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기 점묘법으로 그림 그리는 윤종석 작가

수십만개의 점의 울림...사람들을 매료시키다

윤종석 작가
윤종석 작가

[서울 =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물감을 주사기에 넣어 화폭에 방울방울 떨어뜨려 옷을 그리면서 윤종석 작가는 ‘주사기 작가’로 불려지게 된다. 이후 물감을 주사기에서 실선처럼 빼내 축적시키면서 화폭을 만들어 가기도 했다.

간혹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 그 작가의 상징으로 부각되면서 경쟁력이 되기도 한다. 아주 획기적인 재료를 선택하거나, 평범한 재료를 비범하게 사용하면서 주목을 받기도 한다. 윤 작가의 경우엔 후자에 속한다.

초기엔 주사기에서 떨어지는 물감방울을 점으로 삼아 이미지를 만들었다. 화폭의 바탕색은 그림자가 됐다. 나중엔 주사바늘에서 짜내는 실선으로 그림을 그렸다. 동료작가들과 같은 물감을 쓰지만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수만번 반복되는 작업은 정교하고 치밀하다. 한 번의 손짓(붓질)으로 단 하나의 점만 찍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웬만한 크기의 작품 한점을 완성하려면 수십만 개 이상의 점을 찍는 게 보통이다. 게으름은 용납되지 않는다. 오로지 정직한 노동의 대가로 작품의 완성도가 좌우 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 점에 매료됐다.

너는 묻고 나는 답하다
너는 묻고 나는 답하다

“그래도 나만의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고민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습니다.”

그의 작품은 스치는 ‘자신의 날들’인 일상을 기록하고 채집한 결과물들이다. 매일매일 보는 것들 중에서 남겨두고 싶은 이미지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그것들괴 관계된 이미지들을 채굴해 나간다.

“선별한 이미지들과 연결된 역사적 시간을 추적하고 발굴해 나갑니다. 선택된 이미지들이 현재의 나와 어떻게 연결되고, 그 과거가 미래에 어떤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가를 찾아보지요. 켜켜이 쌓여진 과거를 밟고 살아가는 현재의 나를 알아가는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평소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흥미로운 이미지를 발견하면, 그 소재에 대해 추가로 검색해 알아간다. 검색한 같은 날짜의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추가로 검색해 주목되는 3~4개의 이미지를 선별한 후,그 중에 1~2개 이미지를 처음 시작점에서 흥미를 끌었던 소재와 연결시켜 작가만의 창의적인 이야기로 구성해 간다.

구도자
구도자

“예를 들어 작품 ‘구도자(1104)’에선 흰 소가 연꽃 봉오리를 뿔에 매달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4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다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소를 키우는 모습을 봤습니다. 소와 함께 살며 소의 오줌으로 머리를 감을 정도로 신성시 여기는 모습에서 묘한 울림을 받았습니다. 다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TV를 시청한 같은 날(1993년)이 마침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스님이 입적한 날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심우도(尋牛圖)가 떠오르고, 인간의 본성을 찾아가는 구도과정을 신령스러운 흰 소에 비유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일까 소에 매달린 분홍빛 연꽃이 우리가 좇는 이상향으로 다가온다.

“작품 중엔 어린 조카로 인해 얻은 교훈을 작품에 옮기기도 했습니다. 작품 ‘내일을 위한 기념비(1212)’가 그 경우입니다. 조카에게 장난감을 사주러 마트에 들렀습니다. 조카의 손에 든 레고블럭을 보며, 저 작은 조각 하나로 별스런 세상을 다 만드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날도 때마침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이 날은 1979년 12ㆍ12 군사반란, 1990년 유명인권변호사인 조영래의 사망일, 1863년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가 태어난 날이기도 했습니다. 서로 상반된 두 이미지(총알과 펜촉)와 레고블럭 한 조각의 만남! 아주 작은 한 조각으로 만들기 시작하는 세상의 모습은 당사자인 우리가 하기 나름이겠다 싶은 교훈으로 작품을 제작한 것입니다.”

그는 개인의 경험과 감성을 이런 방식으로 일반화시키고 있다. 그의 그림의 힘이다.

당신의 자리에 꽃이 피었습니다
당신의 자리에 꽃이 피었습니다

“2020년 7월13일, 산책길에 만난 튤립은 너무나 매혹적이었습니다.1954년 같은 날은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의 사망일이기도 합니다. 프리다 칼로가 겪은 치열하고 처절한 인생의 역경 속에서도 삶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은 모습에 존경과 찬사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림에서 튤립을 감싸고 있는 것은 칼로가 평생 차고 지냈던 척추보조기로, 역경과 아픔의 상징이지요. 비록 그녀는 떠나갔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세상의 그 어떤 꽃보다도 더 아름답고 숭고한 꽃’으로 기억될 겁니다.”

같은 작업방식으로 사담 후세인의 황금권총과 꽃풍선의 만남은 권력의 덧없음을 형상화 했다.

비로소 보이는 것들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일상과 과거(역사)는 촘촘한 점처럼 연결돼 있습니다. 오늘의 내가 수많은 지난날의 토대위에 서 있는 것과 같지요. 그것들을 점처럼 연결(점묘범)해 형상화 해 보려고 합니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물들을 호리아트스페이스&아이프라운지서 열리는 윤종석 개인전(15일~5월14일)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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