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신라갤러리, 세계적 개념미술가 로버트 배리 개인전

현수정 큐레이터의 도움으로 살펴본 ‘절대 어렵지 않는 전시’
인식의 지평 넓혀주는 개념미술의 미덕 살펴볼 수 있는 기회

[서울=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 갤러리 신라(대구)는 오는 5월 20일까지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개념미술가 로버트 배리(Robert Barry, B.1936~ )의 개인전 ‘In Between...’을 연다. 2018년 갤러리 신라 전시이후 3년만에 마련된 전시다.

로버트 배리의 1960년대 설치 작품인 ‘Steel Disc Suspended 1/8inch Above Floor’(1967)와 ‘Wire Sculpture With Gold Ring’(1968)과 최근작 ‘Window Installation Words’와 ‘Random Paintings’까지 시대를 뛰어넘은 명작 20여점을 한 자리에 선보이는 자리다.

그 어렵다는 개념미술전시를 현수정(뉴욕 독립큐레이터)씨의 도움으로 가이드를 해본다. 개념미술은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는 점에서 미덕이  있다.

전시 제목 “IN BETWEEN…” 은 작가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코드다. “내부 그사이…”라는 제목은 시간과 공간 모두를 함께 아우르고 있다. 존재를 인지할 때, 우리는 어떤 경계를 정한다. 경계가 설정되고 나면 어떤 것이 내부에 있거나 그와 대비되는 외부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그 사이’에 있기도 하다. 더 애매하게 몰고 가자면, 그것은 양자역학처럼 두 요소를 다 가질 수도 있다.

작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안(과거/ 미래)에 있나요? 밖(미래/과거)에 있나요? 아니면 그 사이(현재, 자각하고자 하는 무엇)에 있나요? 아니면 그것도 저것도(현재도, 미래도, 아니 과거도) 아닌가요? 아니면 그 모든 것이 함께 있는 것인가요?”

85세 작가의 삶은 현악기, 콘트라베이스의 단조로운 음을 닮았지만, 10여 평 남짓 차고를 개조해서 만든 스튜디오에는 작가의 진지함과 수고, 그리고 가슴 뛰는 에너지가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60년대 설치 작품부터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최근 2020, 2021년에 제작된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다.

갤러리 외관 넓은 유리 벽에(넓이 9.5m, 높이 6.2m) 펼쳐진 단어 설치 작품, 연필 드로잉과 단어 구성을 함께 보여주는 회화 작품, 30cm 정도의 정사각형 9개 캔버스가 모여 한 세트가 되는 작품, 중반기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소중한 회화 작품, 그리고 초기 실험적인 작품으로 금속을 매체로 한 공간 설치 작품 등 2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1960년대 로버트 배리 작품 세계의 주 관심사는 다른 개념 미술 작가들과 같이 ‘비가시성, 비물질화(Dematerialization)’로 기록이나 행위를 매체로 작업하였다. 이 시기 대표적인 작품인 ‘반송파 시리즈 Carrier Wave Series (1968)’와 ‘불활성 기체 시리즈 Inert Gas Series(1969)’에서 작가는 비가시성이란 다소 모호한 개념을 이해시키기 위해, 작품과 관객 사이를 ‘현재적인 경험’과 그 경험을 통한 ‘자기 인식의 깨어남’에 감상 포인트를 제시했다. 그리고 이 ‘비가시성’의 작품은 갤러리 공간에서 투명한 와이어를 이용한 수직, 수평의 선으로 옮겨졌다. 사실 그 선들은 의식을 기울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음이 겹쳐진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고 있는 ‘정지된 스틸 디스크 Steel Disc Suspended (1968 – 2021)’, ‘골드 링 Gold Ring(1968 – 2021)’은 바로 이와 같은 맥락의 작품이다.

‘정지된 스틸 디스크’는 세스 지겔로브(Seth Siegelaub)의 아파트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뉴욕의 Gasser & Grunert Gallery에서도 전시되었으며 현재 MOMA 컬렉션에 들어가 있다. 이번 전시에 사용된 스틸 디스크, 골드 링은 신라갤러리가 작가의 승인 아래 제작한 것으로 설치 방법과 아이디어는 1968년 원작에 준하고 있다. 처음 제목은 ‘Untitled(1968)’이었지만 작가가 즐겨 사용해온 ’무제’라는 여러 작품명과 차별하기 위해 이번 전시에서 ‘정지된 스틸 디스크’라고 하였다. 원작 ‘골드 링’은 60년대에 작가가 맨해튼 차이나타운에 있는 캐럴스트릿에 있는 가게에서 발견한 일상용품으로 뒤샹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일종의 오브제와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골드 링’은 전시 공간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설치될 수는 있으나 주로 세 개 줄을 이용하여 공간 속에 지지되어 있는 설치 작품으로 지명도 있는 화랑인 Andre Sfeir Semler의 파리와 함부르크 갤러리, 뉴욕의 국제 미술 박람회에서도 전시되었다.

이 실험적인 설치 작품의 목적은 미술이 보통 그림이 걸리는 벽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시 공간 전체를 포함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와이어는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형태가 공간으로 변모함을 암시한다. 두 작품을 사이를 거닐며 관객은 공간과 작품, 작품과 관객, 그리고 공간과 관객 사이, 혹은 그 안의 연결성, 관계성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1970년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단어(words)만으로 작업을 진행하면서 심미적인 형식을 축소시켜 오히려 창작자의 의도를 명료하게 작품으로 정착시켰다. 단어(words)는 개념 미술의 범주에서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아이디어와 미학의 문맥 사이에 일관성을 가지면서 다양한 표현, 매체로 변주되어 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가장 많은 범위를 차지하는 작품은 시각적 대상 이미지 없이 오직 영어 단어로 구성된 작품들이다.

작가는 70, 80년대 수직으로 단어를 나열하는 ‘단어 리스트(Word List)’를 제작하였는데 이번 전시 작품 중 ‘Untitled: Until, Occasion, Inevitable, Avoid, Urgent ,Somehow (1990)’가 그 시기의 작품 경향을 보여준다. 단어는 빨간색 바탕 위, 일정 간격으로 수직 배열되어 있다. 이들 단어는 뉴욕 타임스, 잡지, 광고 등 일상의 대중 매체들에서 작가가 자유롭게 선택한 것들이다.

개념 미술에서 말하는 중심축을 해체하는 ‘상호 텍스트성’을 생각해보면, 단정한 표준 글꼴로 된 영어 단어는 결정된 의사 체계의 전달자가 아니라 관객의 주관적 이해 앞에 열려 있는 것이다. 작가는 단어가 순간 살아서 관객의 생생한 만남을 가진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들 단어는 미술의 오브제처럼 작품에서 기능한다. 특정한 순간(관객과 작품과 만남)에 이 오브제는 생각하고, 느끼고, 해석하는 능력을 자극하도록 의도되어있다.

로버트 배리가 회화로 개념 미술을 시도한 ‘Green Edges (1964)’, ‘Diptych (1967)’ 같은 작품은 ‘회화’란 캔버스 안에서 이루어지는 2차원 범주에 속한다는 관념을 해체하는 작업이다. 그는 회화의 의미를 작품이 걸리는 벽과 관련시켰고, 회화의 정면만이 아니라 측면도 주목함으로써 회화와 공간을 연계하여 해석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작가는 작품이 놓이는 배치 및 배율을 작품을 이해는 중요한 요소로 제시한다.

이번 전시에서 내걸리는 ‘REMIND (2020)’이 이같은 맥락의 작품이다. 벽 공간(15m x 6m 높이)에 비교해 이 작품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작은 장방25cm이다. 작가는 당당하게 이 작품을 비어 있는 벽의 정중앙에 걸어달라고 했다. 지금까지 작품이 걸리는 벽과 관련시켰던 회화 작품에는 단어를 넣지 않았지만 이번 작품에선 ‘최초이자 유일하게’ 색채만이 아니라 ‘단어(words)’가 들어가 있다.

회화의 경계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서 2020년에 제작된 일련의 회화 작품이 있다. 연필 드로잉을 경계로 하여 단어들이 캔버스 안으로 한계 되거나 어떤 경계로 나눠진다. 이 작품에서 일부 단어는 그 경계에서 잘린다. (The words are cut off.) 이들 잘린 단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각별하다. 미완성의 단어에서 그 의미를 추측하게 하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단어가 놓이는 공간인 캔버스, 벽, 창문의 프레임이라는 경계 밖으로 확장된다고 설명한다. 역설적이지만 경계가 있음으로써 잘린 단어는 경계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이러한 단어의 현존과 확장 효과는 갤러리 입구 외관에 위치한 단어 설치 작품, ‘SOMEHOW(2021)’에서 더 생생하게 나타난다.

2018년 전시에서는 갤러리 내부 벽면에 설치되었던 단어 설치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갤러리 신라의 전면 유리 벽을 점유했다. 작가는 유리 벽을 찍은 사진 위에 색연필로 자신이 선택한 단어를 드로잉 했다. 그 단어들은 단일 색이 아니라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색, 빨강, 주황, 초록, 하늘, 분홍, 황토, 그리고 회색으로 되어 있다. 색색의 드로잉 단어, 다 읽을 수 있는 것도 있고 어떤 단어는 창문 프레임의 경계에 잘려져 있다. 그 단어들의 방향도 어떤 것은 아래로 어떤 것은 위로, 옆으로 규칙 없이 흩어져 있다. 작가는 이 설치 단어들이 자유스럽게 읽히길 원한다고 했다. 하얀 유리창에 놓일 로버트 배리의 단어 드로잉 글자들이 춤을 추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체는 춤꾼은 발바닥에 눈을 달고 몸을 움직인다고 했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생명성에 대한 은유다.

로버트 배리의 단어들은 발바닥에 달린 눈처럼 작가의 스텝에 따라 여기저기 움직이며 춤을 춘다. 그것은 갤러리 안에서 보면 밖의 공간에서 춤을 추고 세상의 입장에서 보면 갤러리라는 경계 안에서 춤을 추는 것이 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그 사이’에서 배리의 단어들은 관객과 함께 춤을 출 수도 있다,

서울에서도 4월 16일부터 5월 13일까지 삼청동 공간에서 로버트 배리의 ‘Closed Gallery’개념전시작품을 한국버전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전시장소는 추후 갤러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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