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통]

‘손자병법 구변편’에 “비지(圮地)에서는 집을 짓지 말라”는 말이 있다. 또 ‘구지편’에서는 “산림이나 험준한 곳, 또는 늪이나 연못 등이 있어 행군하기 어려운 곳을 비지라 한다.‧‧‧‧‧‧비지에서는 아군의 행진을 빨리하여 신속히 통과해야 한다”고 했다. 요컨대 군대가 비지를 지날 때는 신속하게 통과해야지 멈추어서는 안 되며, 이런 지형에 군영을 치고 주둔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 비지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이 나름대로 해석을 가하고 있다. 조조는 “비지란 물 때문에 허물어진 곳을 말한다”고 했다. 또한 이전(李筌)은 “땅 아래를 비지라 한다. 행군할 때 반드시 물이 덮친다. 이는 제갈량이 말하는 ‘지옥(地獄)’인데, 여기서 옥(獄)‘이란 가운데가 낮고 사방이 높은 곳을 말한다”고 했다.

이러한 해석들은 그 의미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 어쨌든 ‘비지’는 지나기 어려운 땅을 말하는데, 산림‧늪‧험한 길 등이 이에 속한다. ‘오왕 손무문대’를 보면 비지에서의 작전에 관해 오왕과 손자가 나눈 대화가 있다.

오왕 : 비지에 들어가면 산천이 험하여 지나가기도 어렵거니와 오래 행군하면 병사들이 지친다고 하오. 적이 앞에 있고 뒤에는 매복이 있으며 왼쪽에는 적의 군영이 있고 오른쪽도 지키고 있으면서 정예병을 동원하여 우리의 길을 막으려 한다면 어찌해야 하오?

손자 : 먼저 가벼운 수레를 전진시켜 군대와 10 리 정도 떨어져, 앞으로 접하게 될 험준한 길의 형세를 살피게 합니다. 그리고 병사를 좌 또는 우로 나누어 행군케 하면서 대장은 사방을 두루 관찰하여 빈공간을 택해야 하는데 모두가 가운데 길에서 만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피로해 지면 즉시 멈춰야 합니다.

679년, 당나라의 대장 배행검(裴行儉)은 명령을 받고 동쪽으로 돌궐을 공격하게 되었다. 군대가 적과의 경계 지점에 이르자 날이 어두워졌다. 군대는 군영을 설치하고 참호도 팠다. 그런데 배행검은 돌연 높은 언덕 쪽으로 군영을 옮기라는 명령을 내렸다. 부하 장수들은 어리둥절해 반대 의사를 표시했으나 배행검은 듣지 않고 높은 언덕에 군영을 치게 했다. 밤이 되자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쳐 애당초 군영을 설치하려 했던 곳이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여러 장수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비지무사’의 아주 좋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백전기법’ ‘택전(澤戰)’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출정하여 행군하다가 늪이나 못 또는 무너진 언덕을 만나면 행군 속도를 배로 높여 빨리 통과해야지 지체해서는 안 된다. 부득이 그런 지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날이 저물어 야영하게 되면, 반드시 거북이 등처럼 불룩한 곳을 택하여 가운데가 높고 사방이 낮은 곳에 진을 치고 적을 맞아야 한다. 빗물로 인한 위험을 막고 사방의 적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비지’처럼 지나가기 어려운 길은 피해 가거나 빨리 통과해서 예기치 못한 상황을 예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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