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의 근원적 해결책에 부쳐

박형준과 오세훈의 투기 의혹은 빙산의 일각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는 개발정보를 이용해서 미리 투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 자체로서도 문제가 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것을 용인하고 조장하는 우리 사회의 다른 문제점들과 엮여있다는 점이다.

첫째, 수사와 처벌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으로서 우리사회에 해묵은 고질인 사법적폐이고, 둘째, 정당하게 땀을 흘려서 얻은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사회적 관리가 제대로 안 되기 때문에 한탕 주의가 횡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형준 전 의원은 이명박 정권 2008년 6월 청와대 홍보기획관에 임명/ⓒ연합뉴스
박형준 전 의원은 이명박 정권 2008년 6월 청와대 홍보기획관에 임명/ⓒ연합뉴스

LH 부동산 투기 사태는 갑자기 붉어진 사건이 아니다. 이미 수년전 부산 해운대 바다 전망이 끝내주는 아파트 LCT 특혜분양 사건이 있었다. 그때만 제대로 수사를 하고 처벌이 되었더라면, 학습효과를 내서 지금 LH 사태가 터질 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특혜분양자 목록이 있었는데도 검찰이 수사를 덮었고, 지금에 와서 그 명단조차 보지 못했다고 한다. 수사를 한다고 했는데, 있는 명단도 못 보았다고 한다.

이 정도로 무능력하다면 검찰이 있으나 마나이다. LCT 사건이 문제가 아니라, 무능한 검찰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같이 무능한 검찰이, 검찰이 가졌던 수사권 일부를 경찰에게 넘긴다고, 되려 경찰이 무능할까봐 걱정을 한단다. 검찰은 그런 걱정하고 있을 처지가 아닌 것이다. 명단을 보고도 수사를 안 하고 덮었다면 썩어빠진 검찰이 되는 것이고, 또 지금에 와서는 거짓말까지 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검찰에게 수사권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지키라고 맡기는 것과 똑같다.

검찰만 그런 것이 아니라 경찰, 법원이 다 같은 물에 있어서 사회 비리의 정화 기능을 바로 하지 못하고 있다. 무언가 바로잡아야 할 사정(司正) 기관이 오히려 비리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 해운대 LCT 사건이 바로 수사가 되었더라면, 지금 LH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런 사법 검찰은 비싼 세금으로 키우지 말고 차라리 없애버리는 것이 낫다. 비리를 조장하는 기관은 없는 게 백번 낫다.

둘째, 불로소득에 대한 사회적 처리 문제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사유재산의 개념을 너무 모호하게, 넓게 규정하고 있어서 사회적 평형을 이룰 수가 없다. 유럽의 선진국만 해도,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보유세가 엄청나기 때문에 차라리 집을 갖지 않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한다. 재산세가 너무 많아서 집이 재산 증식의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재산이 줄어드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가 부담 없는 임대주택에 산다고들 한다. 거기서 절약한 돈은 여름 휴가를 즐기는 데 사용한다. 돈이 재테크(재산증식)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쓰인다.

선진의 유럽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집이 재산 증식의 수단이 못 되도록 사회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불로소득은 사회적 기회를 통해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불로소득을 허용해야 하는가 하는 데 대한 철저하게 사회적 반성과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것에 대해서 우리나라에는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담론 자체가 형성되고 있지 않다. 그저 산발적인 단상으로 나왔다가 사라지곤 할 뿐이다.

유럽의 복지국가에서는 불로소득, 즉 많게는 은행예금에서 나오는 이자의 약 80-90%가 세금으로 징수되어 사회로 환원된다고 하고, 근로세는 60%정도 세금을 징수한다고 하는데, 세금이 이 정도 되면 몇 억대 아니라 몇 십억 연봉을 받는다 해도 크게 배 아파할 것이 없을 것 같다.

LH 및 부산 LCT사태는 부동산 투기 문제뿐 아니라 더 근원적으로 우리 사회의 제도적 허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검찰의 부실수사,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 불로소득에 대한 사회적 관리의 실종 등, 현재 한국 사회를 좀먹고 있는 비리 등이 서로 얽혀 있어서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지금 여야를 막론하고 그 접근하는 방식이 서로 당이나 사람을 공격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겉핥기에 불과하다. 그 곪은 상처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또 이명박, 박형준, 오세훈을 통해 드러난 혐의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정부는 모든 의심과 의혹에 대해 이 잡듯 샅샅이 뒤져 티끌만한 의혹도 남기지 않겠다”고 하고, 급기야 문 대통령은 LH 땅 투기 의혹에 대해 “지금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투기 전모를 다 드러내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이 잡듯이 잡으려고 해도 다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마치 바귀벌레를 보이는대로 잡으려고 하면 아무래도 근절되지 않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몇 마리 박멸해봤자, 보이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고, 더 큰 진원지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투기 전모는 인간의 한계로서 다 드러낼 수가 없다. 또 정부 고위 요직에 있는 이가 뭐라 한마디 해도 그것은 피상적인 수사(修辭)에 그칠 뿐, 이미 타성에 젖을대로 젖고 굳을 대로 굳은 관료, 검찰, 법원, 행정부처 관료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근원적으로 투기한 자는 물론이지만, 부실수사 관행의 검찰에 대한 사정과 처벌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검찰은 어떤 무책임하게 부실수사를 해도 관행적으로 처벌받지 않는다. 이는 마치 투기를 해놓고도 그 이득은 빼앗기는 법이 없고 처벌도 솜망망이로 끝나는 것과 똑같은 맥락에 있다.

바퀴벌레 몇 마리 잡으려는 시민은 위정자들과 피장파장

“LH 주도의 제3기 신도시 지정 철회해 주세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야 할까요?”라는 청와대 청원이 등장했다. 주택난이 났으나 투기가 겁이 나니 주택도지구도 지정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이다. 또 제3기 신도시 지정 철회한다고 해서 부동산 투기가 근절된다는 보장도 없다. 땅은 넓고 넓어서, LH가 없으면 또 다른 것이 나오게 되어있다. 근원적으로 불로소득을 다 뱉아내도록 정책을 짜지 않으면 투기는 계속 된다.

겉핥기식 접근으로 본다면, 위정자들뿐 아니라 시민들도 마찬가지이다. 청주청년회가 “LH 임직원들의 투기행위는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불평등과 불공정에 정점을 찍었다”면서 “LH 땅 투기 관련 전수조사를 제대로 하라”고 촉구하고, 3.15일부터 LH충북지역본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고 보도가 되었다. 청년들도 부동산투기가 시사하는 제도적 허점을 보지 못하고, 다소간에 눈에 드러나는 사람을 잡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LH 땅 투기만 조사해서 될 일이 아닌 것이다.

거기다가, 충북일보가 LH사태를 ‘절차적 민주주의’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하고, 그 ‘절차적 민주주의 해체 신호탄’이 된다고 표제를 달았다.(충북신문, 2021.3.16. “역린 건드린 LH사태, 절차적 민주주의 해체 신호탄”) LH의 “돌려막기, 나눠먹기”가 절차적 민주주의가 만든 위기로 규정한 것이다. 이런 엉뚱한 기사 제목이 굉장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아니, LH 직원이 투기를 한 것은 간단히 말해서 사기, 도둑질인데, 그게 민주주의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

‘절차’에다 ‘민주정치’를 갖다 부치면, 절차가 민주적으로 되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민주는 다수 민중이 중심이 되는 것이지, 한정된 LH 직원이 중심이 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이번 LH사태에 ‘절차민주정치’란 말을 갖다 붙이려면, 적어도 청주청년회는 “LH 땅 투기 관련 전수조사를 제대로 하라”고 촉구하거나, “15일부터 LH충북지역본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청년 혹은 시민이 중심이 되어 “검찰수사를 못 믿겠고, 우리가 전수조사를 하겠으니 그 조사권을 시민들이 갖겠다”고 주장해야 하는 것이다. 또 “국회나 행정부에 맡겨놓으니 맨날 뒤끝도 없이 흐지부지 되고 있으니, 위정자의 손을 빌리지 않고 민중 시민 청년이 모두 나서서 직접 조사하고 처벌하겠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민(民)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 절차이다. 남에게 ‘해달라고 부탁하고만 있는 것이 절차민주주의가 아니란 말이다.

'성인지 감수성'이 성희롱 가해 혐의자를 양산한다

이번 4.7 선거를 앞두고 고(故) 박원순 시장에게 주어진 성희롱 문제도 다시 등장했다. 그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가 박영선 후보를 보고 사퇴하라고 주장하면서 기자회견을 연 것이 화두가 되었다. 안희정, 박원순의 경우는 사정이 어떠한 지는 잘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앞으로 계속 증거가 분명치 않은 성희롱 ’가해 혐의‘의 피해자들이 양산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나 이런 선거를 코앞에 두고 성희롱에 의한 ’(잠정적)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는다는 빌미로 시장후보를 사퇴하라고 요구를 하는 것을 보고는, 적지 않은 이들이 ’성희롱‘이란 게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아닌지 의아해한다.

이 성희롱 문제도 부동산 문제같이 더 근원적으로 해결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개념이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감수성‘이란 것이 원래 객관적 증거가 없을 때 쓰이는 것인데, ’감수성‘을 가지고 상대를 비난하고 옭아넣는 곳이, 과문하긴 하나, 대한민국밖에 없지 않나 한다.

성인지 ’감수성‘은 남성 대 여성 간의 성희롱 문제를 넘어서 같은 남성, 혹은 같은 여성끼리의 권력다툼에 이용될 소지가 있다. ’감수성‘이라는 것이 뚜렷하게 객관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성희롱‘을 견제한다는 본래 취지를 가리고, 오히려 권력 다툼에 상대를 매장시키는데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외국의 사례에서 성희롱은 주로 해고나 근로조건의 불이익과의 관련하에서 성립한다. 근로조건 불이익은 ’감수성‘과 달리 명확하게 객관적 증거가 있다.

한국에서는 성희롱에 관련된 법들 간에 일관성이 없고, 서로 괴리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과 「남녀고용평등법」에서는 성희롱이 “고용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을 전제로 하고있는 반면, 「여성발전기본법」과 「양성평등기본법」에서는 성적 굴욕감과 고용상의 불이익 중 어느 한쪽에만 연루되어도 유죄가 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성적 굴욕감’ 혹은 ‘성인지 감수성’이란 주관적 감정을 빌미로 억울한 가해자를 양산할 수 있는 올가미로 작용할 수가 있다. 그래서 성적 언동이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반드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과 연루되는 것으로 수정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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