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自尊心)과 자존감(自尊感)은 어떻게 다를까요? 자존심은 ‘나는 잘났다’면서 자신을 지키는 마음이고, 자존감은 ‘나는 소중하다’ 하면서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어제 2월 22일, 검찰 인사를 둘러싼 논란으로 사의를 표명했던 청와대 신현수 민정수석이 업무에 복귀키로 했다고 합니다. 지난 7일 검찰 검사장급 인사를 둘러싼 논란으로 여권 내 극심한 혼란상을 불렀던 청와대의 파동은 2주 만에 일단 봉합되어 국민들에게 안도감을 안겨 준 것 같습니다.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신 수석이 거취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일임하고 최선을 다해 직무를 수행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로써 신 민정수석은 자존심도 지켰고, 자존감도 지킨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만약 신 수석이 끝내 자존심을 지키려 사직을 강행 했더라면, 아마 그는 검찰개혁을 반대하려다가 자존심은커녕 인간의 자존감 까지 잃고, 역사의 죄인으로 남는 별 볼 일 없는 범부(凡夫)로 추락했을지도 모릅니다.

오래 전에 일본 최고의 명문 공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 학생이 공부를 더 하라는 교수와 선배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회사에 취업하기 위하여 ‘마쓰시다 전기회사’에 입사 지원서를 접수 시켰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수석을 놓친 적이 없고, 항상 남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인 천재학생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공부를 포기하고 취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숨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하였지요. 그런데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 천만 뜻밖에도 합격자 명단에 천재의 이름은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몇 번이고 확인 하였지만 분명히 자신의 이름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던 천재는 분명히 수석으로 합격될 것으로 자신했는데, 수석은커녕 합격자 명단에도 오르지 못한 것입니다. 당당한 모습으로 발표를 기대했던 그는 풀이 죽은 채 환호하는 합격자와 합격자 가족들을 뒤로 하고, 핏기가 없는 얼굴로 힘없이 집으로 발길을 돌렸지요. 집에 돌아온 그는 그날 저녁 평생 처음 맞본 불합격에 따른 좌절감과 자존심이 상한 것을 이기지 못해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가족들은 이미 숨을 거둔 그를 발견하고 큰 슬픔에 빠져 오열하고 있을 때, 긴급 전보로 ‘합격 통지서’가 도착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예상했던 대로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한 실력으로 합격했던 것이지요. 수석으로 합격했기 때문에 일반 합격자 명단에 넣지 않고 별도로 적혀있는 그의 이름을 실무자 실수로 합격자 명단에 빠뜨린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이 사건은 일본 사회에서 큰 화제가 되었으며, 회사의 실수로 천재를 죽였다고 비난하는 보도가 연일 쏟아졌습니다. 그 천재 청년은 ‘자존심’때문에 ‘자존감’을 포기한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사건이 잠잠할 무렵, 한 기자가 그 회사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을 찾아가 인터뷰하며 그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마쓰시다 회장은 당시 회사의 실수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하면서 이렇게 말 하였지요. “장래가 촉망이 되는 청년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회사의 입장에선 다행스러운 일이었지요.” 뜻밖의 말에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총수는 말을 이었습니다.

“단 한 번의 실패를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심약한 사람이라면, 중역이 되었을 때, 만약 회사가 위기에 봉착한다면,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함으로써 회사를 엄청난 위기에 빠뜨리고, 전 사원의 삶이 걸려있는 회사를 비극으로 끝을 맺는 우를 범 할수 있었을지 알겠습니까?”

불가(佛家) 교리 중, 사상(四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상(我相)⸳인상(人相)⸳ 수자상(壽者相)⸳중생상(衆生相)’ 이 네 가지이지요. 이 ‘사상’이 아마 우리가 말하고 있는 ‘자존심’에 해당에 해당하지 않을 런지요? 아상(我相 : atman samjna)이란 고대 인도의 브라만교에서 주장한 영원불멸의 존재인 ‘아트만(atman)’에 근거한 견해입니다.

즉, ‘나(我)’ 혹은 ‘자아(自我)’라는 생각을 말하지요. 여기서 ‘나’라고 하는 것은 나의 육신, 나의 주장, 나의 직장, 나의 사회적 위치, 나의 능력 등을 의미한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불가의 관점에서 볼 때,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두 변화하기 때문이지요. 죽게 되면 모두가 해체돼버리고, 육신도 결국 화장하거나 땅에 묻혀 ‘지수화풍(地水火風)’ 네 가지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석가 부처님이나 소태산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에 이르러 보니, 우주안의 모든 사물은 ‘성주괴공(成住壞空)’으로 변화하고, 생각은 ‘생주이멸((生住離滅)’변한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결국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제법무아(諸法無我)’인 것입니다.

이번에 청와대에서 찻잔 속의 태풍이 불었던 것 같습니다. 역시 지혜 있는 분들의 처사하는 것에 잔잔한 감사와 감동이 전해집니다. 자존감을 지키는 사람이 불보살입니다. 만약 이 태풍이 ‘추⸳윤’ 갈등처럼 비춰 졌더라면, 얼마나 더 국민들에게 큰 불안감을 안겨 주고 역사의 죄인으로 남았을 까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2월 24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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