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뉴스시간에 백화점마다 명품관에 사치품들이 동이 났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아니 이 어둡고 긴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이 죽어간다고 괴로움을 호소하는 이 마당에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저의 귀를 의심케 한 바가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설을 앞두고 고향의 부모님도 찾아뵙지 못하는 이때 전국 관광지마다 오는 3월까지 이미 호텔객실예약이 끝이 났다고 합니다. 참 그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 아니고 꼭 별천지에서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이네요.

한편 2월 8일 뉴스 시간엔 또 한 번 제 귀를 의심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김범수(1966~) 카카오 이사회 의장의 입이 딱 벌어질만한 기부발표가 있었던 것입니다. 김범수 의장은 자신의 재산 절반 이상을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입니다.

김 의장의 재산은 개인 명의로 보유한 카카오 주식 1250만주 등, 총 10조원이 넘어 기부 의사를 밝힌 '재산 절반'은 5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더불어 김 의장은 “격동의 시기에 사회문제가 다양한 방면에서 더욱 심화되는 것을 목도하며 더 이상 결심을 더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어 “그 다짐은 공식적인 약속이 될 수 있도록 적절한 기부서약도 추진 중에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김 의장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는 이제 고민을 시작한 단계”라면서 “카카오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찾고 지원해 나갈 생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김의장은 “모든 영역에서 ‘비대면’이 강화되는 상황과 급격한 기술 발전이 겹쳐지면서 세상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영역으로 빠르게 진입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할 수 있는 이번 변화의 물결은 세상을 어느 곳으로 이끌고 갈지 두렵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한다.” “점점 기존의 방식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많아지면서 함께 지혜를 모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만간 더 깊은 소통을 할 수 있는 ‘크루간담회’도 열어보려고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나라 재계에서 사재를 털어 조 단위의 기부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놀라운 소식이 아닌가요? 그러면서 생각난 것이 ‘타인능해(他人能解)’였습니다. 제가 원불교문인협회장 시절에 문학기행을 위해 다녀왔던 곳이지요.

‘타인능해’는 전남 구례에 있는 ‘운조루(雲鳥樓)’의 쌀뒤주 마개에 새겨진 글자입니다. 아무나 열 수 있다는 의미로 ‘운조루’의 주인이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커다란 뒤주를 사랑채 옆 부엌에 주인이 보이지 않게 놓아두고, 끼니가 없는 마을 사람들이 쌀을 가져가 굶주림을 면할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쌀을 퍼줄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들의 자존심을 생각해 슬그머니 퍼갈 수 있게 했다는 것이지요. 그러한 배려는 ‘운조루’의 굴뚝에서도 드러납니다. 부잣집에서 밥 짓는 연기를 펑펑 피우는 것이 미안해 굴뚝도 낮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뒤주는 열고 굴뚝은 낮춘 ‘운조루’는 6·25전쟁 때, 빨치산의 본거지였던 지리산 자락에 있었지만 화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대대로 나눔을 실천했던 정신이 ‘운조루’를 지킨 셈이 아닐 런지요?

언제인가 원불교문인협회 임원회의를 하느라고 서울 인사동의 한 식당에 들어갔더니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에 떡부터 내와서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웬 떡이냐?’고 물으니, 주인 딸이 취직이 되어서 기쁨을 나누려고 떡을 대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3년 전쯤에 이 식당에서 점심 값을 계산하려는데, “오늘은 무료”라며 돈을 받지 않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아! 그때요? 어머님과 함께 이 집에서 20년 동안 개성만두집을 운영했는데, 그날이 어머님의 49재 날이었어요. 그래서 그날 오신 모든 손님에게 무료로 만둣국을 대접했었지요. 손님들께 감사하는 마음과 어머님이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딸이 취직이 되었다면서 떡을 내 놓은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좋은 일이나 궂은일이나 이웃과 함께 나누고자 했던 우리 조상들의 넉넉한 인심이 떠오르면서 ‘타인능해’의 고사(古事)가 생각난 것입니다. 요즘은 나와 내 자식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나눔보다는 한 푼이라도 더 챙기려고 기를 쓰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또한 내 돈 내 맘대로 펑펑 쓰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며, 이 코로나19 사태에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은 채 명품관에 줄을 서고, ‘설캉스’나 즐기는 사람들을 보는 보통 사람들의 심사가 편치 않은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자손을 위해서라도 이웃에 덕을 넉넉하게 베풀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어쨌든 김법수 카카오 구룹 의장의 통 큰 재산 환원은 그야말로 이 어려운 시기에 국민들의 답답한 가슴을 확 트이게 만든 쾌거인 것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실로 오래간만에 국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만든 김범수 의장에게 경의를 표하네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2월 15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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