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귀우목(盲龜遇木)을 아십니까?

말할 수 없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요즘 뉴스에 스스로 자신의 삶을 포기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인간이 삶을 이어가는데 정말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이르면 누구라도 한 번쯤 생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1위를 차지했다면 당연히 자랑할 일이지만 자살률 1위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6.5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 12.1명보다 두 배 넘는 수치입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90년대 후반부터 차츰 늘어나기 시작하여 2008년도부터는 일본 놈들을 앞서게 되었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이며 근간에는 50대 이상의 남성들 자살률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니 34십 년 전 먹을 것조차도 부족해 못 살던 시절에 비한다면 요즘은 그야말로 상전이 벽해 되고 벽해가 상전으로 바뀐 세사인데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내주지 않습니다.

어떤 연구기관이 제출한 보고서에 어느 국가나 자살률은 삶의 만족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단정 지었지만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이 삶의 만족도가 뒤떨어지고 살아가기가 어려워서만 은 아닌 듯싶습니다. 내년도 국가 예산안 발표에 따르면 자살예방 사업에 쓰일 돈이 105억 5200만 원이랍니다. 금년도 대비(99억 3100만 원) 약 6억 원쯤 증가된 액수이니 정부는 자살예방사업에 인색하다는 소리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조물주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라 하고 동양적 사상으로는 천지 간(天地間)의 기(氣)에 의해 인간이 생(生) 하고 멸(滅) 한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전생의 업보와 인연에 따라 태어날 때 인간이나 축생이나 또는 미물로 태어난다는 윤회설을 주장합니다. 태초에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생겨났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딱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습니다.

불교 경전 잡아함경(雜阿含經)에 맹귀우목(盲龜遇木)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깊고 넓은 바닷속에 앞을 못 보는 소경 거북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답니다. 눈이 먼 거북이는 뭍으로 올라갈 큰 뜻을 품고 백 년에 한 번씩 수면 위로 떠오르기를 무량대수로 반복, 어느 때 구멍 뚫린 널빤지를 만나 간신히 뭍에 오름을 비유한 얘기입니다. 소경 거북이 처지에 어떤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도저히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없습니다.

망망대해, 넓은 바다 위에 구멍 뚫린 널빤지 하나가 파도에 휩쓸려 표류하는 것을 눈먼 거북이가 다행히 만난다면 쉽게 풀릴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만 수 천만 번, 아니 헤아릴 수조차도 없을 만큼 떠오르고 내려가기를 반복하다가 겨우 이루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불교에서 말하기를 수 억겁의 이연으로 인하여 하나의 생명이 탄생되고 더군다나 인간으로 태어나기 까지는 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연분이 닿아야 태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이 대단히 어렵고 그 기회가 주어졌다 하더라도 새벽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이 태양이 떠오르면 사라지듯 찰나(刹那)에 머물다 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한 번 태어나면 어차피 한 번은 죽기 마련이지만 수 만겁 인연으로 얻어진 생명, 연습이 있을 수 없는 삶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본인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효경(孝經) 서두에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 불감훼상 효지시야:不敢毁傷, 孝之始也])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문명과 물질이 발달함에 따라 삶의 질은 풍요로워졌지만 정(情)은 메말라가고 도덕이 땅에 떨어져 사회는 각박해졌습니다.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인명을 경시하는 사회적 풍토가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고 탓하기 전에 엄밀히 따진다면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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