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군대를 제대 한 때가 1965년이었습니다. 생활을 책임지다시피 한 제가 군대를 갔으니 가정 형편이 말이 아니게 되었지요.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사기집단에 걸려 인천 앞바다에 묻힌 보물을 찾는다는 사업에 손을 댓 다가 그만 폭삭 망한 것입니다.

아니 이럴 수가? 용기를 내어 어린 동생을 새벽에 깨어 신당동 중앙시장의 빈 가게로 행했습니다. 옆 가게의 아버지 친구 분을 찾아뵙고 제대인사를 드린 후, 가게 문을 열어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그때 돈 10만원을 빌렸습니다. 당시 쌀 한 가마니에 3천2백 원 정도였으니 30가마를 살 수 있었지요.

커다란 멍석에 좋은 쌀 30가마를 쏟아 놓았습니다. 참 눈이 부셨습니다. 마침 쌀을 사러 나온 첫 손님이 동창생이었습니다. 쌀 3가마를 동생은 퍼 붓고 저는 말질을 하였지요. 쌀이 좋았던지 30가마가 순식간에 팔렸습니다. 며칠 안가 아버님 친구 분에게 빌린 돈 10만원을 갚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었지요.

그해 여름부터 쌀이 귀해 정부는 정부미를 방출해 쌀값 안정을 기했습니다. 농협에서 쌀을 한 차에 80가마를 실어 한 가게에 한차씩 부려 주었습니다. 이미 선수금이 몇 찻값이 들어와 있으니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였지요. 그렇게 몇 해를 해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만약 제가 망연자실(茫然自失)하여 도전(挑戰)을 포기 했더라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한 수도승이 제자와 함께 여행을 떠났습니다. 밤이 되어 머물 곳을 찾던 그들은 황폐한 들판 한가운데에서 오두막을 발견했습니다. 헛간 같은 집에 누더기 옷을 입은 부부와 아이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집 주위에는 곡식도 나무도 자라고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여윈 암소 한 마리만 묶여 있었지요.

수도승과 제자가 하룻밤 잠자리를 청하자 그 집 가장이 친절하게 맞이하며 우유로 만든 간단한 음식과 치즈를 대접 했습니다. 가난하지만 너그러운 그들의 마음씨에 제자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식사를 마친 수도승이 그들에게 도시와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진 척박한 곳에서 어떻게 먹고 사는지 물었습니다.

아내가 쳐다보자 남편이 체념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암소 한 마리가 있습니다. 우유를 짜서 마시거나 치즈를 만들어 먹습니다. 남으면 마을에 가져가 다른 식량과 바꿔 옵니다. 그렇게 근근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튿날 아침 수도승과 제자는 감사의 인사를 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산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수도승이 제자에게 말했습니다. “가서 암소를 절벽 아래로 밀어뜨려라.” 제자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들은 암소에 의지해 겨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암소가 없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고, 굶어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수도승은 다시 지시를 했습니다. “얼른 가서 내 말대로 하라!” 젊은 제자는 무거운 가슴을 안고 몰래 오두막으로 돌아가 암소를 절벽 아래로 밀어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몇 년 후, 그 제자 혼자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에 묵었던 그 오두막 부근을 지나게 되었지요.

후회의 감정이 밀려오면서 그 가족을 찾아가 용서를 빌 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모퉁이를 돌아 예전의 장소로 들어선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때 다 쓰러져 가는 헛간 같은 오두막이 있던 자리에 아름다운 집이 세워져 있고, 정성들여 가꾼 꽃밭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새 집에서는 풍요와 행복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습니다. 제자가 문을 두드리자 소박하지만 품위 있는 차림의 남자가 나왔습니다.

제자가 물었습니다. “전에 이곳에 살던 가족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들이 굶어죽게 되어 당신에게 이곳을 팔았나요?” 남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기들은 줄곧 이곳에서 살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제자는 자신이 늙은 스승과 함께 여러 해 전 그곳에서 하룻밤 묵어 간 이야기를 하며 다시 물었습니다. “이곳에 살던 그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아 네! 그때, 우리에게는 암소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암소에 의지해 겨우 생계를 이을 수 있었지요. 다른 것은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암소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무엇이든 해야만 했고, 새로운 기술들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새로운 삶의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그러나 그것이 곧 우리에게 일어난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전보다 훨씬 잘살게 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대다수 사람들은 각자가 든든한 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것이 무엇이 되었든 말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세계로 눈길을 돌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진정으로 꿈을 실현하기를 원한다면 안전망은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싫어하고 안주하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하지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淘汰)되고 그냥 주저앉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위험을 전혀 감수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도전하는 인생이 더 아름답습니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가 바로 이것 아닌 가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5월 12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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