜는 듣는 데서 비롯됩니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습니다. 쉼 없이 떠들어 대는 사람에게서는 아무것도 얻을 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남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사람은 그의 잠재의식 속에 자기만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는 편견이 지배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사람은 언젠가 그 공동체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이지요.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정말 말이 무성한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무성한 말들은 이치적으로 다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행이 따라주지 않아서 결국은 말만 번지르르 하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런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말만 앞세운다며 신뢰감을 갖지 않습니다.

말로 성현군자가 되지 못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단지 그 말이 행동으로 받쳐주지 못해서 중생인 것입니다. ‘큰 사업을 하는 사람은 덕(德)과 재(才)를 같이 진행하되, 덕위에 재를 써서 참 재주를 삼느니라.’는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흔히 보면 재주 때문에 실패하는 사람은 있어도 덕으로 손해 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말 보다는 행(行)이 앞서야 합니다. 저도 오늘부터 마나님의 잔소리에 냉수를 한 모금 머금고 침묵의 모드로 들어갈까 하네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2월 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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