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하완 작가 24일~4월 17일 양주 안상철미술관 초대전

“생채기가 있어 삶은 아름다웠노라 화폭으로 말하리라”

류하완 작가, 24일~4월 17일 양주  안상철미술관 초대전

[서울 =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색을 선과 점 속에 가두려 한다. 아니 집적 시키고자 한다. 발광의 색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류하완 작가의 작품을 몇구절로 요약하면 그렇다. 빈 캔버스 화면에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고 칼로 자르고 물감을 끼얹고 말리고. 다시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고 칼로 자르고 물감을 끼얹고 말리고. 또다시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고 칼로 자르고 물감을 끼얹고 말리고……. 화폭은 두텁게 쌓아 올려 진 테이프와 그 사이를 메꾼 색층이 드러난다. 테이프를 뜯어내면 선이 되고 색들은 그 안에서 발광을 한다.

켜켜히 쌓인 짙푸른 녹색은 여름철 숲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검푸름에서 욕망이 꿈틀되기도 하고 긍극엔 두려움에 휩쌓이게 된다. 생명의 절정인 숲에서 죽음의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이치와 같다.

”처음 태어난 아이의 울음은 순수하고 단순하다. 배가 고프고 잠이 올 때만 칭얼거리고 울던 아이는 주체적 삶이 될 때 까지 이루고 얻어야 하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아니 처음 세운 목표를 달성 한 그 이후에도 더 큰 욕망으로 갈구하게 된다.“

요즘 작가는 있는 그대로 가만 두지 못하고 거듭 무언가를 더해 본연의 모습을 가리면 가릴수록 순수한 모습을 잃고 점점 퇴색해 감을 절감한다.

”욕망이 쌓이고 순수한 모습이 흐려질 때 시련이 마음을 난도질하고 흠집이라는 훈장을 단다. 누구나 삶에서 겪는 시험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때 오뚜기처럼 일어설 수 있어야 흉 사이로 새살이 돋는다. 그러나 상처에 앉은 딱지도 떨어져 갈 때쯤 또 다른 시련이 어김없이 오고, 이렇게 반복되는 삶 속에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모두가 시한부의 삶을 사는 이상 이해하지 못할 일은 없다는 것을. 그러다보면 세상에 아쉬울 것이 없다. 체념일까 관대일까,반문해 본다.“

작가는 감히 말한다. 발광의 흔적들이 삶이라고. 굳이 열정이라 위안 삼는다.

”모든 껍데기를 깨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죽음 앞에서 나를 돌아보면 그 상처 많고 흠집 많은 삶 속 어딘가에 내 인생의 찬란한 꽃이 피어 있을 것이라 믿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시행착오 끝에 누리게 될 절정의 순간을 위해 열정을 불태운다.“

사실 인간은 죽기직전이나 죽음으로써 인간사에 찌든 우리의 삶은 그 무게를 비로서 벗어난다. 본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할퀴어지고 상처만 남은 흔적들로 채워진 작가의 화폭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발광하는 화폭은 아름답게 다가온다.

작가는 평소 오브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특히 아주 평범한 마스킹테이프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문구류로 책상에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그림 그리는 작가들에게는 물감을 번지는 것을 막거나 면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재료로 흔히들 사용한다. 요즘엔 다양한 테이프로 작업하는 작가들이 많다.

‘마스킹테이프로 작업하다 보니 그 행위가 점점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보면 아주 순수하고 맑은 모습이다. 아주 기본적인 욕구들만 있지만 성장할수록 우리가 지키고 또 가져야 하고 하는 것들이 늘어난다. 어른이 될수록 한 겹 두 겹씩 욕망이 늘어나고 그걸 잃지 않기 위해 더 애를 쓰고... 그러다 보면 본연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두꺼운 욕망의 허물을 입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무거움을 벗어던지고 싶고 해방감을 느끼고 싶을 때가 온다. 마스킹테이프를 한 겹 붙일 때는 그래도 맑은 화면이 보이지만 두 겹, 세 겹, 그리고 10회 이상 쌓다 보면 화면의 본모습은 없어지고 두터운 테이프만 가득하게 되고 화면 가득 찬 테이프를 결국 다 뜯어야만 다시 화면이 나타나게 된다. 집적된 물감과 생채기 같은 칼의 흔적들이 드러난다. 훈장 같은 모습이다. 이건 우리의 삶과 정말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는 상처를 안고사는 인간사를 마스킹테이프 물성으로 드러내고 있다.

“마스킹 테이프는 종이 재질이라 물에 약하기 때문에 물감이라는 외력에 약하다. 그 때문에 수차례의 채색을 반복하는 동안 물감이 스며들고, 테이프를 벗기면 그 모습이 고스란히 남는다. 세상사가 할퀴고 간 자리가 남은 우리네 속사정과 같아진다. 이때 같은 과정을 겪은 사람이라 해도 마지막에 남는 모습이 다르듯, 테이프를 똑같이 붙여도 벗겨내기 전까지는 화면의 모습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므로 더더욱 우리네 사는 모습을 닮았다.”

작가는 고된 마스킹테이프 작업을 감내한다.

“그동안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고된 작업을 벗어나려 몸부림도 쳐보았다. 하지만 결국 나와 테이프 사이의 갈등은 칼로 물 베기 같은 사랑싸움이었다. 이유 없이 큐브에 끌리고 익숙한 테이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바느질하던 어머니를 보고 자란 기억이 므두셀라 증후군으로 아름답게 치장하여 나를 붙잡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추억이 언제나 아름답게 남는 것은 필연이라 하지 않았던가.”

작가가 완성된 화폭을 다시금 물끄러미 바라본다. 언뜻언뜻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이 아름다웠던 과거로 데려가 섬광처럼 사라진다. 손으로 시간을 잡을 수 없으니, 도시의 메마른 빌딩 숲에서 지난날 소풍 가던 녹음 짙던 숲을 그리워 그려본다.지나가버린 어린아이의 호기심과 천진함을 그리워 하는 것이다. 고층 건물 사이에서 한 땀 한 땀 숲을 그리다보면 잎사귀 사이에서 어린 날의 작가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림은 그리움을 그리는 것이 아닌가.   24일~4월 17일 안상철미술관 초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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