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자한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는 뜻이지요. 이 말은 《맹자(孟子)》 <양혜왕장구상(梁惠王章句上)>편에 나옵니다. 양 혜왕이 패전의 치욕을 씻는 방안을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인자한 정치를 해서 형벌을 가볍게 하고, 세금을 줄이며, 농사철에는 농사를 짓게 하고, 장정들에게는 효성과 우애와 충성과 신용을 가르쳐 부형과 윗사람을 섬기게 한다면, 몽둥이를 갖고서라도 진(秦)·초(楚)나라의 견고한 군대를 이길 수 있다”고 대답한 것에서 유래한 유명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인(仁)을 가진 자는 적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인을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도 대적할 자가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 아무리 난세(亂世)라도 따뜻한 사랑으로 뭉친 조직이나 나라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따뜻한 사랑으로 뭉친 조직이 어떤 것보다도 센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지요.

결국 한 조직의 힘은 무기와 자본이 아니라 사람들의 신뢰와 공감대라는 것입니다. 신뢰와 공감은 사랑의 실천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옛날 고려말기에 조선 보부상의 아버지 백달원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부인은 까막눈인 남편에게 글을 가르쳐 읽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는 본래 황해도 토산 출신의 천민으로 원래 귀족인 왕씨가의 노비였지요. 아내는 바로 그 주인집 딸이었습니다. 노비와 주인 아가씨 신분이었지만, 백달원은 어릴 때부터 아가씨와 오누이처럼 자랐습니다. 하루는 백달원이 아가씨를 모시고 절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불공(佛供)을 드리고 내려오는데 소나기가 쏟아져 아가씨를 업고 계곡을 건너다 춘정(春情)이 동해서 아가씨를 껴안았는데 아가씨가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백달원은 아가씨를 몰래 만나서 사랑을 속삭였지요.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주인나리가 아가씨를 개경의 유력한 부자에게 시집보내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둘이 도망칠 수밖에 없습니다.” 백달원은 아가씨와 함께 야반도주(夜半逃走)를 했습니다. 그들은 황해도와 평안도를 떠돌다 함경도의 삼수갑산까지 와서 정착했습니다. 귀하게 자란 아내는 산속에서 사는 것을 힘들어했지요. 농사를 지을 줄도 모르고 사냥을 할 줄도 모르는 그들은 이웃 사람들이 친절하게 도와주었습니다.

‘사람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 백달원은 그것이 공자가 말한 인(仁)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마을에 어려운 일이 닥치면 반드시 솔선하여 도왔습니다. 그리고 백달원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산속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짐승 가죽을 모았고, 아내는 짐승 가죽을 손질했습니다. 그렇게 손질한 가죽은 함주에 가지고 가서 팔았지요.

백달원은 걸인들을 휘하로 끌어들였습니다. 흉년이든데다 관리들의 착취로 거리에는 굶어죽는 사람들이 가을 낙엽처럼 뒹굴고 있었습니다. 백달원은 그들을 끌어들여 상단(商團)을 조직했습니다. 백달원은 상단을 조직한 뒤 본격적으로 장사에 나섰습니다. 장사 규모도 커지고 거래 품목도 다양해졌지요. 그들의 가족까지 합치자 100명 가까이 되어 마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달원은 장정들과 가족들을 모아놓고 ‘삼강오륜’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도리를 지키지 않으면 상단에서 추방한다고 선언합니다.

「① 물망언(勿忘言) : 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 ② 물패행(勿悖倫) : 행동을 함부로 하지 마라./ ③ 물음란(勿淫亂) : 음란한 짓을 하지 마라./ ④ 물도적(勿盜賊) : 도적질을 하지 마라.」 이것이 500년 동안 이어온 조선 보부상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장사를 하러 다니다가 백달원은 뜻밖에 전투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시체들 틈에서 동북면 장수가 신음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의 허벅지는 창에 찔렸고 어깨에는 화살이 박혀 있었지요. 그분이 바로 이성계 장군이었습니다.

고려는 점점 혼탁해져갔습니다. 이성계는 결국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여 태조가 되었습니다. 그 후, 백달원을 부른 이성계는 “내가 조선을 건국할 수 있었던 데는 그대의 공이 크다.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하라.” “상인들이 편안하게 장사할 수 있도록 보호해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가?” “도성과 지방에 임방(任房)을 설치하여 서로 보호하고 돕도록 윤허해주십시오.”

이성계는 상인들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해서 개성의 발가산에 보부상들의 업무를 관장하는 임방을 설치하고 백달원에게 그 책임을 맡겼습니다. 이성계는 아울러 어물, 소금, 목물, 토기, 무쇠그릇 다섯 가지 물품에 대한 전매 특권을 백달원에게 부여했습니다.

백달원은 조선 최초로 상인들을 통괄하는 총책임자가 되었고, 중요한 물품의 독점권까지 획득해 이성계에게서 기대 이상의 보상을 받았습니다. 백달원은 임방에 설치하여 보부상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마음껏 장사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주어 보부상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인’을 실천하여 대적할 자가 없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 까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2월 2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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