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란 무엇인가(1회)

《덕산재(德山齋)》 거실에는 도올(檮杌) 김용옥(金容沃 : 1948~) 박사의 휘호(揮毫) 한 점이 걸려 있습니다. 1991년 10월 3일 원불교 여의도교당 봉불식의 강연으로 원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저에게 써준 휘호이지요.

「神이 세계를 창조했다면, 이 세계는 신을 창조한다. 창조는 한 시절에 완결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며칠 후 4월 28일이 원불교 대각개교절입니다. 그 도올 김용옥 선생이 4월 16일 자, 원불교신문에 <원불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기고(寄稿)하신 글이 실려 있습니다. 원불교도가 아닌 학자가 제 3자의 눈으로 원불교를 바라본 객관적인 원불교를 《덕화만발》에서 연 3회에 걸쳐 전재(轉載)합니다.

<원불교란 무엇인가?(1회)>

【이 어려운 질문에 쉽게 대답하려면 우선 이렇게 말하는 것이 무난하다. 법성포를 서북방으로 바라보는 구수산(九岫山) 아랫자락 길룡리에서 태어나서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자라난 한 청년의 대각으로 시작된 종교운동. “청년”이라는 말에 좀 섬뜩해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소태산 박중빈이 득도했을 때가 1916년 4월 28일이므로 만 나이가 25세도 채 되지 않는다.

스물다섯 살의 청년이 뭘 깨달았다 한들 얼마나 대단한 것을 깨달았겠는가? 원불교 신자들에게는 매우 불경스럽게 들릴 이러한 질문이 머리에 맴돌지 않는 한, 소태산의 정신세계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상식이요, 소신이다. "대각”이라는 말은 "크게 깨달았다"는 뜻인데, 과연 무엇을 크게 깨달았다는 말인가? 당신은 과연 이 나의 말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가? 큰 깨달음이란 큰 깨달음을 얻은 자에게만이 이감(移感)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요즈음 원불교 잘 돌아가고 있소? 앞날이 훤합니까? 전도가 창창합니까? 도대체 원불교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 미래방향을 예견할 수 있겠소? 이런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현재 원불교의 사람들이 소태산 박중빈의 대각의 외침에 부응되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따져보는 것밖에는 없다.

그런데 이런 것을 따져보려면 우선 소태산의 깨달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25세의 시골청년은 과연 무엇을 깨달았는가? 생각해보라! 옛날 영광 백수면 길룡리는 매우 편벽한 곳이어서 제대로 된 서당도 없었다. 그가 7세 때부터 화창한 하늘의 푸름과 우연히 이는 바람과 구름에 의문이 일었고, 끊임없이 삼라만상에 대한 경외감과 그 실상에 대한 회의가 일어, 스승을 구하고자 했어도 구할 길이 없었고, 산신령이나 도사를 만나려 해도 만날 길이 없었다.

그는 학식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요, 형편상 만권시서를 독파할 여유가 있었던 사람이 아니다. 회의와 갈망과 절망 속에 그의 우주론적·인간론 적 질문은 깊어만 갔고, 그러던 중 1916년 음 3월 26일 이른 새벽, 홀연히 정신이 쇄락하여 대각의 경지에 이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홀로 깨달았다는 것은 영광 산천의 흙내음새가 빚어낸 오리지날한 단독자의 포효(咆哮)라는 것, 박중빈의 대각에는 명백한 특징이 있다. 지식의 도움을 크게 받지 않았다는 것과 홀로 깨달았다는 것이다.

지식의 도움을 크게 받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대각 자체가 개념적 추론의 결론이 아니라는 것이요, 홀로 깨달았다는 것은 영광 산천의 흙내음새가 빚어낸 오리지날한 단독자의 포효라는 것이다. 그 포효는 신단수(神檀樹) 아래서 태어난 단군(檀君)의 포효와 동시적 사건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불교”를 불교의 변양(變樣)으로 생각하거나, 생활화된 현대불교의 일종으로 간주하는데, 내가 단연코 말하건대, 원불교는 불교가 아니다. 박중빈이 스스로 “내가 스승의 지도 없이 도를 얻었으나, 득도의 경로를 돌아본다면 과거 부처님의 행적과 말씀에 부합 되는 바 많으므로 나의 연원(淵源)을 부처님께 정하노라”라고 언명했다 해서, 원불교가 불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불교는 불(佛)의 가르침일 뿐이요, 이때 불이란 “깨우침”의 별명일 뿐이다. 박중빈은 어떠한 종교단체를 개창하기 위하여 깨달은 것이 아니다. 그는 그의 존재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의문 때문에 견딜 수 없어, 우주와 인간을 포함하는 삼라만상의 실상을 알고파서 몸부림쳤을 뿐이다.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에도 그는 그의 깨우침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승가(僧伽)를 조직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종교에 있지 않았다.】

어떻습니까? 원불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많이 불경(不敬)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 3자의 예리한 눈으로 볼 때, 상당히 원불교의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 준 것으로 여간 고마운 충고로 받아 들여야 하지 않을 까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월 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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