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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만들고 개인이 택한 ,. 부정도 우울도 나의 감정
  • 김현태 기자
  • 승인 2017.12.23 21:02
  • 수정 2017.12.23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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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는 모두가 즐겁고 행복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갖춰진 듯 풍족한 이 사회에 부재한 것이 있는데, 바로 감정이다. 멋진 신세계는 안정과 효율성을 위해 감정을 제한한다. 그리고 감정이 거세당한 사회, 그것은 재앙이다. 멋진 신세계의 사람들은 약간의 우울만 느껴져도, 소마를 먹는데 그러면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들은 말한다. “일 세제곱센티미터의 소마는 열 가지 우울을 치료해.” 소마 때문에 사람들은 그 어떤 부정적인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사실 우리의 세계는 멋진 신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공부해야, 취업해야,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로 감정을 거세당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나만 힘든 것 같은 외로움 등 많은 감정들이 밀려와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은 때가 아니다”며 덮어 놓는 것뿐이었다.

그러면 사회는 나에게 ‘높은 시험 점수’, ‘당장의 성과’, ‘돈’이라는 소마를 제공한다. 감정을 제한하면 효율성을 얻는다. 감정은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지각하도록 돕는데, 사회 구성원 각각이 욕구를 지각하는 것은 사회 통합과 협동의 관점에서 성가시다. 또한 감정을 가진 사람은 일정한 생산 기계가 되지 못한다. 사회의 부당한 명령에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껴 불복종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감정 통제는 안정도 야기한다. 감정이 없는 사람은 노령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감정이 있는 사회를 원한다. 감정이 있는 사람만이 선호를 느낄 수 있다. 멋진 신세계의 사람들은 욕구를 모두 충족하는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우리는 얻을 수 없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데, 이는 다르게 말하자면 자신의 진정한 바람은 지각하지 못한 채타인이 허락하는 욕구만을 수동적으로 추구한다는 것이다.

좋은 것은 좋다고 싫은 것은 싫다고 느낄 수 있는 사회를 바란다. 나의 권리를 찾고, 목소리를 내는 과정의 시작은 부정하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사회적 통념이 소마를 통해 강제하는 일시적 행복이 아니라, 우울이라는 감정이 알려주는 욕구를 추구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김현태 기자  kimht10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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